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정남진 전망대.

옷깃을 파고드는 차가운 바람이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주저케 한다. 긴 호흡 한 번 내쉬고 큰 맘 먹고 떠나는 겨울 여행, 이왕이면 포근한 날씨에 입맛 돋우는 제철 음식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이런 편안하고 건강한 여행을 꿈꾼다면 봄이 가장 빨리 온다는 정남진 장흥이 제격이다. 거창하게 떠나는 여행이 아니어도 좋다. 가족과 함께 가볍게 나들이 가는 마음으로 장흥이 자랑하는 겨울철 별미를 맛보러 떠나보자.

◇장작불 둘러앉아 먹는 굴 구이

요즘 장흥에 들어서면 편백나무의 상쾌한 피톤치드 향기 뒤로 굴 구이의 구수한 냄새가 따라온다. 겨울철 장흥의 최고의 별미 중 하나는 굴 구이다. 장흥 지역민은 물론, 외지에서도 굴 구이의 맛에 반해 바닷가 구석진 마을까지 방문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벌겋게 피워 오른 장작불 위에 바다에서 막 건진 굴을 올려놓으면 구수하면서도 향긋한 바다 냄새가 진동한다. 준비된 소도(小刀)로 하얀 속살을 발라 입안에 넣으면 짭조름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세상 부러울 것 없다.

장흥에서도 용산면 남포마을과 관산읍 죽청마을이 굴 구이로 유명하다. 마을 앞에서 주민들이 건져낸 굴을 직접 구워 먹으니 싱싱함은 두말할 것 없다. 남포마을에서는 활활 타오른 장작불에 굴을 직화로 구워내 구수함이 두 배다. 마을 앞에는 일출의 명소로도 잘 알려진 소등섬이 자리하고 있어, 연초 분위기 있는 해돋이를 계획하고 있다면 이곳에서 굴 구이를 먹고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묵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관산읍 죽청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굴구이집 간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죽청마을에서는 인근 갯벌에서 채취한 굴을 빨갛게 달궈진 철판위에 구워 먹는다. 깔끔한 실내에서 가스불을 이용해 굴을 굽기 때문에 아이를 동반한 가족단위 식객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아름다운 다도해가 한눈에 정남진전망대

굴 구이로 뱃속을 든든하게 채웠다면 겨울 바다를 도도하게 지키고 있을 남도의 아름다운 섬들을 눈에 담아보자. 아득한 다도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 있는데, 바로 관산읍 신동리에 위치한 정남진전망대에 오르는 것이다.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10층 전망대에 올라서면, 다도해의 그림 같은 풍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9층 커피숍에서 다도해를 배경으로 따뜻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겨보는 것도 좋다.

전망대 3층에서 8층까지의 공간은 관광객들에게 추억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테마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계단을 따라 걸어 내려오면 8층 북카페, 7층 문학영화관, 6층 추억여행관, 5층 축제관, 4층 장흥 이야기관, 3층 특별전시관을 만나볼 수 있다. 각 층을 잇는 계단은 트릭아트, 장흥의 어제와 오늘, 향기계단 등으로 꾸며져 있다. 전망대를 내려오면 한류스타 29명의 동상이 서있는 정남진테마공원이 꾸며져 있어 사진 한 장으로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다.


◇처녀의 고운 머리칼 닮은 매생이

남도의 겨울 먹거리로 뜨끈뜨끈한 매생이탕을 빼놓을 수 없다. 처녀의 고운 머리칼을 닮았다는 매생이는 바닷가 아낙의 손놀림 몇 번이면 정갈한 자태로 거듭난다. 이렇게 만들어진 매생이를 탕으로 끓여내면 기가막힌 바다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뜨끈한 매생이가 입안을 감싸다 목을 타고 부드럽게 넘어가면 속은 따뜻해지고, 입안에는 바다 향기가 그윽하게 맴돈다.

장흥에서는 미운 사위가 오면 매생이탕을 내놓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매생이탕은 펄펄 끓여내도 김이 별로 나지 않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처음 매생이탕을 먹은 사람이 급히 먹었다가는 제대로 된 뜨거운 맛을 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한 번 조리한 매생이는 다시 끓이면 매생이 가락이 녹아내리기 때문에 차게 해서도 먹는데, 이렇게 먹으면 매생이 특유의 향을 좀 더 깊이 음미할 수 있다.


◇득량만 바다를 살린 ‘무산김’

장흥에 오면 전국 최초로 산(酸)을 사용하지 않고 기른 친환경 무산김을 맛볼 수 있다. “산(酸)이 없다(無)”하여 ‘무산김’이라 불리는 이 김은 유명 매스컴에 ‘착한김’이라고도 소개된 적이 있다. 장흥 무산김은 득량만 청정해역에서 햇빛과 해풍에 노출시켜 자연 그대로의 전통방식으로 기른 김이다. 자연 방식을 고집하다 보니 수확 시기는 다소 늦어지지만 맛과 향은 일반김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김은 양식과정에서 ‘잡조류’가 부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산을 뿌린다. 요즘은 다소 농도를 낮춘 유기산을 사용하지만 장흥에서는 이 조차도 사용하지 않는다. 산을 사용하지 않다보니 해양생태계 살아나 낙지와 매생이, 굴의 수확량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연안에서 잡히는 낙지는 20%, 매생이와 굴의 수확량도 예년에 비해 10% 이상 늘었다. 자연과 공존을 선택한 인간의 헌신에 바다가 보답한 셈이다./장흥=고병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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