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8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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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박대우
지역발전정책연구원장

  • 입력날짜 : 2020. 02.16. 16:42
1979년 10월26일 저녁, 청와대 근처 궁정동에 위치한 안가에서 어둠을 가르는 몇 발의 총성이 울렸다.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18년을 이어 오던 박정희 정권이 막을 내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정권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무엇 때문에 대통령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의 존재가 정권의 종말을 재촉했다는 것이다.

차지철은 자신의 집무실에 ‘각하가 곧 국가다, 각하를 지키는 것이 국가를 지키는 것이다’는 문구를 걸어놓을 정도로 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을 자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연히 박 대통령의 총애를 얻었고, 그 총애를 이용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정부를 비판하는 야당을 향해 탱크로 밀어붙여야 한다거나, 부산과 마산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을 때는 캄보디아에서 수백만명을 학살하고도 정권을 지켜냈다는 등의 망언들을 서슴없이 뱉어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와 같은 망언에 대해 박 대통령은 강하게 질책하거나 반대하지 않았다. 이는 차지철의 권력남용을 사실상 묵인 내지는 동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박 대통령과 차지철은 장기독재를 지탱하는 하나의 목표를 지닌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권총을 꺼내들었을 때 차지철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화장실이었다. 자신이 그토록 강조했던 국가를 지키는 것을 포기하고, 경호실장으로서 최소한의 책임감도 보여주지 못한 채 오로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고자 대통령을 팽개치고 재빠르게 도망친 것이다.

41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돌아보면 차지철의 등장은 박정희 정권의 종말을 알리는 징후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은 정해진 임기 동안 국민과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한시적 직위일 뿐이다. 대통령의 권한도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행해질 수 있으며, 이를 벗어나면 국민의 준엄한 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한다. 국가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신성한 영역이며, 지켜져야 할 가치인 것이다. 어떻게 대통령이 국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으며, 대통령을 지키는 것이 국가를 지키는 것이라는 망언이 나올 수 있는가? 특히 대통령으로서 이와 같은 행위를 묵인하는 것은 더더욱 심각한 것이다.

최근 주변의 모든 것들이 참으로 혼란스럽다. 대학교수의 비판적인 칼럼에 대해 그 교수는 물론이고, 언론까지도 적대시하는 여당의 처사는 불편하기만 하다. 더구나 129명의 국회의원이 몸담고 있는 거대정당이 정치적 해법을 외면하고 검찰의 수사와 처벌을 전제로 하는 고발을 선택하는 것은 무능한 것이다. 여기저기 비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당연하다. 결국 국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여론에 밀려 뒷걸음질 치면서까지 교수의 지나온 삶을 트집 잡는 것에는 안쓰러운 마음까지 든다.

‘정부가 보이지 않는다’는 쓴소리도 오래전부터 나오고 있다. 행정의 신뢰성 측면에서, 정책의 연속성 측면에서도 청와대의 목소리가 정부로 인식되는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선거를 통해 주인이 결정되는 청와대의 특성상 정치적 해석과 결정은 태생적인 한계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산물인 ‘어공’과 행정과 정책에 기반하는 ‘늘공’의 차이는 확연하다. 그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정치가 행정보다 우선해야 하고, 정치가 정책보다 우위에 서야 한다는 논리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국가보다 정권에 충성하고, 국민보다 권력에 고개 숙이는 제2의 차지철을 단호하게 내쳐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권력의 심장을 겨눴던 김재규의 한마디가 지닌 쩌렁쩌렁한 포효를 잊지 말아야 한다. “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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