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5(화) 06:02
|
저에게는 평생 간직할 추억이 있습니다. 50대 중반이 된 지금도 광주매일을 떠올리면 얼굴 가득 미소가 피어납니다. 가수 임현정의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노래를 들으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갖노라면 아련하게 떠오르는 첫 직장의 추억에 제법 분위기를 잡고 상념에 빠지기도 합니다.
7년간의 광주매일 생활. 이 기간은 제 생애에서 ‘호우시절’(好雨知時節)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호우시절’은 2009년에 개봉된 정우성 주연의 멜로 영화 제목입니다. 중국 시인 두보의 춘야희우(春夜喜雨)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로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봄비가 새싹을 움트게 하고 만물을 소생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듯 저에게 광주매일은 그런 봄비 같은 존재입니다.
광주매일은 첫 사랑과도 같습니다. 잊으려 해도 잊혀 지지 않는 첫 사랑. 광주매일은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고 얼굴이 발그레 해지는 첫 사랑입니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광주매일 동료들이 많이 생각납니다. 많은 식구들 중에 유독 애틋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입사 동기 8명. 95년 9월 중순 우리는 처음 만났습니다. 7년간을 동고동락하다 끝내 각자의 삶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지만 광주매일이라는 이름 하나로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동기들과 함께 해서 더 행복했던 광주매일. 현재 언론사에 계속 몸담고 있는 동기들도 있으며 개인사업과 공무원 그리고 회사원으로 전직한 친구들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개인별 특성이 뚜렷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놀이든 계획을 잘 수립했던 친구도 있었고, 쾌도난마처럼 명쾌하게 결정을 내려주던 친구, 논리적으로 설명을 잘 해주던 친구도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아이디어가 좋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리더십이 뛰어났습니다. 무척이나 개성이 강해 한데 뭉치기 힘들 것 같지만 오히려 서로의 빈틈을 메워주며 하나가 되었습니다. 마치 일곱 색깔이 모여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들 듯 각기 다른 개성과 능력이 어우러진 광주매일 4기. 폐업 이후 복간한 광주매일로 다시 모이지는 못했지만 언제든 반갑고 정겨운 동기들입니다.
동기들과 함께 했던 ‘강토사랑 답사회’ 동아리 모임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산과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우리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갖고 광주·전남 곳곳을 돌아다니며 소중한 추억들을 쌓아 나갔습니다. 곡성 태안사와 도림사, 해남 우항리와 땅끝마을, 순천 낙안읍성, 강진 다산초당과 무위사, 신안 임자도, 화순 백아산, 여천 영취산 등 동기들과 함께 했던 남도 순례길은 행복했습니다. 동아리 모임이 잘 되다보니 선후배들도 가입하게 됐고, 이중에 결혼한 부부도 2쌍이나 나왔습니다.
생각만 해도 눈물 나는 선배가 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정한진 형. 노조 위원장을 맡아 마음고생 많았던 형입니다. 직장폐쇄와 이어지는 폐업. ‘다른신문’이라는 제호로 주간지를 준비하던 추운 어느 겨울밤. 술 한 잔 마시며 “미안하다”는 말만 몇 번이고 되풀이하던 형의 젖어 있는 눈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미안함에 마음 아파하던 형은 몇 년이 지난 후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형의 뜻을 간직하며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진 광주매일 사옥. 조립식 건물로 외관은 허름했지만 젊었던 우리들의 땀과 눈물이 고스란히 스며있던 곳이었습니다. 현재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습니다. 폐업한 2002년 이후에도 한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가끔 추억여행을 하듯 들르곤 했습니다. 이제는 광주시 남구 구동에 번듯한 사옥을 가지고 있지만 저에게는 광천동 조립식 건물이 더 포근하고 그립습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동기들의 얼굴과 90년 후반 좌충우돌하던 기자시절이 떠오릅니다. 가슴 뭉클했던 7년간의 추억은 남은 생애의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30주년을 맞이한 광주매일신문. 힘들고 지칠 때 불쑥 찾아가 편안하게 소주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오랜 벗처럼 항상 그 자리에 굳건히 남아 있겠지요. 첫 사랑이자 봄비 같았던 광주매일신문이 더욱 건승했으면 좋겠습니다.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