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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말 광주광역시청 공무원은 본청 1천404명 포함해 5개 자치구 3천619명, 95개 동사무소 1천341명, 의회와 27개 직속·사업소 2천321명으로 모두 8천685명이다. 지난달 말 기준 소방직 1천520명을 제외하면 7천703명이다. 여성이 3천866명으로 남성보다 29명이 많다.
광주가 전라도 수위(首位)도시가 된 밑바탕은 1896년 8월4일 13도제 실시와 함께 전라남도 관찰사 소재지로 정해진데 있다. 33군을 관할한 광주최초 관찰사청에 대해서는 오횡묵이 당시 쓴 ‘지도군총쇄록’에 나온다. 관아추녀에는 선화당(宣化堂)과 서석헌(瑞石軒), 그 문미(門楣)에는 하모당(何暮堂) 편액이 보인다. 제금루(製錦樓) 동쪽에 내아(內衙)가 있고, 그 뒤쪽에 신향각(新香閣)이 있다.
선화당은 관찰사 집무실로 조선시대 광주읍성 동헌(하모당)을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1896년 9월12일 지도군 오군수가 관찰사 윤웅렬을 만난 곳이다. 제금루는 나주 정수루와 비슷하며, 객사 정문 황화루와 동헌 사이에 위치했다. 1912년 지적원도의 동광산정 20-22번지로 아시아문화전당 분수대 일대다.
1910년 동광산정 9번지 재무서 단층건물에 전라남도청 간판을 걸고, 관찰사를 도장관으로 칭한다. 1912년 목포부와 28군 452면 1만184리를 담당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1부21군(273면3천58리)1도를 관할한다.
1919년부터 도지사로 개칭되고, 1930년 붉은 벽돌과 화강·인조석으로 2층 건물을 대창토목(대강조)이 맡아 짓는다. 설계자는 동편 회의실과 함께 도청직원 김순하이고, 1975년 본관3층 중축설계자는 김태만이다. 광복 후 최영욱·서민호가 지사였고, 미군정을 거치면서 흰색 건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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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4일 무안군 삼향남악으로 이전할 때 광산동13번지 청사건립연대와 현황을 본다. 본관 504평(지사·부지사·국장·상황실), 1931년 회의실 지하1·지상2층 496평(회의·종합민원실, 구내식당), 1970년 별관 4층 1천77평(국장·기자·사무실, 도금고), 1979년 후관 A동5층 2천606평(사무실), 1990년 후관 B동6층 1천176평(국장·사무실), 1995년 조립식3층 420평(사무실, 창고), 1990년 도의회 6층 947평, 1990년 주차장4층 1천176평(198대), 경찰청3층 1천242평이다.
광주군청은 남문통37(충장로1가25)번지 객사 광산관(光山館)에 위치했고, 1895년 군수는 김경규다. 1922년까지 있다가 대의동 42번지로 옮긴다. 1927년 신축하고, 1930년 직원은 56명이다. 1935년 광주부가 신설되면서 광산군청이 1949년까지 머물다가 송정동으로 나간다.
1912년 광주면사무소도 광산관을 쓰다가 금남로2가 알라딘서점터로 이동한 뒤, 1916년 부동정92(불로동143)번지에서 성내·기례방·공수방·부동방면을 관할한다. 1925년 광산동 63번지로 이전, 1931년 읍사무소가 된다.
1935년 광주부청이 되고, 1943년과 광복 후 중축을 한다. 1949년 100번지 일대가 광주시청 ‘ㄴ’자형 2층 건물과 흥학관에 1952년 의회가 든다. 1968년 인구 45만명, 면적 210㎢일 때 장형태 시장은 경양호 매립택지에 신청사를 물색한다.
