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사상’ (3월호)에 실린 이석성 사진

일제강점기 1932년 이석성 작가가 쓴 새로운 시가 일본의 시 전문지에 공개됐다.

일본 시 전문지 ‘시와 사상’이 나주출신 작가 겸 독립유공자인 이석성(본명 이창신)에 대해 소개하는 기획(3개월 동안)을 마련해 3월호에 발행했 다.

3월호에는 ‘시인, 소설가 이석성(1914-1948) 새 발견 일본어 시 원고’라는 제목 하에 아들 이명한(전남·광주 작가회의 고문) 소설가가 발굴한 일본어 시 ‘우리들의 선구자 말라테스타를 애도한다’의 전문, 이명한 소설가의 아버지에 대한 회고문,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의 연구 경위문이 실렸다. 이석성 작가(본명 이창신, 시인·소설가)는 아들 이명한 소설가의 증언처럼 어릴 적부터 민족의식이 남달랐다.

나주농업보습학교 시절에는 1929년 10월30일 나주역 통근열차에서 한일학생들의 다툼으로 광주학생운동이 발발, 확대되자, 나주지역 신간회와 협조해 나주지역학생들의 선두에 서서 나주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아 2019년 8월에는 국가보훈처에서 국가유공자 포상전수를 한 바 있다.

이석성의 일본어 시가 실린 ‘시와 사상’ 3월호 표지

다음은 김교수의 연구경위문 전문이다.

내가 이석성(본명 이창신, 1914-1948)의 일본어 시 ‘우리들의 선구자 말라테스타를 애도한다’의 원문을 처음으로 본 것은 지난해 8월14일. 당시 이명한 소설가(전남·광주 작가회의 고문, 1932-)에게서 원문을 받았다.

문병란 시인(1934-2015) 추도식에서 뵌 인연으로 소설가께 신세를 지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쓰신 일본어 시가 나왔으니 일본의 독자들에게도 소개하고 싶다”는 말씀을 들을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쑥스러운 얘기지만 그때까지 나는 이석성의 존재도 소설가와의 관계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를 읽는 순간 뭔가 가슴에 뜨거운 감정이 복받쳐 올라와 견딜 수 없었다.

‘과연 이석성은 누구일까? 그리고 식민지기인 1932년 8월(시의 원문 마지막 날짜 표기) 이 시를 일본어로 집필한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강한 의문을 품게 됐다.

이석성을 일본에 소개하기 위해 교량 역할을 하는 게 나의 임무일 터이다. 하지만 평소 전쟁과 문학을 연결고리로 삼는 연구자로서 그 시의 집필 배경과 이석성이라는 작가에 대해 조사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배길 수 없었다.

며칠 동안 약간 흥분상태로 시의 재독에 집중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아나키스트 말라테스타(1853-1932)가 세상을 등진 1개월 후에 이 시가 쓰인 것을 알게됐다. 이명한 소설가의 언급도 있었고 우선 이석성을 파악하는 데에는 참고자료로 2001년 3월 13일자 광주타임즈(현 남도일보)의 기사가 도움이 됐다.

거기에 이석성은 1934년 ‘신동아’를 통해 문단에 데뷔한 소설가이며(데뷔작은 ‘제방공사’), “지금까지 한국문단사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고 소개돼 있었다.

무엇보다 “30년대 한국 근대문학은 예술 지상주의를 지향하는 이 지역 출신 용아 박용철과 영랑 김윤식으로 일별돼 순수 서정문학으로” 알려져 왔으나 ‘50여년 동안 묻혀있던 이씨가 발굴됨에 따라 30년대 근대 문학사를 포괄적으로 재조명할 수 있는 단초’가 제공됐다(김선기 기자, 현 시문학파기념관 관장)라고도 쓰여 있었다.

그 일주일 후(3월20일)에는 같은 신문에 평론가의 코멘트도 실렸다. 이창신(이석성)은 1930년대 활동했던 호남지역 문인 가운데 유일하게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주창했고, “그의 문학을 단순히 ‘카프 경향’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포스트 콜로니즘, 다시 말해서 탈식민지주의적 관점에서 재해석돼야 한다”(채희윤 광주여대 교수)라고.

하지만 그 이후로 연구 필요성 제기와는 별도로 작품이 전혀 발견되지 않아 논문은 물론 평론 한편 나오지 않은 형편이다.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고 본격적으로 조사 연구에 돌입했다. 일본어 해독이 가능한 문학 연구자에게 보람이 느껴지는 작업이거니와 내게 주어진 책무라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제방공사’가 실린 ‘신동아’(1934년 10월-12월호)의 원본을 전남대 도서관이 보유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대학을 방문한 것은 8월 18일. 도서관은 개축 중이었고 코로나19 여파로 외부인 출입을 제한하고 있었다. 대학에 재직 중인 지인에게 부탁해 함께 도서관의 전문 서고에 들어갔다. 한 여름인데도 서적을 보존하기 위해서인지 에어콘을 사용하지 않아 땀이 비처럼 흐르는 가운데 ‘신동아’ 원본을 찾던 기억이 생생하다.

