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27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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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자리 그 영화인들 백년을 못가는구려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345)

  • 입력날짜 : 2019. 11.19. 18:13
大隱巖南止亭故宅
(대은암남지정고택)
고죽 최경창

문전에 찾던 사람 연기처럼 흩어지고
영상자리 영화인들 백년을 못 가는데
담장에 산수유 꽃만 모르는 듯 피었네.
門前車馬散如烟 相國繁華未百年
문전거마산여연 상국번화미백년
深巷寥寥過寒食 茱萸花發古墻邊
심항요요과한식 수유화발고장변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다.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렸다는 권문세가도 십년을 채우지 못한다는 뜻이겠다. 시적 상관자인 남곤은 저 유명한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 일파인 사림파를 숙청한 뒤, 좌의정을 거쳐 1523년 영의정에 올랐던 인물이다. 떵떵거렸던 인물이지만 그가 떠난 뒤로 골목길도 한가하다는 시상을 일궜다. ‘적적한 골목길에 한식 같은 차가움이 지나는데, 산수유 꽃만 담장 가에 모르는 듯 피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영상자리 그 영화인들 백년도 못 가는구려’(大隱巖南止亭故宅)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1539-1583)으로 조선 중기의 시인이다. 당시(唐詩)에 뛰어나 백광훈, 이달과 함께 ‘삼당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시는 청절하고 담백하다는 평을 얻었을 정도였다. 글씨와 그림, 학문, 문장에도 뛰어났으며 특히 시는 중국에까지 그 명성이 알려졌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문전에 찾아오던 사람들 연기처럼 흩어지고 / 영상자리 그 영화가 백년도 못 가는구려 // 적적한 골목길에 한식 같은 차가움 지나는데 / 산수유 꽃만 담장 가에 모르는 듯 피었구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대은암 남지정(남곤)이 살던 옛 집에서]로 번역된다. 원문은 [대은암 남지정(남곤)이 살던 옛집에서]로 돼 있음도 주지할 일이다. 을사사화는 1519년 조광조·김정·김식 등 신진사류가 남곤·심정·홍경주 등이 훈구 재상에 의해 화를 입은 대사건이었다.

당시 남곤의 세도가 하늘을 찌를 듯 당당했지만, 죽고 나니 별 것 아니지 않느냐는 비아냥거림이 숨어있다. 南袞의 ‘袞’자와 沈貞의 ‘貞’자를 합친 새우젓을 ‘곤쟁이젓’이라고 했단다.

시인은 당시의 당당했던 세도를 가만히 들춰내보인다. 한 자리하겠다는 위인들의 발길은 사라지고 화려했던 자리도 백년이 아니라 10년도 채 못 감을 떠올린 시상이다. 문전에 찾아오던 사람 연기처럼 흩어지고, 영상자리 영화가 백년을 못 갔다고 했다. 벼슬 한 자리하기 위해 찾아 든 사람들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뤘음을 알겠다.

화자는 후정은 삼당시인답게 적절한 비유법을 써서 시의 격을 높였다. 적적한 골목길에는 찬밥(寒食)같은 차가움이 쌩하게 지나는데, 산수유 꽃만 담장 가에 모르는 듯 피었다고 했다. 층층이과 식물인 산수유를 대동한 대리만족도 생각했으리라….

【한자와 어구】

門前: 여기에선 정승집의 문전. 車馬: 정승의 집을 찾아오던 높은 사람들. 相國: 조선 시대, 영의정(領議政), 좌의정(左議政), 우의정(右議政)을 통틀어 이르던 말. 巷: 골목거리. 寥: 쓸쓸하다, 寥寥는 같은 글자가 중복되는 첩어임. 茱萸花: 산수유 꽃. 發: 피었다. 古墻: 옛 담장. 邊: 주변.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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