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20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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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마당] 90세 장모님 생신 날 윤영식 수필

  • 입력날짜 : 2019. 03.11. 18:57
장가들던 시절 장모님의 그 곱던 얼굴과 용모가 세월을 굽이굽이 지나 구십 세 생신날이 되어 처가를 방문 했다. 어렵게 아파트 문을 열어주시는 장모님의 손 등엔 치열한 당신의 과거 역사만큼 고난과 회한으로 점철된 뼈마디가 울퉁불퉁 계곡처럼 흐르고 있었다.

문을 열고 걸어 나오시는 장모님, 굽은 허리를 타고 나오는 건 구십 도의 세월이다.

계절이 수 없이 바뀌는 동안 찾아뵙지 못한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함이기도 하고 그동안 아이들 뒷바라지 하느라 잊고 지냈던 동기간 친척을 만나는 설렘으로 아내는 분주하게 삶고, 끓여서 승용차 뒤 트렁크가 빽빽하다.

차창을 응시하는 아내의 시선이 60여 년 전으로 줄달음치는 듯 보였다. 아내가 두 살 때 장인께서는 지리산 전투에 참전중 전사하시고 만다. 장모님은 23세의 꽃다운 나이에 홀로 되시어 내 아내를 길러 내셨다.

아내가 철이 든 후 장모님의 주변의 강권 때문에, 시대의 세파를 견디기 위해, 개가하시어 지금은 그 자녀들의 효심으로 극진한 말년을 보내고 계신다. 그래서 그런지아내는 언제나 어머니라는 언어만 나오면 울컥 거리는 게 습관이 돼 있다.

아내의 쓴 경험과 장모님의 곤궁한 역사는 한 종이에 겹쳐져 있어서 언어나 행동양식이 너무 판박이 일 때가 많아 놀라곤 한다.

한 예가 있다.

장모님은 누구에게로 부터 뭔가 받으시면 몹시 불편해 하신다. 먼저 거절하는 말이 나온다. 그냥 인사로 거절이 아니라 진정한 거절이라서 상대가 당황 할 때가 많은데 사위인 나에게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한번은 용돈을 드렸는데 끝내 사양하셔서 몹시 화를 내면서 한번만 더 거절 하시면 바로 취소하겠다고 엄포(?)를 놓아 지금은 중간 언어로 승낙 하시는 정도가 되었다.

90회 생신을 맞이하는 감사하는 자리에서 어찌 한 세기의 장모님의 역사를 소중히 새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일찍 남편을 여읜 한국의 고매한 여인이 세파와 맞서 오실 때 남이 주는 친절이 도리어 두렵기도 했을 터, 그건 자기 방어의 최선의 수단 이었을 것이다.

그 유전자가 내 아내에게서도 졸졸 흐르고 있어서 외식하자 제안 했다가 번번이 그 돈으로 시장을 한 바퀴 돌아 집에서 집 밥 먹은 기억이 전부이다 보니 아내의 지나친(?) 절약 정신과 -거절표현 우선주의- 때문에 많은 다툼이 있었으나 그 때문에 낭비하지 않는 생활이 몸에 밴 것은 순전히 내 장모님의 조심성의 성정을 물려받았음이 분명하다. 그러한 조심성은 당신의 조각난 인생을 온전한 모습으로 재구축 하시고 훌륭히 유지발전 시키실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 여긴다.

평균 수명을 훌쩍 넘기시면서도 당신의 용변을 손수 책임지시고, 밝으신 기억력을 유지하시며 밝은 청력과 언어로 담소하시는 모습과 청빈한 삶으로 후손에게 폐 끼치지 않고 큰 문턱을 넘고 계시는 장모님께 묵묵히 바라만 보고 살았던 큰 사위로서 그저 감사 올릴 따름이다.

전 가족 갈비 집 축하연이 끝나고 “그냥 걸어갈 수 있는데 업긴 뭐 하러 업어 ? ”

아들 등에 업히시면서 붉어지신 볼에 소녀처럼 행복이 발그레 번진다. 손녀들이 카메라를 눌러대고 깔깔 박수가 터지고 어머니 등 뒤에서 아내는 어머니의 과거 90년을 고운 보자기에 곱게 갈무리하는 듯 눈가에 애틋한 표정이 가시질 않는다.

혹시 저 모습이 마지막은 아닐까 하는 분리불안,

어머니 젖꼭지에서 입술이 떨어지는 애정 단절의 악몽 !

난 지금 아내의 그 심장소리를 놓치지 않고 셈하고 있다.

축하연은 끝나고 장모님의 차창안의 모습은 초가을 별빛처럼 서산을 넘고 있었다.


<약력> 계간 문학춘추 수필 등단, 광주수필문학회, 문학춘추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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