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4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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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명품마을을 찾아서] <13>강진 동문마을
다산 선생 향기 가득 조선 실학의 완성지
정약용-강진 주막 노파 만남 스토리 과거 그대로 재현 ‘사의재 저잣거리’
절망 밖에 보이지 않았던 귀양 시절 막다름에 만난 희망이자 창조의 공간
2015년 명소화사업 추진 관광지 변신 다산 마음 헤아리는 ‘시간여행’ 인기

  • 입력날짜 : 2019. 10.16. 18:23
사의재 동문주막
남도 답사 1번지 강진. 강진 고을은 예로부터 풍광이 뛰어나고 인심이 넉넉했다. 멀리 월출산을 배경으로 강진읍을 삼면으로 둘러싼 높고 낮은 산들과 바다를 끼고 강진만 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구릉지대, 강진만 끝자락에 자리한 마량포구는 푸른 섬들과 갯벌로 풍요롭다.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인 김영랑도 이런 산과 들의 넉넉한 품안에서 나라 잃은 설움을 마음껏 자신의 서정적 글로 풀어냈다. 역사와 문화가 오롯이 살아 숨 쉬는 고을 강진, 남도 답사 1번지로서의 명맥을 당당히 지켜오고 있다.

◇다산의 발자취 학문의 얼 그대로

강진군 강진읍에 자리한 동문마을. 강진의 수많은 마을 속에서도 이곳이 특별한 이유가 있다.

바로 다산 정약용 선생의 발자취와 학문의 얼이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다산은 18년간의 강진에서의 유배생활 중 다산초당에 거처를 정하기 전까지 동문마을 주막 사의재에서 4년을 보냈다. 이곳은 주모 할머니와 다산의 운명적 만남의 스토리가 있는 곳이고, 그러한 영향을 받아 강진이 실학의 완성지로 자리를 잡게 해 줬다.
사진 위부터 사의재 한옥체험관, 동문마을 전경, 동문마을 빨래터

◇2012년 유네스코 역사인물 선정

다산 정약용을 빼고 강진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유네스코는 2012년 다산 정약용 선생의 학문적 위업과 실학 정신을 기려 ‘유네스코 역사인물’로 선정했다. 2012년은 다산 선생 탄신 250주년 되는 해였다.

선정의 배경은 바로 실학정신. 실학(實學)은 ‘학문은 이론보다 실생활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사상’으로 ‘관념적 학문을 탈피해 이용후생(利用厚生), 실사구시(實事求是), 경세치용(經世致用)의 이념을 취한 실제로 소용되는 학문’이다. 나라를 부하게 하고 백성을 넉넉하게 ‘부국유민(富國裕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실학사상은 한마디로 백성을 잘 살게 하는 학문이다. 당시 중농학파는 경자유전 원칙을 내세우거나 농민들의 최저생활을 주장했고, 중상학파는 상공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데 그 역할을 다하는 등 당시 시대상을 초월한 그야말로 혁명적 사상이었다. 지행합일설의 양명학을 기반으로 국학(國學)을 연구했던 위당 정인보 선생은 500여권의 책을 저술한 다산을 동양최대의 석학으로 불렀다.

◇다산과 노파의 역사적 만남 ‘사의재’

결과야 거창하지만 강진에서의 다산 선생의 시작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다산이 강진에서의 유배 초기에 완성한 ‘상례사전(喪禮四箋)’에는 ‘또 전전하여 강진으로 귀양 왔다. 강진은 예전 백제의 남쪽 변방이다. 낮고 비루한데다 풍속이 남달랐다’라고 첫 만남이 기록돼 있다.

원래 유배 온 사람들의 거처는 마을의 현감이 정해주는 게 관례이나 당시 현감은 다산에게 그런 친절을 허락하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서슬 퍼런 현감의 냉대를 뒤로하고 기거할 집을 찾아 11월 말 한파를 온몸으로 맞아가며 읍내를 지나 동문에 이르렀을 땐 칠흑의 어둠이 엄습해왔다. 더 이상의 희망이라곤 없을 때 저 멀리 보이는 희미한 불빛. 마을 우물가에 자리한 ‘매반가’ 즉 밥을 파는 집,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주막이었다. 새벽부터 추위와 허기를 달래고자 다산은 밥 한술을 청했고, 노파는 혀를 한번 차고는 더운밥을 내줬다고 한다. 바로 다산 정약용선생과 동문주막 노파와의 첫 인연이다.

이에 대해 다산은 ‘귀양 온 처음에는 주민들이 자기 집으로 찾아올까봐 두려워 문을 부수고 담을 헐어버리면서 피했으나 유독 손씨와 황씨 등이 나를 도와줬다. 이 사람들로 말하자면 이 어려운 시기에 근심과 걱정을 함께 나눈 사람들이며, 귤동초당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라가 평온해진 뒤에 알게 된 사람들로서 읍내에서 사귄 사람들의 정만큼은 못하다’라고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다산은 노파가 내어준 구석골방에 들창을 가려 막고, 얘기할 사람도 없이 밤낮없이 틀어박혀 밤이고 낮이고 혼자 틀어박혀 지낸다. 이런 다산에게 주모 할머니의 “어찌 헛된 삶을 사시려 하는가? 제자라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한다. 이때 정신을 차린 다산은 스스로 편찬한 ‘아학편’을 주교재로 강진의 여섯 제자를 지도했으며 상례사전, 아학편훈 등을 저술했다.

사의재는 다산이 지친 심신을 새롭게 하고 교육과 학문연구에 헌신하기로 다짐하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생각(思)과 용모(容貌)와 언어(言語)와 행동(行動)의 네 가지를 올바로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곳에서 4년을 시작으로 18년간 강진에서의 유배기간 중 다산은 조선 최고의 실학자로 세계의 평가를 받게 된다. 사의재는 절망밖에 보이지 않았던 막다름에 만난 희망이자 창조의 공간이다.

◇읍내권 관광 중심지 역할 톡톡

다산 정약용이 유배생활을 했던 강진의 사의재 저잣거리가 옛 모습을 되찾아 관광지로 운영되고 있다.

강진군은 감동적인 이야기가 존재하는 사의재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도록 2015년 ‘사의재 명소화 사업’을 실시했다.

정겨운 돌담장 따라 펼쳐지는 조선시대 풍경을 구경하다 마을 어귀에서 만나게 되는 나무다리를 지나면 나타나는 주막. 주모는 다산 선생이 즐겨 드셨던 조밥에 아욱국, 막걸리, 파전, 간재미찜 등으로 손님들의 군침을 자극한다.

또한 주막과 상점가가 다산 선생이 살던 시대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특히 매주 토·일요일이면 주막엔 유배 온 정약용을 처음 맞이해 줬던 주모와 딸이 손님을 맞아 너스레를 떨고, 곤장 맞기와 주리 틀기 등 민속놀이 마당이 펼쳐진다. 지역민으로 구성된 재현 배우들이 보여주는 마당극이 있고 저작거리엔 조선시대 인물들이 활보하니, 한번쯤은 조선시대 인생을 살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법하다.

다산 실학사상의 모태인 사의재는 강진읍내권 관광의 핵심자원으로 세계모란공원, 영랑생가, 강진미술관 등 관광자원들과 연계해 읍내 관광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단순히 옛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닌 그 시대로 돌아가 다산 선생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는 사의재다./최지영 자유기고가·강진=정영록 기자

/사진=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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