원본을 확인한 순간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작 장편’이라면 상당한 원고 분량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게재된 것은 ‘제방공사’ 제1회(신동아 10월호) 5페이지와 제 2회(11월호) 5페이지 뿐이었다. 게다가 1회 2절의 7-8행, 2회 3절 20행 정도가 복자(伏字)로 표기돼 있었다. 1, 2월호부터는 온통 복자투성이의 도입부 페이지에 삽화 하나가 덜렁 실려 있을 뿐 모든 내용이 삭제됐다.

이석성이 ‘신동아’에 응모했을 때 심사위원은 작품 전체를 읽고 평가해 가작 장편으로 선정했을 터이다. 하지만 신동아에 실릴 당시에는 조선총독부가 탄압을 가해 여기저기 복자로 처리했음은 물론 전면 삭제(3회부터)의 대상으로 삼았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역시 ‘제방공사’는 리얼리티를 살린 저항적인 작품이다. 읽고난 뒤 ‘신동아’의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석성이 응모했을 때의 원문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신동아는 데이터 베이스한 문장만을 보존하고 있으며 원문은 이미 폐기됐음을 알았다.

나주 출신 작가 겸 독립운동가 이석성 생가(나주시 봉황면 유곡리)를 찾은 아들 이명한 소설가.

이명한 소설가와 필자, 그리고 그 기사를 쓴 김기자 세 사람이 얼굴을 마주한 것은 8월23일. 조선 남부의 문단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작가임에도 작품이 소수여서 연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발굴 시는 그 난점을 극복하는 데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줄 거라는 판단을 구하는 시간이었다.

그 판단을 굳히는 자료를 만난 것은 이명한 소설가의 자택에서였다. 그의 자택을 방문한 것은 8월29일. 나는 거기에서 1929년 이석성의 학생운동과 관련한 재판기록을 입수했다. 광주학생운동 시발점인 나주에서 학생운동의 선두에 선 이석성의 면모를 살필 수 있었다. 이석성이 일본으로 건너가 수년 동안 지내는 배경도 알게됐다.

무엇보다 일본어가 유창해 일본 서적을 탐독했고 일본 사상의 영향을 받은 이석성의 활동, 그리고 32년의 일본어 시 ‘우리들의 선구자 말라테스타를 애도한다’, 소설 ‘제방공사’에 흐르는 공통점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후 이석성의 나주 생가와 나주독립운동기념관을 방문해 관련자의 증언은 물론, 관련 자료를 얻어 논문 작업에 매달려왔다.

그 논고 ‘조선남부의 저항작가 이석성을 읽는다. 발굴의 의미를 담아-’를 ‘시와 사상’ 4월호와 5월호에 나눠 소개하려고 한다.

‘시와 사상’ 3월호(3월1일 발행)에 실린 시 원본 사진 첫페이지

[이석성 詩 원고 원문 번역]

우리들의 선구자 말라테스타를 애도한다 -말라여! 철의 사나이여-

태양은 폭군처럼 눈부시게 빛나고
동에서 서로 날이 새고 해가 진다
이런 분위기에 역사는 유전(流轉)하는 것인가

광음(光陰)은 영원히 흐르고
역사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그리고 또
삶과 죽음은 순식간에 왔다 사라지는 것
지금 우리는 그걸 슬퍼하는 게 아니다
헌데 지금
우리가 가장 용감한 투사를 잃을 줄이야……

우리는 자신의 목숨을 아끼는 무정(無精)한 무리가 아니다
우리는 인류 최고의 이상 ××××주의를 위해서는
설령…… 이 생목이
당장 날아갈지라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아……
우리의 전선에서 가장 앞서고 가장 용감한
말라를 잃을 줄이야……

아아!
『말라여! 철의 사나이여!』
동지의 70여 년 투쟁은
　―인류의 낙원을 건설하려고
　정의의 검은 깃발 치켜올린 투쟁은―
얼마나 격렬하고 통렬했던가
추방과 감옥, 그리고 빈곤과 병마……
허나 동지는
언제나 용감하지 않았는가?
말라는 열정의 사나이―태양 같았던 대상
　―모든 걸 사랑하는
　　　　자유 평등한 사랑의 명성(明星)―

허나
이제 그는 이 세상에 없다
철과 같은 의지의 인간! 열정을 불태우던 사내는
지금 목숨이 끊어져
로마의 한구석에 오랫동안 누워있다

　　아아! 이지(理智)로 빛나는 그 투지
　　　　말라테스타는 눈을 감았다

나는 말라를 본 적이 없다 또 알지 못한다
허나 나는 알고 있다
그의 정신은 지금
더 강력히 되살아나
―지배계급에 대해 모두가 증오의 마음으로―
―희망에 빛나는 자유 코뮌(공동체)―
고귀한 검은 깃발을
단단히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

아아!　　　
『말라여! 철의 사나이여!』
동지의 가슴에 타오르는
고귀한 이상은 어찌하여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걷는가
나 지금 동지의 죽음과 함께
굳은 신념 더욱 강해져
자유를 위해 행복을 위해
목숨을 바치리라 맹세한다……

아아! 동지들이여!
열렬한 의지를 품은 전 세계의 동지들이여!
그대들은……
말라테스타의 장렬한 죽음의 길을 뒤따라
일어서자!
자유 코뮌 건설을 위해―
자유·평등·박애의 수호를 위해―
그리고 안락한 사회……만인의 행복이 성취될 그 날을 맞자! 　
1932년 8월
구고(旧稿)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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