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8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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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릿발에 달빛이 환히 비추어 아름다움 다투네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155)

  • 입력날짜 : 2015. 11.16. 19:02
霜月 (상월)
용재 이행
저물녘에 가랑비가 하늘을 씻기더니
밤 되어 바람 부니 안개를 걷어 내고
서릿발 달빛에 비춰 아름다움 다투네.

晩來微雨洗長天 入夜高風捲暝煙
만래미우세장천 입야고풍권명연
夢覺曉鐘寒徹骨 素娥靑女鬪嬋娟
몽각효종한철골 소아청녀투선연

맑은 날 밤이면 어김없이 내리는 촉촉한 이슬은 꽃이나 풀벌레들에겐 단비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추분이 지나면 날씨가 싸늘해지면서 무서리가 촉촉히 내린다. 한기(寒氣)를 느끼면서 동지 이후에 살을 에는 듯하게 찾아은 손님이 삭풍(朔風)이다. 시인은 이런 늦가을의 문턱에서 맑은 날 하룻밤의 정경을 한 폭의 산수화에 주섬주섬 담고 싶었던 모양이다. 청명한 밤에 잠에서 깨어보니 서리에 달빛이 비춰 아름다움을 다툰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서릿발에 달빛이 환히 비추어 아름다움을 다투네(霜月)’로 번역되는 칠언절구다. 작가는 용재(容齋) 이행(李荇:1478-1534)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다른 호는 창택어수(滄澤漁水), 청학도인(靑鶴道人)으로 안다. 남산 청학동에 작은 집을 짓고 30년 동안 벼슬하면서 양식의 유무를 묻지 않아서 집안이 마치 가난한 선비 집 같았으니 겨우 의식만 이어갔다고 한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저물녘에 가랑비가 하늘을 씻기더니만 / 밤이 들자 바람이 불어서 어두운 안개 걷어내었네 / 새벽 종소리에 꿈을 깨보니 뼛속까지 스미게 추었었는데 / 서리에 달빛이 비추어 그 아름다움을 다투는구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서리 내린 밤]으로 번역된다. 끝구에 나오는 한자 어휘의 쓰임을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素娥(소아)’는 달 속에 있다는 흰옷을 입은 선녀라는 뜻이나 일반적으로 [달]을 뜻하고, ‘靑女(청녀)’는 서리와 눈을 맡은 신이란 뜻이나 대체적으로 [서리]의 별칭으로 쓰인다. 또한 ‘鬪嬋娟(투선연)’은 ‘아름다운 모양’을 형상화하고 있는 어휘로 4구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한문투다.

시인은 해질녘에 가랑비 내리는 정경을 보면서 달빛 비추는 아름다움을 그렸던 것 같다. 한 줌 내리는 가랑비가 빗질하듯 하늘을 씻기더니 밤이 되니 바람 또한 어두운 안개를 걷어 냈음으로 시상을 일으킨다. 이런 조용한 시간 새벽에 잠을 깨니 날씨가 추워 서리가 맺혔는데 달빛에 비추어 아름다운 한국화 한 폭을 그렸으려니.

화자는 서리 내리는 밤을 주제로 하여 아름다운 정경을 그렸음을 안다. 저물녘부터 새벽까지의 시간적인 공간에서 ‘가랑비→바람과 안개→새벽종 소리→달빛’이란 시어들을 주섬주섬 모아 담아 공간적인 시차와 조화를 부리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서리에 비친 달빛이 같이 놀자고 아름다움을 다투고 있었으니.

※한자와 어구

晩: 늦다. 곧 저녁. 洗: 씻다. 捲: 걷다, 힘쓰다. 夢: 꿈. 覺: 깨다. 微雨: 가랑비. 長天: 넓은 하늘. 高風: 높은 곳에서 부는 바람. 暝煙: 어두운 안개. // 曉鐘: 새벽 종소리. 徹骨: 뼛속을 뚫다. 뼛속까지 통하다. 素娥靑女: 달빛과 서리. 鬪嬋娟: 맵시가 날씬하고 아름다운 모양. 여자의 맵씨.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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