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4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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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의 미켈란젤로를 위하여
장옥순
수필가·시조시인

  • 입력날짜 : 2019. 06.16. 19:33
이탈리아의 열네 살짜리 소년 정원사가 당대 최고의 가문인 메디치가에서 정원 꾸미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 소년은 다른 정원사들이 쉬거나 잡담하는 동안에도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소년은 일을 마친 후에도 화분마다 꽃무늬를 조각해 아름다운 정원을 더욱 운치 있게 바꾸어놓았다. 어느 날이었다. 소년은 늘 그렇듯 정원에서 혼자 남아 화분에 꽃무늬를 조각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마침 정원을 산책 중이던 주인이 그 모습을 보고 다가와 정원만 가꾸면 돈을 더 주지도 않는데 왜 조각까지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소년은 땀을 닦고 싱긋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이 정원을 멋지게 가꾸는 게 제 일입니다. 화분에 조각하는 것도 정원을 가꾸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저는 이 일이 매우 재미있습니다.”

주인은 어린 소년의 대답에 감탄했고, 그의 손재주가 비범하다는 것을 알고는 그때부터 후원하기 시작했다. 소년 정원사는 당대 최고의 가문으로부터 후원을 받으면서 조각 실력을 키웠고, 마침내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조각가가 될 수 있었다. 그의 이름은 바로 미켈란젤로.(조국 지음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48-49쪽에서 인용함).

똑같은 과제학습에도 학생들마다 보이는 자세가 다 다르다. 종이 위에 우리 교실을 꾸미기를 할 때였다. 공간지능이 발달한 아이는 건축 설계도를 방불케 하는 배치를 해서 깜짝 놀랐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덩치도 크고 발표력도 왕성한 아이다. 계속해서 자기만 시켜줘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다. 아직은 책 읽기를 힘들어하지만 욕심만은 대단하다. 늘 질문하고 물어보며 내 시선을 자기 곁에만 묶어주지 못해 삐지기까지 한다.

그런데 교실 꾸미기를 할 때는 집중하느라 말조차 하지 않았다. 그 아이가 가진 재주를 발견하는 행복한 순간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다 했다면서 제대로 하지도 않고 들고 나오는데도 그 아이는 꼼꼼하게 집중하고 있었다. 놀이 시간에도 마찬가지다. 레고를 가지고 집을 짓는 모습이 영락없이 건축가다. 날마다 집을 만들어가는 모양새가 특별하다.

10명의 아이가 가진 재주가 같은 아이는 한 명도 없어 보인다. 다른 친구들이 가족놀이를 즐길 때 그림을 그리며 즐거워하는 아이가 있는 가하면, 블럭 쌓기에 몰두하는 아이, 퍼즐 맞추기에 여념 없는 아이, 그림 그리기는 지루해 하지만 노래하고 춤을 추자고 늘 조르는 아이까지 모두 다 다른 개성을 보여주는 아이들.

담임선생님과 부모님은 그 모든 아이들에게서 자신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며 행복해하는 그 무엇인가를 찾아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글씨는 잘 몰라도 그림에는 천부적인 재주를 보이는 제자에게 “왜 너는 아직도 다른 친구들처럼 글을 읽지 못하니?” 라고 채근하는 부모나 선생님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책은 줄줄 읽는 아이가 그림을 그리자고 하면 재미없어하는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다. 타고 난 재주가 다르기 때문이다. 장미꽃으로 태어난 아이에게 백합꽃이 되라고 해서는 안 됨을 깨닫는 일이 부모나 선생님이 가져야 할 첫 번째 덕목이다.

인간은 평생 공부해야 하는 존재다. 부모도 자녀들이 자라가는 속도를 앞질러가며 배워야 한다. 선생님이 공부해야 하는 것도 너무나 당연하다. 세상은 초고속으로 변해 가는데 교육학 공부나 정교사 자격, 순위고사 합격증으로 교단에 서 적응하기 힘든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전체를 보던 교실에서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봐 줘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학부모와 학생들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이 있어야 하고 가르침의 권위까지 있어야 교사로서 출발선에 설 자격을 갖추게 된다. 그러고도 평생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공부하고 연찬하는 노력을 배가해야 되는 자리가 교직이다. 그 때야 비로소 내 곁에 다가온 미켈란젤로들을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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