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7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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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공원 어떻게 가꿔야 하나](16)전문가 제언
“새로운 생명으로 꿈틀거리는 광주공원을 보고 싶다”
항일·민주 실천한 ‘광주정신’ 품은 중요한 장소
공원의 역사 원형은 매우 중요한 광주시민 자산
14개 관련단체 ‘활성화’ 협약·실천 큰 결실 기대

  • 입력날짜 : 2020. 12.21. 20:04
노성태 사직문화보존시민모임 대표
2020년, 광주공원은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광주향교·사직문화보존시민모임·마을기업 꿈꾸는 거북이 등 14개 관련 단체가 광주 역사공원 활성화를 외치며 협약식을 가진 것이 출발이었다. 14개 관련 단체의 협약식은 형식적인 의례로 끝나지 않고 곧바로 실천으로 이어졌다. 두 번에 걸친 14개 기관의 의견 수렴이 있었고, 지난 8일에는 광주문화재단, 광주매일신문, 광주시 관광협회가 주관하는 ‘광주공원 어떻게 가꾸어야 하나’라는 주제의 토론회에 참가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토론회를 주관한 한 축인 광주매일신문의 열정은 대단했다. ‘광주공원 어떻게 가꿔야 되나’라는 주제로 무려 15번의 기획 기사를 썼다. 광주공원이 만들어진 후 가장 뜨거운 언론의 관심이었을 것 같다.

1913년 조성된 광주공원이 오늘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은 이유는 왜일까? 이는 광주공원이 품은 역사원형이 다듬어지고 주변 문화자원과 연결되고 결합 될 때 시민들의 쉼터는 물론 새로운 문화·관광자원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다.

광주공원이 있던 곳은 원래 성구강이라고도 불렸던 성거산이었다. 그리고 성거산에는 고려 어느 시점에 건립된 성거사(聖居寺)라는 절이 있었고, 지금까지 남아 광주공원의 터줏대감이 된 성거사지 5층 석탑이 남아 있다.

그런데 1908년 일제는 이곳 성거산에 의병들을 진압하다 숨진 일본 군인들을 위한 충혼비를 세웠고, 1913년에는 일본 왕가의 조상신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을 모시는 신사를 짓기 위해 공원을 만들었으며, 광주 진출의 선봉장이었던 일본 여인 오쿠무라 히오코(奧村五百子)의 동상도 세운다. 신사에는 원활한 식민 지배를 기원하는 종이쪽지(오미구지)가 주렁주렁 내걸리고, 기모노를 입은 일본인들로 북적이면서 광주공원은 30여년 동안 생경한 일본문화가 판치는 이역의 땅이 된다. 해방 이후 서중생들이 중심이 된 화랑단과 시민들에 의해 충혼비와 신사가 가장 먼저 헐리게 된 이유다.

해방 이후 광주공원은 광주시민들의 차지가 되면서 광주정신인 ‘정의로움’의 흔적들이 하나씩 쌓이기 시작했다.

현충탑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는 1962년 건립된 광주 4·19혁명을 기리는 ‘4·19의거 영령 추모비’가 서 있고, 그 건너편에는 4·19문화원이 있다. 4·19혁명 당시 경찰의 발포가 있었던 곳은 광주, 서울, 부산이었다. 광주는 이승만 독재 권력을 무너뜨린 4·19혁명 3대 성지였던 셈이다. 일본 신사가 있었던 성거산 정상에는 1963년 ‘우리 위한 영의 탑’이라 새겨진 현충탑이 건립된다. 당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광주·전남 전몰 호국용사 1만5천867명을 기리기 위한 탑이다. 광주 정상부에는 1972년 일제가 호남 8대 수괴(의병장)라 칭한 함평 출신 심남일 의병장의 순절비가 건립되어 있고, 최근에는 의병장에게 군량을 댄 신동욱의 항일사적비도 옆에 서 있다.

광주공원은 5·18 민중항쟁 당시 시민들이 계엄군의 학살과 폭력에 맞서 시민군을 편성하고 훈련했던 장소다. 광주공원 입구 계단에는 5·18표지석이 서 있고, 그 건너편에는 시민군의 상징이 된 ‘김군’의 동상도 서 있다. 그리고 어린이 공원 밑 옛 신광교회 터에는 “누군가 병든 역사를 위해 십자가를 짊어질 때 큰 생명으로 부활한다”는 일기를 남기고 5월27일 도청에서 숨진 류동운 열사의 추모비도 서 있다. 뿐만 아니다. 향교 뒤편의 사적비군에는 친일파였던 윤웅열, 이근호, 홍남유의 비를 넘어뜨린 후 단죄비를 세웠다. 친일파에 대한 광주다운 단죄다.

살핀 것처럼 광주공원은 일제 신사에서 출발, 해방 이후 시대정신인 ‘항일’과 ‘민주’를 실천한 광주정신 ‘정의로움’을 품고 있는 매우 중요한 장소다. 그리고 광주공원 가까이에는 광주 3·1운동 발발지이자, 1907년 조직된 호남창의회맹소 대장 기삼연 의병장이 순국한 광주천이 있고, ‘근대 건축의 보고’ 및 ‘서양촌’라 불리는 양림동이 있다. 그리고 민주화의 성지라 불리는 ‘금남로’도, ‘245빌딩’도, ‘옛 전남도청’도 지근거리다.

광주공원이 품은 역사원형은 매우 중요한 광주시민의 자산이다. 광주공원에 사람이 모여들게 하려면 광주정신을 품고 있는 광주공원의 역사원형을 다듬고, 주변의 역사·문화자원과 연계시킬 필요가 있다. 광주공원에서 사라진 정자 ‘붕남정’과 광주 최초의 근대학교가 들어선 ‘사마재’의 복원도 필요하다. 시민회관에는 시안의 비림(碑林)박물관처럼, 광주정신을 실천하다 순절한 분들의 어록을 새긴 의림(義林)박물관도 들어서야 한다. 양림동을 잇는 근·현대 역사길도 만들고, 역사길 곳곳에 스토리텔링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집행하기 위한 예산의 확보와 조직이 아닐까 싶다. 광주시의 지원과 언론의 관심, 시민들의 사랑이 절실한 이유다.

2년 후면 광주공원에, 무진군으로 강등된 광주가 다시 광주목으로 승격된 것을 기념하여 지은 희경루가 재건립된다. 희경루의 희경(喜慶)은 ‘기쁘고 경사스럽다’는 의미를 지닌 정자다.

2020년 광주정신을 품은 광주공원이 새로운 부활을 꿈꾼 한해였다면, 2021에는 뭔가 하나씩 문화자원으로 채워지는 기쁘고 경사스러운 일들이 지속되었으면 한다.

2021년, 새로운 생명이 꿈틀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광주공원의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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