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作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위키피디아 검색>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作 ‘빙해’

피터 브뤼헐 作 ‘베들레헴의 인구조사’ <위키피디아 검색>

2020년 새로운 마음으로 집필을 시작 한지도 이번 달 글을 마감하게 되면 꼬박 한 해를 채우게 된다. 연재를 하는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연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는 과연 밀리지 않고 글을 써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가장 컸었다. 그래도 모든 일의 시작이 있다면 마무리가 있듯 그 시작점의 한 단락 정도를 어느 정도는 만족스럽게 완성해 낸 것 같아 매우 보람 있고 뿌듯한 마음이다.

좋았던 경험들도 참 많았는데 글로 인해 라디오에 출연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었고, 신진작가들을 소개하는 유튜브 방송에도 나가게 됐으며 전시 관련한 여러 글들을 쓰는 촉매제가 됐다. 더군다나 행복했던 것은 ‘가족, 바다, 봄, 연인들 등…’ 매번 달라지던 키워드들을 핑계 삼아 무료한 일상을 탈피해, 소재를 찾고 글을 쓰는 그 시간만큼은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가 있어서 참 좋았다.

2020년도 어느새 한 달 남짓 남은 시점이다.

다사나난 했던 일들에 코로나까지 겹쳐 참 힘들고 어려운 상황의 연속이었지만 시간은 흘러 흘러 한 해 마지막을 가리키는 12월에 접어들었다. 독자 여러분들의 일 년은 어땠는지 그리고 새해 다짐했던 약속들은 과연 몇 퍼센트나 달성해냈는지 새삼 궁금하다. 아직 마무리가 덜 됐다면 마지막으로 남은 12월을 활용해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독자들은 12월 하면 어떤 이미지들이 떠오르는가? 물론 크리스마스 등 각종 행사들이 있지만 당연스럽게 떠오르는 겨울 이미지는 바로 ‘새하얀 눈’이다. 올해는 대설이 지난 지금도 하얀 눈을 볼 수 없어 조금 아쉽지만, 그 대신 명화 속에 담긴 겨울을 감상하며 위안을 삼아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보며 그림들을 소개해 본다.

필자가 좋아하는 겨울 그림으로는 독일 낭만주의 화가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풍경작품들을 소개해 볼 수 있다. ‘자연의 웅장함 앞에 한없이 초라해 보이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프리드리히의 작품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묘한 기분이 든다. 마치 뱅글뱅글 그려진 나선형 무늬를 볼 때 느껴지는 현기증처럼 독특함이 느껴지는데, 대표작으로는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소개해 볼 수가 있다.

그림을 보면 시원하게 뚫린 구도가 먼저 들어 온다. 그리고는 높은 산에 올라서서 산 아래를 관조하듯 바라보고 있는 신사의 뒷모습이 화면 정중앙에 보인다. 더불어 아찔하게 다가오는 거대한 자연의 풍경, 처음 이 그림을 접했을 때 들었던 느낌은 말 그대로 집에 가져다 두고 싶다 라는 생각뿐이었다.

다음으로는 잘 차려입은 신사가 이렇게 높은 산까지는 무슨 생각으로 올라온 것이며 과연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하지만 등을 돌리고 있어 표정을 살필 수 없기에 짐작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대신에 더욱 눈에 더 들어오는 것이 바로 ‘광활한 자연의 모습’이다. 사방이 고요해 적막함까지 드는 높은 산 속 홀로 자연을 바라보는 나약한 인간 존재는 그저 자연의 위대함에 숨죽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이 하지 않은 화풍을 구사하며 새로움을 보이는 작품은 특출날 수밖에 없고, 때론 이 특출함이 미술사의 흐름을 새롭게 바꿔놓기도 한다. 프리드리히가 속했던 낭만주의 또한 그 이전 사조였던 신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사조이다.

그리스 로마의 역사와 신화적 주제 그리고 ‘질서와 규범’을 기조로 내세웠던 신고전주의에 반발해 생겨난 낭만주의는 전체가 아닌 ‘개인의 직관과 감성, 상상력’ 등을 중요시했다.

다시 말해 낭만주의의 큰 특징은 들라크루아나 제리코로 대표되는 낭만주의 작가들의 그림 속에서 볼 수 있듯이, 시대적 상황을 단지 우상화해 아름답게 묘사하려 애쓰기보다는 실제 우리 주변에서 마주칠 수 있는 실질적인 사건들에 인간적 감성을 불어넣고 재해석해낸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리고 이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들과는 조금 다르게 인물보다는 ‘자연의 풍경’에 중점을 두고 작업을 했던 독일 낭만주의 화가 프리드리히의 그림은 단연 독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전에는 볼 수 없던 풍경을 바라보는 독특한 화가의 시선과 해석 덕에 당시 그의 작품은 구매자들로부터 거부되기 일쑤였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긴 했지만 스무 살 무렵부터 미술에 관심을 갖고 코펜하겐으로 건너가 미술을 전공한 그였다. 그 과정에서 특히 ‘네덜란드의 풍경화’에 관심을 가졌고 판타지적인 감성이 깃든 ‘신비주의적 시’들에 심취했었다. 이렇듯 ‘경건함과 정신성’을 중요시 여기던 화가 프리드리히에게 예술은 ‘신을 향해 드리는 경건하고 간절한 기도’와 다를 바가 없었다.

