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5일(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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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향토지리학자 김경수 박사
“향토문화는 현재를 알기위한 뿌리…온고지신 되새겨야”
삶의 근원이 되는 뿌리 ‘끌텅’부터 현재 시점까지 체계적인 조사 필요
발로, 눈으로…주제·장소별 x, y축 점찍는 향토지리학 연구 ‘외길 인생’
‘미디어시대’ 접목 산재된 향토자료 디지털화…값진 기록으로 남겨야

  • 입력날짜 : 2021. 01.21. 19:25
김경수 박사는…
▶전남 영암 출생 ▶전남대 지리학과 박사과정 졸업(문학박사) ▶前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학술부장 ▶前 국사편찬위원회 사료 조사위원 ▶前 광주시 지명위원 ▶현 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 ▶현 향토지리연구소 소장 담양에 자리한 김경수 박사의 자택 서재는 지난 수십년동안 수집해온 향토지리 관련 고물책들로 빼곡하게 차있다. 이 지역 최고의 향토지리학자로 손꼽히고 있는 김경수 박사가 지난 34여년 동안 지역 곳곳을 답사하면서 집필한 저서들.
우리지역 최고의 향토지리학자로 손꼽히고 있는 김경수(63) 박사는 지난해부터 각종 사진 자료와 풍수지리를 곁들어 광주지역에 최초의 것들을 찾아 연혁별 정리하고 있다.
광주의 최초 유치원, 예식장, 목욕탕, 건설회사, 우체국, 종합터미널, 로컬푸드 등 최초의 것들을 찾아 분야별로 기록화한 그의 SNS 계정은 향토대백과사전이라고 손색이 없을 정도로 지역의 역사·문화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그는 직접 답사를 다니면서 우리 고향땅의 끌텅 이야기를 캐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광주의 정체성, ‘뿌리’를 파보자는 그의 끈질김과 집요함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결과물을 만들어내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교직에서 퇴직한지 5년이 지난 김 박사가 여전히 향토지리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고 있는 이유는 최초를 정리하려면 현재의 자료부터 먼저 체계화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최근 로컬푸드직매장 동광주점 힐링플라워 스마트팜에서 만난 김 박사는 이날도 광주의 최초 로컬푸드점에 대한 조사를 멈추지 않고 기록했다. 김 박사를 만나 향토지리를 연구하게 된 계기와 향토지리연구가로서 추구하고 있는 신념,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향토지리에 대해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됐고, 연구를 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나

- x와 y축을 두고 올라가고 내려가는 y좌표는 시간과 연관된 역사학이라면 y축과 크로스하는 x좌표의 공간에 점을 찍는 게 지리학이다. 점을 찍는 일은 옛 시절에 쓰던 법적인 번지가 중요하다.

번지를 적어서 점을 찍어주고, 시간대순으로 정리한다. 오늘도 최초의 로컬푸드점에 궁금증이 생겼다. 자기가 재미를 느끼고 사명감을 느끼면 바라보는 감이 생기게 된다.

지리학을 전공했다. 지리학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대중화되지 않았다. 지리학과 출신들이 드물다. 전남대에도 지리학과가 있지만 지리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잘 활용되지 않는 게 안타깝다.

지리학을 한다고 하면 “땅장사를 하는 것이냐, 풍수지리학을 하는 것이냐”할 정도로 우리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들고 있지만 아직 활성화가 되지 않고 있다.

근자에 긍정적인 바람은 지리학을 전공한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해졌다는 점이다. 혼란의 시기에 점을 찍는 일이 필요해졌다. 유럽에서도 흑사병을 겪고 나서 탈출구를 찾기 시작하면서 지리학자가 동원됐다. 탐험을 하려면 그렇게 된다.

지리학이라고 정식적인 학문이라고 적립이 세분화되지 않았지만, 지리정보의 인식이 있는 사람은 위인전에서 읽었던 사람들도 지리학도들이다. 자원을 조사하고 외국에 진출해 수탈과 정복을 한다.

지리학을 전공해 영산강 전체를 답사해 이뤄낸 성과물을 바탕으로 2000년에 전남대에서 ‘영산강유역 경관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해 향토지리를 연구하고 있다.


