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24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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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은 여한이 없으니 궁하고 가난함에 맡기련다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265)

  • 입력날짜 : 2018. 03.06. 18:48
題九月山小庵(제구월산소암)
석간 조운흘

작년에 내린 눈이 아직 남아 있는데
금년 봄 버들가지 눈들이 싹 트이고
세상에 겪었던 영욕 궁빈에 맡기려나.
山中猶在戊辰雪 柳眼初開己巳春
산중유재무진설 류안초개기사춘
世上榮枯吾已見 此身無恨付窮貧
세상영고오이견 차신무한부궁빈

구월산은 황해도 신천군과 은율군에 걸쳐 있는 산이다. 구월산이라는 말은 이 산이 소재한 구문화현(舊文化縣)의 고구려 시대의 지명인 궁홀, 또는 궁올(弓兀)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하는데, 미화돼 구월산으로 되었단다. 옛날에 단군이 수도를 평양에 정하였다가 이곳 구월산에 옮기고 수천 년간 나라를 다스렸다고 전한다. ‘지난해 겨울 내린 눈이 아직도 산에 남아 있는데, 금년 봄에 버들가지 눈이 트이려고 한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이 몸은 여한이 없으니 궁하고 가난함에 맡기련다(題九月山小庵)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석간(石磵) 조운흘(1332-1404)로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이인복의 문인이다. 1357년(공민왕 6) 문과에 급제해 안동서기가 되고, 합문사인을 거쳐서 1361년 형부원외랑에 올랐다. 홍건적의 침입으로 남쪽으로 피난하던 왕을 호종해 1363년 2등 공신이 됐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작년 겨울 내린 눈이 아직도 산에 남아 있는데 / 금년 봄에 버들가지 눈이 트이려고 하는구나 // 세상 영욕을 내 이미 겪었거니와 / 이 몸은 여한 없으니 궁하고 가난함에 맡기려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구월산 작은 암자에서]로 번역된다. 시인은 구월산 작은 암자에 가서 세상사의 얽히고설킨 자기의 심회를 모두 쏟아내고 있다. 시인 쓴 본 시제뿐만 아니라 송춘일별인(送春日別人)의 작품에서도 보인 현실 참여와 운둔 사이에서 고민하며 이를 자연을 매개로 해 해결하려는 면이 보인다. 시인은 현실비판에 대한 의식이나 안목은 비교적 작아 보인 시상을 만난다.

시인은 ‘겨울에 내렸던 눈과 봄소식이 전해왔으니 버들가지에 살며시 눈이 트이고 있다’는 시상 주머니를 펴 보인다. ‘지난해 겨울 내린 눈이 아직도 산에 남아 있는데, 금년 봄에는 버들가지가 눈이 트이고 있다’는 시상의 얼개다. 율시뿐만 아니라 절구에서도 대구를 놓았던 선현들의 지혜를 보게 된다.

화자는 이제 영욕의 시절을 모두 다 겪었으니 이제는 세상을 초탈하려는 자기 의지를 보인다. 얕고 엷은 세상의 영욕을 내 이미 다 겪었거니와, 이제는 이 몸 여한 없이 궁하고 가난함일랑 세상 돌아가는 대로 의연하게 맡기려 한다는 심회를 담아낸다. 초탈하는 가운데 이제는 외줄 타는 마음으로 아옹다옹하지 않겠다는 시상을 보인다.

※한자와 어구

山中: 산중. 猶在: 오히려 남아 있다. 戊辰: 무진년. 여기선 ‘작년’. 雪: 내린 눈. 柳眼: 버들가지 눈. 初開: 처음으로 열리다. 己巳: 기사년. 여기선 ‘금년’. 春: 봄 // 世上: 세상. 榮枯: 영욕. 吾已見: 내 이미 보다. 此身: 이 몸. 無恨: 여한이 없다. 付窮貧: 궁함과 가난함을 맡기다. 곧 못사는 형편.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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