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1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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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마당] 싸목싸목 먹거라 수필 김종훈

  • 입력날짜 : 2018. 06.18. 18:46
순천시가 지난 2010년 ‘싸목싸목’을 지역대표음식 브랜드로 확정 발표한 바 있었다. ‘싸목싸목’은 ‘천천히 조금씩 나아가는 모양’으로 풀이되는 우리 전라도 지역에서 쓰는 사투리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이 귀향하거나 먼 길을 떠나려 할 때 가련한 밥상 하나를 차려놓고 숭늉까지 올려주면서 ‘찬은 없지만 싸목싸목 먹거라’했다. 목에 얹히지 않게 숭늉도 마시면서 천천히 먹으란 뜻이겠지만 그 말속에는 젖먹던 떡애기 시절부터 어머니 가슴으로 알뜰살뜰 키워온 혈육의 정과 천륜의 사랑이 듬뿍 담겨있는 모정의 표출이라고 봐야 한다.

순천시가 이 사투리 한마디를 지역대표음식의 브랜드로 정한 그 바탕에는, 물론 단편적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상업적 마인드의 경제정책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풍요하고 맛깔스러운 음식문화와 덕성스런 나눔의 고장 정겨운 순천이라는 상징적 색채가 더 깊숙이 스며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8년여가 지난 요즈음 그 소중한 브랜드 가치가 여행객들이나 언론으로부터 조명을 받지 못하고 식어 드는 느낌이어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여기에 싸목싸목이라는 사투리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길 기회를 만들고, 순천지역 여러 음식의 면면을 일일이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이 고장을 찾는 외지인들의 여행이나 방문길에 저가로 즐겨 먹을 수 있는 음식 몇 가지를 소개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싸목싸목과 비슷한 ‘시나브로’란 말도 있다. 뜻은 비슷해도 그 쓰임새는 서로 다르다. 어릴 적 화창한 어느 가을날, 당시 고향 집 담장 밑에 듬성듬성 피어 있는 몇 그루의 국화꽃을 쳐다보시던 아버지가 들릴 듯 말듯 나지막한 음성으로 ‘시나브로 다 지는구나’ 하셨다. 그때 그 말은 어떤 한 구절의 명시처럼 들렸지만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내 머리 속엔 지금까지 오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국어사전을 보면 ‘시나브로’는 ‘싸목싸목’과는 약간 다른 뜻으로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이라 적혀있고, 시나브로라는 말에는 나름의 여운도 있다. 우리가 사랑을 나누면서도 ‘사랑’이란 낱말의 의미를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듯이 싸목싸목과 시나브로 역시 그 어떤 표현으로도 정확하게 설명하기 힘든 그저 사투리일 뿐이다.

어떤 이들은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우리 고유의 사투리까지 조롱하고 트집 잡아 폄훼하는 등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정쟁의 빌미로 삼기도 한다지만, 이제껏 우리 조상들이 토속 문명처럼 써먹어 왔던 지방 고유의 언어들이 하나둘씩 시나브로 사라져가는 현상을 보면 현대문명의 혜택이라기보다는 오랜 추억마저 지워지는 듯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비록 시대의 흐름에 밀려가는 사투리지만 우리 선조들 사이에 입으로 전하고 귀로 듣고 애지중지 소통해 왔던 옛말들이기에 꾸준히 보전하고 재현해서 되살려 나간다는 것도 오늘날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소명이 아닌가 한다.

따라서 ‘싸목싸목’이란 흘러간 옛말을 순천시가 재 발현해서 지역 음식의 브랜드로 명명(命名)한 것은 주민들의 관광소득을 높이고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기발한 정책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라져가는 옛 사투리를 후세에 전승하려는 그 역할이 더 커 보인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창의적인 구상과 그 성과의 의미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순천 음식 하면 옛날 남문다리 옆 그 소문난 한정식의 명가 ‘남문식당’이 먼저 떠오른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그런 값비싼 진수성찬은 아니더라도 갈비탕, 추어탕, 장어탕, 산채비빔밥, 꼬막정식 장터국밥 등등 저가이면서 맛이 독특하고 먹음직스러운 전통밥상들이 곳곳에 즐비하다. 특히 순천만 갈대습지(대대포구) 근처에서 먹는 자연산 짱뚱어탕은 별미중의 별미다. 펄펄 끓는 뚝배기에 아릿하면서 톡 쏘는 듯한 젠피가루 양념을 반 숟갈 정도 뿌려 넣고 천천히 식히면서 남도의 술 잎새주 한잔을 곁들이고 순천 특유의 고들빼기 김치를 한 가닥 걸쳐 싸목싸목 먹는 그 재미는 세상사를 다 씻어준다.

아울러 전남도와 22개 시군 모두가 참여하는 남도음식문화 큰잔치가 1994년 이래 20여 년 동안 매년 순천 낙안읍성 민속마을에서 열려 해마다 새로 개발된 우수 식품들이 그 특성과 맛을 뽐내고 있다. 권위 있는 음식 명인들이 속속 탄생하는가 하면 국내외 관광객은 물론 더 많은 식도락가들이 앞다투어 찾아듦으로서 음식의 고장이란 명성과 함께 ‘싸목싸목’은 더할 나위 없는 고전적 가치의 브랜드로서 또 다른 이미지로 주목받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애들아! 싸목싸목 먹고 시나브로가거라 잉!”

<약력> 순천 출생, 광주문인협회 이사, 대한문학·광주시인협회·무진주수필문학 회원, 전 전남지방공무원교육원 교수(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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