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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최초 인구통계는 1424-54년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무진군 860호(4천182명)이다. 나주목은 1천89호(4천26명)이다. 각 면별 호·구(戶·口)는 1759년 편찬된 ‘여지도서’에 보인다. 광주목은 부동방면 518호 1천807명 포함 8천299호(3만2천235명)이다. 오늘날 행정구역에 적용하면 1만1천18호(3만7천967명)이다. 담양 대재·가을전면을 제외하고, 나주 삼가·도림·평리·관동·장본·적량·여황·오산면을 더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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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전국 고을별 동네이름이 최초로 수록된 책이 등장한다.
바로 ‘호구총수’로 광주목은 동18·경양면 689호(1천783명)를 비롯 8천373호(3만2천690명)이다. 현재 광주시 영역에 따르면 1만23호(3만8천434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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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민적조사표’는 고장 면별 신분·직업 호수와 인구수를 밝히고 있다. 광주군 1만6천482호(7만8천669명)에서 대치·상갈전·하갈전 1천263호(6천95명)을 감하면 1만5천219호(7만2천574명)이다. 나주군 8면 3천584호(1만8천336명)을 합쳐 지금 광주땅 호구는 47개면 1만8천803호(9만910명)이다.
신분·직업별 호수는 관공리(官公吏) 175호, 양반 235호, 유생(儒生) 115호, 상업 1천639호, 농업 1만5천821호, 공업 257호, 일가(日稼) 376호, 기타 96호, 무직 89호다. 관공리와 양반이 가장 많은 면은 성내·부동방면 각 49호와 도림면 68호다. 상업과 공업 최다면은 부동방면 242호와 기례방면 46호다.
인구가 가장 많은 면은 부동방면 5천53명이고, 기례방면 3천958명, 도림면 3천453명, 우치면 2천996명, 천곡면 2천963명, 소지면 2천920명, 지한면 2천848명, 여황면 2천825명 순이다. 성내면은 206호 838명이다.
본관성씨별 호수와 인구수는 1985년 처음 발표된다.
광주시와 광산군 23만3천430호(104만2천257명) 중 김해김씨 2만7천89호(12만678명), 밀양(성)박씨 1만5천368호(6만9천617명), 전주이씨 1만3천979호(6만2천961명), 광산(주)김씨 1만3천190호(5만9천837명), 진주강씨 5천221호(2만3천531명) 순이다. 광주(光州)본관 이씨 1천326호(5천954명), 노(盧)씨 902호(4천28명), 정(鄭)씨 307호(1천364명), 승(承)씨 13호 (67명)이다.
2000년 광주시 본관성씨별로 보면 김해김 4만7천552호(15만4천841명), 밀양(성)박 2만7천444호(9만456명), 전주이 2만3천870호(7만8천651명), 광산(주)김 2만1천451호(7만250명), 진주(양)강 8천877호(2만9천29명)이다. 광주이·노·정·승은 각각 2천195호(7천235명)·1천497호(4천994명)·577호(1천921명)·17호(72명)이다.
최초 근대 인구센서스(국세조사)는 1925년이다. 광주군15면(광주·지한·석곡·우치·본촌·비아·하남·임곡·송정·동곡·대촌·서창·효천·극락·서방)과 나주군3면(삼도·평동·본량) 2만3천751가구(11만5천371명)과 4천203가구(2만1천37명)이다. 세대당 평균 4.8명과 5명이며, 성비는 108.1과 103.8이다. 합계 2만7천954가구(13만6천408명), 4.9명, 10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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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인구는 광주군 13만4천843명과 나주군3면 2만2천639명을 더해 15만7천482명이다. 광주면이 3만3천23명이고, 송정면은 1만2천706명이다. 지한·삼도면 성비는 109.9·99.1이다. 1935년 인구는 광주부 5만4천607명, 광산군 10만1천561명, 나주3면 1만5천176명이다. 합해 3만3천854가구(17만1천344명)이며, 성비는 102.6이다. 지산면이 2천90가구(1만581명)이고, 효지면은 1천885가구(9천625명)이다.