계림동 505-900번지에 이광국이 설계한 지하1·지상3층 건물은 1969년 10월 초 준공된다. 1986년 직할시청으로 승격, 1988년 광산군과 송정시를 통합한다. 1989·91년 중축돼 7층이 된 광주광역시청사는 2004년 3월까지 사용된다. 1991년 화정동 898번지에 제2청사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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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지하2·지상18층으로 설계한 금성종합건축(김상식) 당선작을 바탕으로 1998년 상무지구에 신시청 건립공사가 이뤄진다. 금호건설에서 5년 공사를 마무리하고, 시운전을 거쳐 2004년 3월12일부터 청사이전작업이 전개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표지번 치평동 1200번지는 치평동 492·493·496·501번지와 유촌동 288·291-297·299번지 일대다. 높이85m 시청건물은 광주천과 반대방향으로 흘러드는 개울 매립지에 1천600억원 들여 지었다. 영산강을 따라 내려가는 배모양 청사, 머리와 중앙에는 의회와 대회의실이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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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동구는 1973년 중·동·북부출장소를 통합, 신설하면서 그 청사를 금남로2가 7번지 중앙매일시장내에 둔다. 1994년 서석동 31번지 광주기계공고터로 옮겨 새둥지를 튼다. 1998년 중축, 건물을 포함 현 청사는 본관 지하2·지상6층과 별관4층이다. 서구청도 같은해 남·서부출장소를 묶어 임동97-18번지에서 개청한다. 1979년 농성동 299번지 전남공무원교육원 터로 이전한다. 현 지하2지상7층 청사는 2011년 건립했다.
북구청은 1980년 4월 중흥동 701-10번지에 창설된다. 1985년 전남대학교 남동편 용봉동 239-2번지에 지하1지상4층 건물을 지어 정착한다. 남구청은 1995년 봉선동 511번지에서 출발, 2013년 주월동 1284번지 백운광장에 등장한다. 지하6지상9층 건물은 옛 화니백화점터다.
광산구는 송정시와 광산군이 합쳐 생겼다. 1935년 광주부 설치 때 광산군으로 분립, 개편한다. 1937년 7월 송정면이 송정읍으로 승격한다. 1949년 대의동에서 송정동 833번지로 청사가 들면서 나주군 삼도·본량·평동면을 포함 1읍14면을 거느린다.
1959년 적벽돌 제비형스테이트로 신축한다. 1966년 철근콘크리트구조로 본관동을 짓고, 1969년 지적창고도 만든다. 1986년 송정읍이 송정시로 승격되고, 나승포가 시장으로 부임한다. 2001년 지하2·지상7층 현 청사를 완공한다. 남쪽 828번지 5층건물에는 의회가 있다.
출장소는 1957년 석곡·지산·서창·대촌이 설치되었고, 1961년 중·동·남·서·지산·북·서창·대촌 8개소로 재편된다.
소재지는 중부 대인동 190번지, 동부 광산동 73번지, 서부 임동 97번지, 남부 구동 7번지, 북부 풍향동 500번지, 지산 본촌동 355번지로 광주시청에 속했다.
동사무소는 2007년 8월 주민센터, 2016년 읍면동이 행복복지센터로 개명했으나 아직 익숙지 않다. 책임자는 지금 센터장이란 표현보단 동장으로 쓰고 있다. 행정동과 법정동 구별에다 새주소도 실제 지리생활에 쉬 다가서기 힘들다.
1998년 충장동사무소는 대금·대의·충수·충금·삼성동사무소를 합쳐 관할 법정동이 18개나 된다. 법정동 화정동에는 4개 행정동사무소가 설치된다. 수완행복복지센터는 2017년 말 인구 8만252명을 맡고, 동장은 직선제 서기관이다.
광주인구는 1910년 9만7천5명, 2017년 148만5천49명이다. 내방로 111하면 내비게이션·핸드폰 없이 광주광역시청을 찾기 어렵다.
/김경수 향토지리연구소장·문학박사
김경수 향토지리연구소장·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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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9 (월) 1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