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26(목)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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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진보지식인 그룹에서는 한반도의 총체적인 문제의 시작을 분단과, 계급에 관한 이념적 논쟁이 시작됐을 시점, 그는 관심이 없었다. 83년경 ‘광주5·18’에 관한 구전과 자료를 접하고 한국 근·현대사와 분단의 질곡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그는 이 시기 이후 점차 의식있는 지식인이자 화가로 민중미술을 시작한다. 거칠고 어두운 그림으로 현실사회와 역사비판을 예술이라는 무기로 적극적인 작품제작을 했으나 진보미술계에서 그를 쉽게 존중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는 실망과 아쉬움으로 고향으로 내려가 수년간 칩거 이후 다시 강화도에 정착하면서 거친 그림에 전념한다. 그의 그림은 분단의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가슴에 묻어가며 강화의 거친 바닷바람을 맞아가며 임진강과 분단의 사유를 미학언어로 담아가고 있다.
-‘광주5·18’의 부채의식에서 민중의 바다로-
1980년, 그는 대학 4학년으로 ‘광주5·18’에 대한 방송 보도는 있었지만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오로지 선배에게서 엉겁결에 인수받은 화실이 잘 운영돼 매일 저녁 찾아오는 지인과 술 마시는 일이 즐거웠다. 그해 여름이 되면서 선배는 ‘5월 광주’ 상황을 상세하게 들려주고 사진자료를 접할 수 있었으나 당시 그는 시대상황과 의식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광주는 고향의 의미가 있는 지역이기에 뇌리에 깊게 새겨지게 됐고 광주시민의 시대의식과 독재정권에 맞서는 용기와 희생에 부채의식을 갖게 됐다. 이와 더불어 한국 근·현대사의 탐구와 분단에 관한 국제관계와 고민을 시작하면서 그동안 그림을 그려왔던 추상미술과는 결별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젊은 민중미술 그룹을 결성(서울미술공동체)하고 민중미술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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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첫 번째 개인전(‘89년, 한강미술관)은 그동안 어둡고 무거운 주제의 작품 40여점을 발표하게 된다. 이중 ‘광주5월’을 주제로 제작한 대작 ‘다시 5월로’(1988)도 포함됐다.
작품 ‘다시 5월로’는 대형캔버스에 탁한 색상의 거친 형상으로 우측은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자와 고통 받는 자를 힘들게 바라보고 있다. 그림의 좌측에는 폭력자와 폭력을 당한 자, 그리고 죽은 자의 혼들이 보인다. 죽임을 당한 자나 고통을 받는 자나 이를 힘들게 바라보는 자들이나 모두에게는 민중의 이름으로 산화되고 있는 자들일 것이다.
어느 미술평론가는 “광주는 없는데… 광주가 느껴진다.”고 평을 했었다고 한다.
작품은 80년대 무겁고 어두운 시대상황을 작품의 전반에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평가는 그의 내성적인 성격과 자존감을 감안하면 깊은 상처가 됐을 것이다. 그 평론가의 의미는 광주만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사회를 담아내고 있다는 애정 어린 평이었으리라 생각돼진다.
이 전시로 그의 민중작가로 정체성을 확고하게 드러내는 긍정적 이면에는 리얼리티와 형상력이 약하다는 아쉬운 평가도 동시에 받게 됐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전시를 마친 그는 고향인 장흥으로 내려가 수년간 칩거를 하게 된다. 서울의 자그마한 골방에서 야심차게 제작한 작품에 대한 실망이 기대만큼 컸을 것이라 보인다. 칩거의 시간은 자신이 헤어나지 못할 늪으로 빠져들어 가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1990년대 중반, 그는 평소 가깝게 지내던 동료화가의 충고에 따라 외롭지 않게 작업하고자 작업실 마련할 비용이 저렴한 강화도로 들어간다. 그리고 쉼 없는 미학적 고민과 현실적 리얼리티를 위한 형상력 확보작업을 반복한다. 나라를 잃은 식민과 분단과 독재정치로 거의 채워진 20세기, 우리의 역사를 어떠한 이유든 어두운 질곡의 뿌리를 파헤치는 일은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후학자와 예술가로 시대를 증언하는 일에 게을리 할 수 없었다. 살아있는 양심으로 시대의 정당성이 그가 존재한다는 생명과 당위성이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수업하고 붓을 익혀왔던 추상의 예술양식을 버리고 배고프고 탄압받는 힘든 민중화가의 길을 선택한 그는 시간이 더 할수록 ‘광주’에 대한 죄책감과 부채의식이었다. 광주의 대곡자(代哭者)로 상처와 고통의 그림을 그려 역사에 고발해야 한다는 일념이 강했다.