1944년 4만2천286가구(21만5천263명)이다. 광주부 1만6천366가구(8만2천431명(일본인 8천916·외국인59)), 광산군 2만1천243가구(10만8천23명(일본인 1천583·외국인37)), 나주3면 4천677가구(2만4천809명)이다. 1949년 29만6천753명으로 광주부 13만8천883명, 광산군 12만9천714명, 나주3면 2만8천156명이다. 외국인은 187명으로 광주부 111명, 광산군 76명이다.
1955년 광주시 23만3천43명과 광산군 12만3천695명을 합해 35만6천738명이다. 1960년 광주시 31만420명과 광산군 9만4천863명을 합쳐 40만9천283명이다. 문맹자가 6만9천840명으로 17%이며, 이혼자는 1천712명이다. 13-69세가 23만9천207명, 산업별취업자는 10만3천423명이다. 광주(광산) 1차산업 2만4천511명, 광·제조·건설업 106·1만431·2천277명, 전기가스수도위생 252명, 상업 1만1천653명, 운수보관통신 2천874명, 서비스업 2만1천298명이다.
1966년 광주·광산 40만3천495·12만8천740명으로 53만2천235명이다. 광주 10대 11만4천925명이고, 광산 10대이하 4만2천940명이다. 65세이상은 1만467명과 5천223명이다. 고등교육졸업자는 1만1천888명과 973명이다. 1967년 서석국교재학생은 112학급 1만170명이고, 이듬해 졸업생은 1천854명이다.
1970년 광주(광산)는 9만2천212가구(2만3천417), 62만2천755명(12만9천121)이다. 외국인은 628명(57)이다. 1975년 광주(서구·광산)는 14만1천693가구(4만9천665·2만4천414) 73만7천283명(25만3천624·13만272)이다. 광주시 초가집은 1968·1974년 4만6천893·6만5천83채 중 7천567·6천473채다. 중심업무지구(CBD)인 충금·대의·대금동 상주인구가 주변보다 줄어 공동화(空洞化 Doughnut)현상을 보인다.
1980년 광주(북구·광산)는 17만9천42가구(4만6천844·2만6천55) 85만6천545명(22만3천894·12만8천945)이다. 1985년 광주(광산)는 23만2천620가구(3만200) 104만2천508명(13만6천612)이다. 1990년 광주직할시(서구)는 23만2천620가구(11만4천679) 113만9천3(47만2천336)명이다. 1995년 광주광역시(남구)는 35만4천717가구(7만1천184) 125만7천636명(25만5천206)이다.
2000년 40만9천571가구(135만2천797명) 중 북구가 14만5천601가구(47만7천962명)이다. 아파트는 22만8천976호다. 2005년 46만1천387가구(141만7천716명)에서 외국인은 921가구(4천72명)이고, 아파트는 26만8천880호다. 2010년 51만8천742가구(147만5천745명) 중 외국인은 2천241가구(9천602명)이다. 충장동은 2천29가구(4천652명)이다. 아파트는 33만9천732호다. 2015·2020년 외국인은 5천586·8천704가구 2만1천592·3만573명이다. 아파트는 37만6천731·43만2천295호다. 2020년 결·이혼 5천560·2천604건, 출산율 0.8%다. 2021년 학생 679개교, 30만7천971명 중 대학·대학원생 36%다.
경제가 좋고, 인구증가 터가 명당이다. 수도권이다. 광주인구는 100년간 15배쯤 늘었다. 1950년 2만명과 1980년 5천명이 줄고, 2015년부터 부산·대구와 같이 감소추세다. 온 나라가 출산율 밑바닥, 가구(세대)수·아파트는 늘고 있다. 1인 시대 도래. 홀로 가는 길, 생태계다.
/김경수 향토지리연구소장·문학박사
김경수 향토지리연구소장·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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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9 (월) 16: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