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18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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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나의 흉중에는 큰 조화가 있을 법도 한데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281)

  • 입력날짜 : 2018. 07.03. 19:38
題柳少年山水圖(제유소년산수도)
양촌 권근

못에서 용 일어나 가랑비 부슬 한데
돌이 달아 강물 뒤집혀 귀신은 울부짖고
바람에 천지 개이며 흉중에는 조화 있고.
墨池龍起雨濛濛 石走江翻鬼泣空
묵지룡기우몽몽 석주강번귀읍공
一陣好風天地霽 分明元化在胸中
일진호풍천지제 분명원화재흉중

상당한 수준에 있는 화가나 화가를 지망하는 생도들도 그림을 그려놓고 선뜻 화제를 붙이지 못했던 모습을 흔히 본다. 양질의 그림도 중요하겠지만, 좋은 화제는 그 그림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4-5자 되지 않는 화제는 물론 화제를 부연하는 연구(聯句)인 두 줄짜리 시까지도 마찬가지겠다. 먹 못에서 용이 일어나 비가 부슬부슬한데, 돌은 달아나고 강물은 뒤집히고 하늘에 귀신 우는 듯하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분명 나의 흉중에는 큰 조화가 있을 법하기는 하네(題柳少年山水圖)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양촌(陽村) 권근(權近:1352-1409)으로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자 학자다. 영해, 흥해, 김해 등지로 유배됐던 인물이다. 1390년(공양왕 2) 이초의 옥에 연루돼 또 다시 청주에 옮겨졌다가 풀려났다고 알려진다. 1393년(태조 2) 왕의 특별한 부름을 받아 양지와 음지를 다 겪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먹 못에서 용이 일어나 비가 부슬부슬한데 / 돌은 달아나고 강물은 뒤집혀 하늘에 귀신이 운 듯 // 한 무더기 좋은 바람 천지가 맑게 개이니 / 분명 나의 흉중에 큰 조화가 있을 법하지]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유씨 소년의 산수도에 제목을 붙여주면서]로 번역된다. 이 시를 읽으면 다음과 같은 시인의 교훈적인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시인은 어떤 소년이 산수화를 그리는 장면을 보고 그림을 통해 드러난 소년의 재주는 물론 큰 뜻에 대해 칭찬하는 내용을 담았을 것이라는 시적 배경을 시상의 그림 속에 담아본다.

시인은 소년의 그림 속에서 다음과 같은 시상의 멋을 간추려내는데 주저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화폭 속에 담겨진 그림은 먹 못에서 용이 일어나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돌은 달아나고 강물은 뒤집히고 하늘에선 귀신이 우는 듯하다는 최대의 찬사를 보냈다. 시상 담아 한 폭 그림을 잘도 그렸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시인의 입을 빌린 화자는 더 큰 시심의 모습을 그려 화제로 담아 일필휘지를 써주었음을 보인다. 한 무더기 좋은 바람에 천지가 말끔하게 개더니만 이는 분명 흉중((胸中)에 큰 조화가 있으리라는 후정의 시상을 모두 쏟아냈다. 소년이 붓을 그어 갈 때마다 종이에서는 웅장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장면이 나타나고, 시인은 이를 보면서 소년의 큰 포부를 칭찬한 내용으로 담았겠다.

※한자와 어구

墨池: 벼루에 갈아 놓은 먹물. 龍起: 용이 일어나다. 여기서 龍은 붓을 말함. 雨濛濛: 비가 부슬부슬 내리다. 石走: 돌이 달아나다. 江翻: 강이 뒤집히다. 鬼泣空: 귀신이 울다. // 一陣: 한 무더기. 好風: 좋은 바람. 天地霽: 천지가 개다. 날씨가 맑다. 分明: 분명. 元化: 조화. 在胸中: 가슴 속에 있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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