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6(일)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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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의 북적임과 들뜬 분위기를 나는 좋아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마냥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혼자 집에 있을 때는 보고 싶은 얼굴들이 머릿속에 연기처럼 잠시 들어왔다가 금세 사라진다.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던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고, 마주 앉아 밥 한 끼 같이 먹지 못하는 지금이 아쉽다가도 이 만큼의 거리를 두고 그 사람을 떠올리는 것이 왠지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이 애틋한 마음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그런 작고 따뜻한 고민을 집에서 혼자 하게됐다.
두터운 겉옷에 목도리를 두르고 시린 바람에 코와 볼이 붉어지기 시작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몇 편 있는데 그 중 이야기 하고 싶은 건 작년 겨울에 본 ‘윤희에게’라는 영화다. 영화는 편지를 매개로 흘러간다.
영화 속 주인공인 ‘윤희’와 ‘쥰’은 누구보다 가까이 지냈지만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지게 되고, 연락을 하지 않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한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소식을 전한다. 그리고 편지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읽는다.
그로인해 얼굴을 마주 할 용기, 그리고 현재의 삶을 충만하게 살아갈 용기도 얻는다. 나는 이 영화를 계기로 편지가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또 편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오코’와 ‘와타나베’ 또한 자주 만나지 못할 만큼의 먼 거리에서 살아간다.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곳은 다름 아닌 편지 위에서이다. 전화도 하지 않고, 얼굴을 볼 수도 없는 그들은 서로에게 편지를 쓴다.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또 자신을 둘러싼 일상의 사건들에 대해서 쓴다.
꽤 간격을 두고 쓰는 편지였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들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게 해줬다. 종이 한 장에 그렇게 큰 힘이 있다니. 실은 종이보다도 그 위에 풀어낸 작은 고백과 이야기에 그 힘이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나는 이들이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아름다운 연결이라고 생각했다. 얼굴을 보고 이야기 할 용기가 부족한 나와 비슷한 이들이 존재 한다는 사실이 그 생각을 초래 한 것 같다. 그저 이야기 속에 존재해도 공감이 됐다.
그 아름다운 연결을 나도 이어보고 싶어 자주 편지를 쓰게 됐다. 편지에는 솔직하고 담담하게 마음을 전하는 내가 담긴다. 편지를 쓰는 동안의 내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아무리 소란스러워도 편지를 쓸 때만큼은 모든 게 차분히 가라앉는 것 같다. 나를 가득 채운 머릿속의 잡생각들, 주변의 소음들이 나에게서 빠져 나가는 그 순간이 좋다. 할 말이 무척이나 많아 마음속에서 말들끼리 뒤엉키고 있을 때. 그럴 때 일수록 여유를 가져야 한다. 내면이 잔잔해지는 순간에 진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꺼내어 적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여유를 자주 갖고 싶어 나는 몇몇의 친구들과 펜팔을 시작했다. 시간을 약속 하지는 않고, 정말 쓰고 싶어질 때 쓴다. 어떤 이야기든 제약이 없고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이 유일한 규칙이다. 친구와는 전화도 하고 문자도 주고받는 사이지만 긴 호흡의 이야기를 읽는 건 다른 인상을 준다.
글로 전해지는 생각들과 상태. 그리고 나에게 돌아오는 질문들을 읽고 있으면 얼른 나도 답장을 하고 싶어진다. 주로 나는 요새 드는 생각과 읽고 있는 책, 재밌게 봤던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 편지를 적는 동안 들은 노래에 대해서도 꼭 일러준다. 그리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성실히 답도 적는다. 그도 내 답장을 읽는 동안 환기가 되길 바라며 또 내 이야기를 열심히 써내려간다. 하지만 쓰는 것만큼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고 보면 편지는 서로 이야기를 통해 존중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렇게 적으며 생각해보니 마음껏 사람을 만날 수 없고 대화 할 수 없었던 올해 나는 펜팔을 하며 대화에 대한 갈증을 해소 해왔던 것 같다. 즐거운 방법으로 대화를 끊지 않고 이어와준 펜팔 친구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여유를 가지고 적었던 그 편지들을 앞으로도 오래 머금을 것이다.
겨울에는 편지를 쓰기 참 좋은 것 같다. 연말이라는 핑계로 편지를 전하기에도 좋다. 집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계절이기도 하다. 나는 또 다른 이들에게 편지를 쓸 것이다. 만나지 못하더라도 이어져 있다는 걸 상기시키고 안부를 묻기 위해서다.
보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름을 적으며 애틋한 마음을 눌러 담고 싶다. 이 글을 읽는 이에게도 편지를 적어 보내고 싶은 마음, 책상에 앉아 누군가를 가만히 떠올릴 수 있는 여유가 함께 하기를 바라며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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