▲우리 고향땅의 ‘끌텅’이야기를 캐는 것이라는 말에 대해 설명해주신다면.

- 어떠한 대상을 볼 때 처음에 뿌리라는 밑바탕을 보는 것이다. 어떤 문화라고 하면 넓은 문화가 있고, 좁게 해석하는 문화가 있다. 향토문화는 굉장히 넓은 영역이다. 근원을 되도록 알면서 조사를 하는 것과 그냥 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기왕이면 밑바탕을 알아보는 게 좋다는 게 기본적인 진리다.

그렇지만 너무 옛날 것만 파서는 안 좋다. 옛날의 것을 알기 위해서는 현재서부터 출발해야한다. 무엇을 조사하고 글을 쓰려고 할 때는 현재의 시점을 가장 많이 써야 한다. 현재 광주지역에서 옛 것들을 조사하는 것들을 살펴보면 조선시대 이전 것들을 너무 많이 다루는 경향이 있다.

내가 태어난 시대도 50-60년 세대지만, 이미 부모님 세대 때부터 완전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살아왔다. 성냥으로 불을 켰지 부싯돌로 불을 키던 시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일과를 중시여기면서 어떻게 체계화 할 것인가 고민하면서 분야를 나누고, 어떻게 줄기를 엮을 것인가 생각한다.

내가 하는 방식은 장소별 주제를 정해놓고 공식화 해놓고 살펴보는 것이다. 공식을 한 다음에는 사례를 맞춰가는 것이다. 지리학을 전공해서가 아니라 우리 일상 속에 상당히 지리학이 피부로 다가왔는데 네비게이션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지리학인지 못 느끼는 경우가 있다.


▲영산강 전체를 직접 답사해 이뤄낸 ‘영산강 350리’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가.

- 근면하고 부지런함에는 건강하니까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다. 우선 현장에 가보자는 생각을 가졌다. 그렇지만 그것이 꼭 잘한 것만은 아니다. 조사와 취재를 많이 해도 잘 분류를 해내야한다.

내가 영산강을 조사할 때만 해도 너무나 큰 줄기만 조사가 돼있었고,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동안 안해왔던 부분을 해봐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지역이 굉장히 넓었지만 우선 다닐 수 있는 곳까지는 다녀봤다. 영산강 줄기도 워낙 여러 줄기이고, 다 가볼 순 없었지만 최대한 가볼 수 있는 데까지 갔다. 산은 아버지고, 강은 어머니라고 불리는 것처럼 강과 산은 분리될 수가 없다. 지리학의 한 짝처럼 한 짝인 것이다.

짝 맞춤을 잘하고 좌표를 잘 찍어야만 마음이 후련했다. 직접 가본다던지 현장에서 내려다봐야하는데 잘 모르면 깜깜했다. 특히 인물에 대한 조사는 상당히 힘들었다.

어떤 지역사회는 개가 변화시킨 곳도 있고, 지진이 변화를 시킨 곳도 있으나 공통적으로 자연재해에 변화됐다. 지리학이라고 해서 현장에 가서 강물만 흐른다고 보는 게 아니라 강이 흐르면 왜 여기에 새가 자주 오는지 생각을 하고, 왜 저기에 수달이 있을까 바라보는 자연적인 시각이 있어야 한다. 제대로 기능과 역할이 잘 되고 있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영산강 350리’는 처음 단행본으로 냇가가 흐르면 어디로 가고 어디에서 만나는지 글로 집필한 책이다. 지리학은 거의 모든 것을 종합하는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동안 대표적인 성과물 소개와 향토지리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는지.

- 고산자 김정호를 따라 대동여지도에 새겨진 터를 한 곳 한곳 답사해 관련 문헌자료를 보고, 현재의 위치를 밝혀내고 변화된 모습을 담은 ‘광주땅이야기’가 있다. 현재의 위치를 기록하고 복원하면서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냈다.

광주땅 이야기는 ‘광주개관’, ‘풍수지리’, ‘풍수지리로 본 광주’, ‘대동여지도 개설’, ‘대동여지도로 본 광주’ 등 다섯마당으로 구성돼 있다.