-임진강을 등지고 동학을 본다-
임진강은 철조망과 뱃사람은 푸른색과 붉은색 그리고 노랑의 옷을 매일 번갈아 바꿔 입는다. 이 색상들은 모두 도깨비로 둔갑해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걸기도 하고 때로는 겁박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강가의 숲은 바람 부는 날이면 무언가의 곡소리로 그의 심중에 비수처럼 파고든다. 이렇게 그에게 임진강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강이 아니다. 강은 눈물이요 핏물이요 강가의 숲은 통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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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임진강을 통해 우리시대의 민중과 역사를 깊게 읽어간다. 이렇게 그는 우리분단의 역사를 새롭게 탐구하면서 거슬러 올라가면서 구한말 동학까지 이어져 간다. 1890년대 조선은 동학전쟁에 일본을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갑오경장’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을사늑약’도 ‘한일합방’도 없었을 것이다. 그 연장선에 선 ‘한국전쟁’과 분단, 그리고 ‘광주5월’과 ‘촛불혁명’이었다.
그는 동학에 관심을 갖고 ‘(水雲)최재우’ 사상을 연구하기 위한 천도교 성지(경주 구미산) 탐방과 미학적 추출을 위한 학문적 배경에 대한 탐구로 사람을 섬기는 평등사상, 평화사상, 비폭력의 여성성은 ‘다시개벽’ 세상을 열자는 어머님의 품안이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작품 ‘사인여천-무량화’(2014) 를 시작한다. 대형 캔버스의 상단 중앙에 백두를 그려 넣고 그 아래 수많은 꽃봉오리와 하단에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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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에 조형어법인 거친 붓놀림과 함께 과거의 어둡고 무거운 이미지는 밝은 색상으로 화려해 보인다. 아마도 동학의 개벽사상을 담아내고자 밝은 색상과 사람을 꽃으로 담아내었을 것이다. 아니 사람들은 광화문의 촛불로 담고자 했을 것이라고 본다. 즈음해 그는 전통화의 정신과 화법에 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현대미술은 소중한 전통의 가치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비판적 반성에서 출발된 것이다. ‘자연과의 합일치’ 정신세계의 높은 선비정신의 ‘사의성’과 ‘심미성’을 존중했던 ‘전통미학’에 대한 접근방식이다. 그의 화법은 거친 붓과 함께 심미적 형상성이 함축되어 진다고 보여 진다. 그러나 함축적 ‘사의적 심미성’은 높은 정신세계를 담아내지만 민중미술에서는 위험한 함정이 늘 가까이 존재하기도 한다. 민중미술은 민중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해야 민중미술로서의 리얼리티와 함께 가치를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심미성’을 우선하고 자칫 지나치다보면 추상세계로 빠져 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사인천-무량화’는 동학의 마지막 격전지인 고향 장흥의 ‘동학기념관’에 소장 전시중이다.)
-세월호 아픔에서 읽혀지는 촛불-
그가 거주하고 있는 가까운 지역이 ‘안산’이다. 2014년 4월 안산에서 출발한 ‘세월호’는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해 수 많은 꽃들이 수장되고 대한민국은 울음바다가 됐다. 그도 함께 아파했다. 그리고 민중화가로의 책무를 위한 준비를 한다. 4개의 대형 캔버스에 그린 작품 사월시리즈로 ‘프롤로그’, ‘노랑’, ‘파랑’, ‘빨강’의 작품을 동일한 시기에 연작을 완성한다. 모두 캔버스에 가득 사람의 모습이 꽃으로 그려져 있다. 그의 연작은 3년에 거쳐 완성된다.
