2018년 11월 21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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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꽃 마을 밖에는 이제 비가 막 개었구나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262)

  • 입력날짜 : 2018. 01.23. 18:34
野?吟(야수음)
운곡 원천석

포곡조는 나무 끝에서 밭 갈라 재촉이고
살구 꽃 핀 마을에는 비 내리다 개는데
동산은 한층 푸르고 권농사자 늦는구나.
布穀催耕啼樹頭 杏花村外雨初收
포곡최경제수두 행화촌외우초수
勸農使者來何晩 遠近林園綠已稠
권농사자래하만 원근림원록이조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했다. 농사짓는 일을 하는 것이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이며 농사를 장려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조선 사회에서는 농사짓는 자를 서민 혹은 상놈으로 여기는 경향이었다. 사대부들은 서민들이 농사지은 곡식을 축내고 농사짓는 자들을 착취했다. 이러한 때에 농사의 중요성을 강조해 주목된다. ‘권농사자(勸農使者)는 왜 이리도 늦게 오는지, 먼 숲 가까운 동산은 벌써 한층 푸르기만 하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살구꽃 마을 밖에는 이제 비가 막 개었구나’(野?吟)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1330∼?)으로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인이다. 태종 이방원의 스승으로 태종이 오랫동안 정치를 함께 하기를 바라며 스승을 기다리며 앉아있었던 바위를 후세 사람들이 ‘태종대’라 했고 지금도 치악산 각림사 곁에 있다. 치악산에 은거하며 끝내 출사하지 않았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포곡조(布穀鳥)는 나무 끝에서 밭 갈라고 어서 재촉하고 / 살구꽃 마을 밖에는 이제 비가 막 개었구나 // 권농사자(勸農使者)는 왜 이리도 늦게 오는지 / 먼 숲 가까운 동산은 벌써 한층 푸르기만 한데]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농부를 읊다]로 번역된다. 농부를 시적 대상자로 생각해 시를 읊는 경우는 많지만, 농부가 직접 시인되어 시를 읊은 경우는 많지 않다. 농부 자신이 시를 지을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갖춘 자가 많지도 않고, 설령 안다 할지라도 시적 대상자를 찾지 못한다. 곧 시상을 함께할 만한 동호인(同好人)이 많지 않다.

시인은 선경후정이란 시상을 잘 매만지면서 얼개를 일궈내고 있다. 포곡조(布穀鳥)는 나무 끝에서 밭을 갈라고 재촉을 하는데, 이제 살구꽃 마을 밖에는 봄비가 막 개어 포곡의 뜻을 펼 수 있다는 발상을 했다. 포곡조는 두견과에 속한 철새다. 초여름에 남쪽으로부터 날아오는 여름새로, 5월쯤에 날아와서 10월까지 머문데 씨를 뿌려 곡식을 걷는 시기에 우리나라에 머문다 해 붙인 이름이다.

화자는 이런 좋은 계절에 백성들에게 농사를 권하는 진정한 사자(使者)가 있어야 할 것이라는 시상을 떠올린다. ‘권농사자(勸農使者)는 왜 이리도 늦게 오는지, 먼 숲 가까운 동산은 벌써 한층 푸르기만 하다’는 시통 주머니를 만지고 있다. ‘저승 귀신’이란 뜻에 따라 권농사자란 멋진 시어를 일궈냈다.

※한자와 어구

野?: 농부, 布穀: 뻐꾸기. 催耕: 밭 갈기를 재촉하다. 啼樹頭: 나무 끝에서 울며 재촉하다. 杏花: 살구꽃. 村外: 마을 밖. 雨初收: 비가 처음으로 개다. // 勸農: 농사를 권하다. 使者: 사자. 심부름꾼. 來何晩: 어찌 늦게 오는가. 遠近: 멀고 가까움. 林園: 임원. 동산. 綠已稠: 이미 푸르러 바쁘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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