또한 독특한 그의 그림에는 ‘우울한 감수성’도 엿보이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릴 적 경험했던 ‘가까운 이들의 죽음’ 때문이라는 추측이 주를 이룬다. 7살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 그리고 열살 때는 빙판이 깨지며 물속에 빠진 자신을 구하려다 대신 죽음을 맞이한 동생, 17살에는 누이 마리아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연이은 가족들의 죽음은 그의 감수성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특히나 1787년 12월 8일 동생 크리스토퍼의 죽음은 그에게 커다란 트라우마를 주는데, 프리드리히가 일부러 동생을 얼음 속으로 떠밀었다는 루머가 돌기도 해 한참 동안이나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던 그다.

이렇게 그의 우울과 불안은 늘 죽음과 맞닿아 있었다. ‘빙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이 나타내는 것도 죽음이다. 북극 서북쪽으로 새 항로를 찾아 나선 윌리엄 패리 선장의 항해와 비극적인 조난을 소재로 그려진 작품에는 얼어붙은 바다와 조각난 배의 잔해가 등장한다.

혹자는 이렇게 난파된 배가 얼음 속에 잠겨있는 모습을 통해 죽음이 표현된 것이라고도 설명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시기 아무나 가보지 못할 북극에 관한 이런 소재는 신비주의적인 시를 좋아했던 프리드리히에게는 흥미로운 소재였을 것이다.

이 작품처럼 그에게 12월 그리고 차가운 겨울은 ‘죽음’을 의미했으며, 그의 작품들은 마치 죽음과도 같이 극복할 수 없는 자연으로부터 오는 숭고함을 표현하는 창구 역할을 해냈다. 그리고 두려움을 극복한다기보다는 멀리 떨어져서 ‘관조’하는 데서 오는 안도의 감정인 ‘숭고’라는 단어가 보여주듯 그에게 자연은 언제나 위대한 존재였다.

다음 작품도 역시 눈이 내리는 풍경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그렇지만 앞서 소개한 작품처럼 자연의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사회적 현실을 비판하는 조금은 결이 다른 브뤼헐(Pieter Bruegel)의 ‘베들레헴의 인구조사’이다.

‘이때 가이사가 영(令)을 내려,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정혼자 마리 아와 함께 베들레헴이라는 다윗의 동네로 호적하러 올라가니…’ (누가복음 중 한 구절)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듯 사람들은 로마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명에 따라 호적조사를 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여야 했고, 나사렛에서 살고 있던 예수의 부모 요셉과 마리아 또한 호적을 등록하고자 자신들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향했다. 그러나 넘쳐나는 사람들로 묵을 곳을 찾기가 어려웠고 한참 만에 겨우 빌리게 된 마구간에서 예수를 낳게 된다.

브뤼헐이 그린 이 작품의 제목만 보면 ‘예수가 태어나기 직전’ 베들레헴에서 실시된 인구조사 상황이다. 그렇지만 고전 그림이 늘 그래왔듯 화면 정중앙에 등장해야 했을 주인공 요셉과 마리아는 쉽게 찾아보기가 어렵다.

게다가 지역을 떠올려 보건데 눈이 내리지 않을 지역임이 분명함에도 소복이 쌓인 눈은 더욱 낯설게 다가온다. 물론 아기 예수에 초점을 두고 기록할 수 밖에 없었을 성경, 그리고 말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의 모습을 소재로 잡는 것이 맞았겠지만 농민 화가라 불리던 브뤼헐의 작품은 사뭇 달랐다.

작품을 보면 화면 앞쪽에 호구 조사를 위해 떼지어 모인 한 무리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면 영락없이 시골 마을의 일상 모습들이 묘사돼 있다.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 화단에 식물을 다듬고, 부서진 마차를 다시 고치는 어른들의 모습은 여기저기 등장하고 있고, 아이들은 얼음판으로 변한 강 위에서 팽이치기가 한창이다.

제목과는 다르게 현실적인 시대상이 표현된 이 작품은 화가 브뤼헐이 살았던 16세기 당시를 묘사한 것으로,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플랑드르의 상황을 빗대어서 표현한 것임을 짐작할 수가 있다.

작품 속에는 당시 프랑스와의 전쟁을 한창 치르고 있던 펠리페 2세가 군사비를 시민들의 세금으로 충당하기 위해 실시한 인구조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성경 속 이야기’를 모티프로 끌어 들여와 당시 ‘왕에게 착취당하던 스페인 시민들’의 힘들고 참담한 현실을 비꼬듯 그려놓았다.

이런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서 다시 그림을 마주하게 되면 평화롭고 조용한 농촌 풍경 혹은 성경 속 이야기를 그린 그림이라고 여겨지기보다는, 그저 믿을 건 맨손뿐인 국민들의 아프고 혹독한 겨울나기처럼 보인다. 어쩌면 우리의 현실과도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민초들의 팍팍한 삶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이현남 <전남대 미술이론 박사수료>

너나 할 것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그려진 브뤼헐의 작품에서는 주연도 조연도 없다. 하지만 화면 속 말 위에 앉은 마리아가 잉태한 예수에게서 우리가 아직도 구원을 바라고 있듯 희망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우리이기에 아직 세상은 살아갈 만한 것일게다.

12월, 한 해의 마무리를 하는 기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 국민뿐만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 모두가 힘든 한 해를 보낼 수밖에 없었지만, 시간은 어느덧 흘러 2020년의 끝자락에 와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연말모임 등은 자제해야겠지만 내년을 기약하며 새로운 다짐을 해보는 시간을 독자들 스스로 가져볼 수 있는 12월이 됐으면 한다. 그리고 독자 여러분 모두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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