작품 ‘사월-파랑’(2016-2017)은 약 2년간의 작업기간 동안 파랑바탕의 바다 위에 많은 사람이 그려져 있다. 화면의 오른쪽과 하단 중앙에 세월호의 학생을 기다리는 수많은 가족과 왼쪽에는 망자를 위한 살풀이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상단에 바다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학생은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 염원의 기도들이 환영돼 꽃으로 교차된다. 정이 많은 그의 심상에는 세월호의 모든 사람들은 꽃으로 보였기에 그렇게도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연작을 제작했던 것이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어떤 작품과는 달리 사월의 연작을 그리면서 힘들었고 제작하는 3년의 시간동안 망자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고 떠나지를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 살풀이가 있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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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최근 작품 ‘반개’(2020) 연작에 집중해본다. 이 연작은 명제에서 드러내고 있듯이 분단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 보인다. 정부의 ‘평화정책’으로 ‘남·북·미 정상회담’과 ‘한미군사훈련’의 축소가 이를 대변하고 있어 보인다. 그의 눈에는 이러한 상황이 통일을 향해 굳게 닫혀있던 문이 반쯤 열려지게 보였으리라고 생각되어 진다. 그리고 작품은 과거 붓의 움직임과 캔버스에 물감의 정도가 치밀하고 두텁게 보여 지며, 무거운 주제를 가볍고 유희적 붓의 움직임으로 담아내고 있다. 아마도 활짝 열리고 두터운 벽이 붕괴되길 기원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 연작은 다소 야수적 화법으로 시각적 강한 이미지를 주고 있다. 이러한 최근 작품의 회화적 경향은 주제에 대한 양식적 변화는 화면이 밝아지고 붓놀림이 가벼워 졌다는 것이다. 민중미술이라고 무거운 주제를 무겁게 그려야 할 이유는 없다. 민중미술 역시 예술이기에 회화성과 함께 서정성을 확보해 많은 대중에게 감동을 줘야 그 가치를 존중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진화는 2016년 겨울, 광화문을 촛불로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분단을 사유한다. “분단의식은 통일의 소망과는 다르다. 통일에 앞서 분단의 모순을 분열적 사회를 깊게 사유해보려는 의지이며, 책임의식이다. 나는 통일을 그리는 화가도 아니며, 통일그림을 도맡을 생각도 없다. 오히려 통일의 환상부터 먼저 물리쳐야한다.”(박진화 에세이 중)
그의 거친 회화적 어법의 화가 40여년 대중적 평가를 받아보지 못했고 진보진영의 미술계는 물론 작품역시 제대로 팔아보지를 못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화가의 삶을 고난의 시간으로 굳건하게 버텨 온 사람이다. 남이야 어떻게 내 작품을 평가하든 관계없이 일관성을 가지고 내가 좋아하는 예술이념과 양식, 미학어법으로 작품생활을 이어간다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뼈를 깎아내는 고통의 시간이 배가됐을 것이다.
이러한 박진화에 대한 연구를 필자는 했던가? 그건 그가 스스로 예쁜 그림(잘 팔리는 그림?)을 마다하고 무겁고 어두운 그림을 그려야 했던 지난 30여년을 지켜봐오면서 감수해야 했던 고통의 시간에 대한 존중이 필자에게는 있었다. 민중미술 화가들은 대다수가 그러하듯 그도 정치적으로 핍박과 억압 속에 쥔 배를 움츠리면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특히 과거 ‘민족미술인협회장’(2013-2016) 시절,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랐을 때는 더욱 큰 어려움을 견뎌 내야 했을 것이다. 올바른 역사와 통일조국의 건강한 민주사회를 위한 그의 노력과 고뇌는 오늘도 강화도의 미술관과 작업실을 오가고 있을 것이며, 임진강과 휴전선의 거친 바람에 맞서 우리의 미래를 위해 외롭게 캔버스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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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화(1957, 전남 장흥생)
▶홍익대 미술교육학과 졸업
▶민족미술인협회회장 역임
▶개인전 16회(서울, 부산, 강화, 포항 등)
▶초대전
2010 제2회 평화미술제(금호갤러리, 광주) 2009 제1회 평화미술제(제주도립미술관, 제주) 2007 ‘동방의 예술’ 한중수교 15주년(중국, 북경) 2005 ‘길에서 다시 만나다’-광주5.18 25주년(공평아트센터, 서울 폭력의 기억-부마항쟁 26주년(부산민주공원전시실) 2004 ‘중심의 동요’(공평아트센터, 서울) 외 국내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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