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창문을 열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녁에 ‘코스모스’를 읽으며 밤하늘이 얼마나 그리워지던지. 수험기간에는 생각이 많아지는 새벽마다 쳐다보던 풍경이었는데 대학에 온 뒤로는 본 지도 꽤 오래된 것을 새삼 깨달았다.

시원하고 확 트이는 밤공기. 밤공기는 그만의 청량함과 감성을 안고 있다. 밝은 도시의 빛에 가려보고 싶던 별빛은 온데간데 없었지만, 탁 트인 바깥 풍경을 보니 요 근래 끝없이 나를 옥죄던 ‘나’의 굴레에서 해방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어쩌다가 ‘나의 굴레’에 습관적으로 갇히게 됐을까? 그것은 세상이 부추기는 경쟁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사회는 개인의 일생을 끝없이 경쟁으로 내몰아 불안에 휩싸이게 한다. 중·고생때는 내신 경쟁, 대학에 올라와서는 스펙 경쟁.

아마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틀림없이 경쟁에 시달릴 거란 게 눈에 빤히 그려진다. 우월한 대상을 찾는 가장 효율적이고 본능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서 파생되는 불안은 사람을 자신이란 벽으로 가둔다.

그렇게 자신의 벽에 갇힌 자는,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마음속에서 심각한 생존 경쟁이 일어난다. ‘지금 아무것도 안 하면 결국 난 자아실현은 커녕 사회에서 도태돼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야’라는 생각처럼 말이다.

나도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럴 때면 눈앞이 캄캄해지고, 가슴이 먹먹해지고, 그저 지금 이 순간 숨만 쉬고 있는 내가 너무나 한심해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치열한 경쟁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바깥의 존재에게는 신경 쓰지 못하게 된다.

사람들이 경쟁의 불안에 정신 팔리게 되면, 공동체는 조금씩 흩어져간다. 내가 아닌 존재들의 다양성, 권리, 생명은 당장 놓인 경쟁 앞에서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지구에 사는 인간 외의 생명, 내가 마주하지 않는 곳에서 고통받는 존재들, 오염되는 것들은 그렇게 자리를 잃고 사라져간다.

어려운 말로 뒤덮인, 내 생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의견은 쉽게 비난하고 무시해버린다. 더 신경 쓸 정신이 없으니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편한 대로 사는 것이다.

밤 풍경을 바라보다가 저 멀리 보이는 산이 눈에 들어왔다.

온종일 사람들 속에서만 지내고 사람으로서 생각만 하다 그제야 ‘저 어두컴컴한 산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하는 질문이 올라왔다. 그곳의 식물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날벌레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야생동물이 있을까? 있다면 무얼 먹고 살까. 저 어둠 속에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불교에서도 강조하듯, ‘나’라는 존재에 사로잡히는 것은 좋은 현상이 아니다. 이 세상은 ‘연기’(緣起)의 이치에 의해 모든 것이 변한다.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결코 고정불변한 실체는 없다.

나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나’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는 단지 주어지는 오감에 대한 판단으로 이뤄진 것이다.

그것만으로 정말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맡고 손으로 만지는 모든 것들은 결국 언젠가 사라져 없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것을 잊고 오로지 내 욕심과 불안에 사로잡혀 이기적으로 변한다.

잠시 쉬어갈 시간이 필요하다. 꼭 남을 이기지 않아도 되고, 오로지 지금 이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아닌 존재들에 눈을 돌려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한 채 파괴해온 세상을 마주하고 그들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세상이, 돈이 나를 붙잡는다. 돈은 삶의 전부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살기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삶을 구축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이 있다면 아무리 늘어난들 그 이상으로는 솔직히 의미가 옅어진다.-청년들에겐 삶을 구축할 정도의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지만- 삶이 온전함에도 계속해서 돈이 부족하다 느껴진다면, 그것은 나의 쉼 없는 욕심과 불안의 부산물일 것이다.

경쟁에서 무조건 벗어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경쟁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역할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경쟁은 너무 과열됐다. 모두가 생각하는 ‘적당한’ 자리에 가기 위해선 마음속 깊은 곳과 바깥을 둘러볼 여유도 없이 움직여야 한다.

한 번 밀려나면 계속해서 밀려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쉼 없는 대외활동과 스펙을 채워 넣게 만든다. 그런데도 항상 나보다 높은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끝없이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탄 느낌은 덜어놓을 수 없다. 그렇게 과열된 경쟁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사람들이 점점 더 자신의 이익에만, 그리고 사회의 기준에만 빠져들게 하여 사회 문제가 발생한다.

많은 이에게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의 이익보다는 바깥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다. 지금도 충분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지만, 가끔은 진심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한 위선이 느껴져 거리감이 들 때도 있다.(위선인들 세상에 좋은 영향력이 퍼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이지만 말이다)

나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진심이 누구도 해하지 않고 좋은 세상을 만들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기심보다는 이타심이 많은 세상. 그런 세상 속엔 이런 치열한 생존 경쟁도 없을 것이다.

십여 분 간 밤 풍경을 바라보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우연히 밤공기를 타고 날아온 그 낯설고 신기한 느낌은 그동안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바라보게 해줬다. 습관적으로 나에게 갇혀있었던 지난 시간, 그로 인해 일삼았던 환경 파괴와 무시, 그리고 나와 비슷하게 살아가는 듯한 많은 사람에 대해서.

그들도 한 번 쯤은 이런 일들이 문제라고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 한들 현실은 마음처럼 쉽게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이게 바뀌길 바라는 건 터무니없는 이상주의일 뿐이야’라며 현실과 타협하기가 더 흔하고 쉬운 선택이다.

모리

이러한 현실은 우리를 지배하는 사회 구조가 만들어냈다. 사회 구조는 우리의 문제가 담긴 행동 양식에 필연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끝없는 경쟁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끝없는 경쟁이 필연적이다.

나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현실과 타협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지 않고 적어도 우리가 모두 가지고 있는 이 문제의식을 가만히 두지 않고 가끔은 들춰봤으면 한다.

‘어떻게 하면 이 끝없는 경쟁과 불안이 나아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좀 더 서로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나에게 이 고민의 작은 해답은 ‘나에게서 벗어나기’이다. 내가 가진 것,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내 바깥의 풍경과 이야기들을 바라보기. 그들과의 연결을 깨닫고 온전히 그들을 위한 삶도 생각해보기.

크고 작게 빛나는 별들처럼 우리의 크고 작은 고민이 모여 사회라는 우주를 만든다. 그리고 별처럼 빛나는 작은 생각들이 결국은 새로운 해답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은 지금보다 좀 더 평안하기를. 밤하늘을 바라보며 오늘도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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