어떤 지명을 검색할 때 전래지명사진이 뜨는데 국공립지리위원회에서 했다. 이때 광주 대표 집필자로 참여한 적이 있다. 또 퇴직하기 전 곡성군 지리편을 쓰고, 장성, 담양에 대해서도 썼다.

향토지리연구소에서는 장흥, 장평, 화순 동복, 나주 다시 등 면지를 펴내기도 했다. 이렇게 지역에 대해 더 세세한 정보를 취하려는 사람들이 있어 되도록 자세히 기록해 두는 게 좋다.

향토지리를 연구하면서 겪는 애로사항은 관공서에서 세세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정보화 시대에 더욱더 개방적이어야 하는데 역기능으로 정보가 과도하게 노출되면서 정보를 가지고 나쁜 곳에 사용될 수 있다는 생각에 차단된다. 예나 지금이나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권력을 갖는다. 추사나 정다산이 연역적인 방법에는 뛰어났지만 결국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고산자 역시 결국은 정보를 많이 획득해서 잘 활용했기 때문에 빛나는 업적을 이뤘다. 국가에서도 못할 일을 개인이 해내는 등 그 많은 지리연구를 어떻게 알아냈을까 미스터리가 많다. 지금까지 알아낸 것은 병조판서와 친했다고 알고 있다. 연구한 성과나 논문을 보면 중앙부처에 어떤 관료와 친했을 것이라는 설로 성과물도 나와 있다. 정보를 많이 취득하는 게 중요하다.


▲아직 완성되지 못하거나 지금 현시대에 필요한 향토지리에 관한 연구가 있다면.

- 그동안 많은 것들을 해왔지만 이제는 옛날보다 공부하는 환경이 상당히 좋아졌다. 여러 가지 장비가 스마트해지고 드론을 타고 조사할 수 있고, 네비게이션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좋은 시절이 왔으니 이제는 더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연구가 돼야 하는데 가장 아쉬운 것은 늘 현재의 것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21세기가 벌써 20년이 지났다. 21세기의 변화를 늘 체크해야한다. 현재를 적립해놓는 게 중요하다. 21세기 자료조차 정리를 잘 하지 못하는 마당에 20세기 자료를 정리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예를 들어 옛 시절에는 전국에 2천만부가 발행됐던 전화번호부 책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국립중앙도서관에만 있는 수준이다. 전화번호부 책을 보면 옛 주소들이 그대로 나온다. 최초의 노래방을 찾으려면 연대별로 작성된 자료를 뒤져봐야 하는데 결국 관공서에 기록이 남지 않았다면 전화번호부 책을 뒤져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자료도 계열화해서 보관을 잘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오늘 쏟아지는 자료는 이전에 만들어진 자료만큼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 자꾸 삭제를 하고 지울게 아니라 필요한 부분을 뽑아서 훗날에 자원이 되고, 자산으로 삼을 수 있도록 정리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것들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우리지역에 있는 것들에 대해 표본을 추출해서 타임캡슐처럼 훗날에 열어봤을 때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남기고 기록화하는 게 필요하다.


▲향토지리학자로서 향후 계획이 있다면.

- 지난해 겨울부터 생각해오면서 현재 페이스북을 통해 전하고 있는 광주의 최초의 것들 작업을 하고 있다. 고물책을 수집해서 디지털화해야하는 시대다. 굳이 도서관을 가지 않아도 디지털로 정보를 공유하고 SNS(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활용해 공적인 면에서 시민 모두가 정보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앞으로 미디어시대에 앞날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이제는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욱 더 중요하게 된다.

민족문화백과사전처럼 광주도 광주향토백과사전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기존 체제의 생태계에서 디지털로 큰 변화를 겪고 있다. 향토백과사전이라고 해서 꼭 종이로 만들어야한다는 것을 고집해 얽매일 게 아니라 종이로 볼 사람, 디지털로 볼 사람 등 선택에 맞게 디지털화해야한다. 이 자료를 토대로 영상으로 만들어내기도 해야한다.

향토문화는 ‘옛날로 돌아가자’는 고리타분한 생각과 역사책만 고집하는 게 아니라 현재를 알기 위해서 꼭 필요한 부분이다.

/김다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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