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1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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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봄비에 수염이 긴 용 한 마리 길렀구나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280)

  • 입력날짜 : 2018. 06.26. 18:50
松山幽居(송산유거)
설학재 정구

우리 집 문 앞의 노송 한 그루에
백년의 봄비에 긴 수염 용 기르고
눈서리 다 메울 때에 빼어난 모습보라
蓬蓽門前一老松 百年春雨養髥龍
봉필문전일로송 백년춘우양염룡
暮天霜雪埋窮壑 看取亭亭特秀容

모천상설매궁학 간취정정특수용 자연적인 사물을 의인화하는 경우가 많았다. 백구를 흰 머리가 난 노인으로, 흰 구름을 외롭게 여행하는 나그네로 치환하는 경우다. 노송(老松)도 나이가 듬직한 어르신으로 치환하며 대화하는 모습도 우리는 종종 본다. 그는 분명 세상의 온갖 풍파를 다 겪고 민중의 애환을 달래줬다. 그리고 정치적인 어두운 현실을 봤다. ‘날이 저물어 눈서리가 골짜기를 다 메우고 있을 때, 우뚝하게 빼어난 저 모습을 자세히 보라’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100년의 봄비에 수염이 긴 용 한 마리를 길렀었구나’(松山幽居)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설학재(雪壑齋) 정구(鄭矩·1350-1418)로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1377년(우왕 3) 급제해 전교시부령을 지내고, 1382년 김극공의 옥사에 연루, 유배됐다. 1392년 한성부우윤을 지내고 1394년(태조 3) 왕명으로 한리·조서·권홍·변혼 등과 함께 ‘법화경’ 4부를 금니로 썼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우리 집 문 앞의 노송 한 그루가 있는데 / 백년의 봄비에 수염이 긴 용을 길렀구나 // 날이 저물어 눈서리가 골짜기를 다 메우고 있을 때 / 우뚝하게 빼어난 저 모습을 자세히 보라]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노송의 한가롭게 삶]으로 번역된다. 겨울이 돼야만 소나무의 푸르름을 안단다. 이 시에 나오는 노송은 오랜 풍상에 줄기가 굽었다.
그 모습이 추하거나 흉하지 않고 감히 범접하지 못하도록 위용을 갖춰 마치 한 마리 용의 모습이 됐음이 시상이다.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 하리라]의 성삼문의 시조 한 수처럼 간난(艱難)의 세월을 유혹과 위협에 굴하지 않고 꼿꼿이 살아온 어르신처럼.

시인은 날이 저물어 가고 온 천지가 눈으로 덮였어도 홀로 푸른 노송은 힘들고 어려운 인고의 세월동안 절개를 지켜 스스로 위엄을 갖춘 어른을 떠오르게 한다. 우리 집 문 앞의 노송 한 그루가 백년의 봄비에 수염이 긴 용을 길렀다는 시상의 주머니를 매만진다. 노송의 울퉁불퉁한 모습 속에서 100년을 살아온 용으로 치환시키고 있다.

화자는 우리 주변에도 항일 독립운동과 반독재 투쟁으로 평생을 변함없이 힘들게 살아 노송(老松)과 같은 기상을 간직한 원로(元老)들이 있음을 떠올린다. ‘저무는 날에 눈서리가 골짜기를 다 메울 때 우뚝하게 빼어난 모습을 보라’라는 한 마디 절규가 떠오르는 웅장이 보인 기상이다.
※한자와 어구
蓬蓽: 가난한 사람의 집, 또는 자기 집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門前: 문 앞. 一老松: 한 그루 노송. 百年: 백년. 春雨: 봄비. 養髥龍: 수염이 긴 용. // 暮天: 저무는 날. 霜雪: 서리와 눈. 埋窮壑: 골짜기를 메우다. 看取: 취해 보다. 亭亭 ; 우뚝 솟은 모양, 노인이 건강한 모습. 特秀容: 빼어난 모습.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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