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길을 걷고 있으면 발아래에서 바닷물이 출렁이고, 비릿한 갯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육지 가까이 떠 있는 복개도, 장구도, 모개도 등 세 개의 작은 무인도가 길벗이 돼준다.

여수시 소라면 궁항마을에 도착하니 마을 앞으로 펼쳐지는 바다가 잔잔하다. 해변 산비탈에 남향으로 자리한 궁항마을은 1㎞ 정도 떨어진 위치에 달천도라는 작은 섬이 있어 포근한 느낌을 준다. 마을 앞 해변이 활처럼 휘어졌고, 바다로 뻗어나간 산줄기가 마을 뒤에서 병모가지처럼 가늘어서 활 궁(弓)과 목 항(項) 자를 써서 궁항(弓項)마을이라 했다.

궁항마을에서 600m 쯤 도로를 따라 걷다가 차량통행이 거의 없는 해변도로로 접어든다. 주변 바다는 이제 막 물이 빠지기 시작해 해변근처에만 갯벌을 드러내준다. 방파제 옆에는 작은 배 두 척이 조업 나갈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수많은 산봉우리에 감싸인 여자만이 평화롭다.

해변도로에는 종종 자전거가 지나간다. 여자만을 끼고 있는 여수반도 해변도로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자전거길이다.

여수시에서는 이 자전거길에 ‘갯노을길’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줬다. 고흥반도와 여수반도 사이에 형성된 여자만은 육지 깊숙이 파고들어 거대한 호수처럼 보인다. 서쪽에서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는 고흥반도를 넘어가며 여자만을 붉게 물들이는 저녁노을은 상상만 해도 가슴 설렌다.

길은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돌고 돌아간다. 해안길을 걷고 있으면 발아래에서 바닷물이 출렁이고, 비릿한 갯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육지 가까이 떠 있는 복개도, 장구도, 모개도 등 세 개의 작은 무인도가 길벗이 되어준다. 해변 산자락을 한 굽이 돌아가자 장척마을이 기다리고 있다. 산을 등지고 여자만을 바라보고 있는 장척마을은 일몰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길은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돌고 돌아간다. 수많은 산봉우리에 감싸인 여자만이 평화롭다.

하루 두 번 썰물 때면 450m에 이르는 복개도와 장척마을 해변 사이에 바닷길이 열리고, 주변은 갯벌 천지가 된다.

해안을 따라 걷다보면 여자만 한 가운데에 떠 있는 여자도와 장도 같은 섬들이 정겹게 바라보인다. 여자만을 감싸고 있는 고흥반도와 벌교, 순천의 산봉우리들이 여수반도와 함께 거대한 성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여자도와 장도는 남파랑길 60코스를 걷는 내내 모습을 드러내준다. 여자도 뒤에서는 여덟 개의 봉우리로 이뤄진 고흥 팔영산이 자신만의 미모를 과시한다.

와온포구에서 본 여자만. 넓은 갯벌 뒤로 여자도와 고흥반도 팔영산 등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여자만에서는 가을철 전어잡이 배들이 조업을 하고 있는 모습도 관찰된다.

남파랑길은 해안선을 따라 수많은 곡선을 그으며 이어진다. 남파랑길 60코스 출발지인 궁항마을에서 종점인 와온마을까지 자동차로 달리면 1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우리는 해안선을 따라 구불구불 돌고 돌면서 5시간 가까이 걸어서 간다. 천천히 걸으면서 자연과 교감하고 자연의 일부가 된다. 자연은 곡선을 이루고, 그 흐름은 사람이 걷는 속도만큼 느리다. 직선보다 곡선이, 빠름보다는 느림이 우리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준다.

반월마을로 가는 해변에는 데크로 만든 다리도 놓여있다. 데크 아래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는데, 지금은 물이 빠져 갯벌이 드러나 있다. 여의도 면적의 9배에 달할 만큼 광활한 여자만 갯벌은 전혀 훼손되지 않은 생태계의 보고다.

여의도 면적의 9배에 달할 만큼 광활한 여자만 갯벌은 전혀 훼손되지 않은 생태계의 보고다.

이곳 주민들은 갯벌에 의지해 살아간다. 마을 앞바다에 물이 차면 지형이 반월과 같아진다고 해 반월마을이라 부른다.

언덕길을 걸을 때는 은빛으로 출렁이는 억새가 가을정취를 물씬 풍겨준다. 밭가에서 주렁주렁 매달린 빨간 대봉감이 풍요로운 기운을 전해준다. 대봉감은 껍질을 깎아 잘 말려 곶감을 만들거나 홍시로 먹으면 맛있는 간식이 된다. 언덕 위에서 바라보니 반월마을 앞바다의 갯벌과 바닷물이 만나는 모습이 반달 같아 보인다.

봉전마을 골목길을 지나 바다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광암마을 앞 농로를 따라서 걷는다. 마을 앞 들판은 추수가 끝나 텅 비어있다.

광암마을 뒤편 언덕을 넘어 다시 해변으로 나간다. 해변 저류지에 핀 갈대무리가 쓸쓸함을 자아낸다. 갈대가 은빛으로 휘날리면서 여자만의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길이가 1천120m에 이르는 가림산 해안산책로는 가림산 아래 해변 바다위에 놓여있다. 데크다리를 걷고 있으니 바다 위를 걷고 있는 것 같다.

갈대숲을 지나니 해변으로 데크다리가 놓여있다. 길이가 1천120m에 이르는 가림산 해안산책로다. 가림산 해안산책로는 가림산 아래 해변 바다위에 놓여있다. 데크다리를 걷고 있으니 바다 위를 걷고 있는 것 같다. 데크길을 걷고 있으면 여자만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여자만 안쪽으로 순천만도 슬며시 모습을 드러낸다. 육지에서는 수많은 산봉우리들이 첩첩하게 다가온다.

여자만에는 전어잡이 배들이 수십 척 떠있다. 가을이면 여자만에서는 전어를 많이 잡는다.

‘전어 굽는 냄새에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전어는 가을철에 가장 맛있다.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전어회와 전어회무침에 전어구이까지 세트로 나오는 전어요리는 가을철 최고의 술안주다. 칼집을 내고 굵은 소금을 뿌려 숯불에 구운 전어는 가시가 있어도 개의치 않고 머리부터 꼬리까지 통째로 먹어야 제 맛이다.

가림산 해안산책로를 지나 두랭이해변으로 들어선다. 두랭이해변은 여자만에서도 동쪽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 두랭이해변에서는 건너편 순천시 와온해변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두랭이해변과 와온해변 사이에는 썰물 때라 완전히 갯벌세상이 됐다.

바닷가에는 종종 갈대들이 꽃을 피워 검은 갯벌과 어울린다.

두랭이해변과 북쪽 와온해변 사이에 형성된 갯벌 한가운데로 바닷길이 열려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 있다. 하루 두 번 썰물 때 열리는 이곳 바닷길은 주변 갯벌보다 약간 높게 모래톱이 형성돼 와온해변까지 걸어서 갈 수 있다. 바위에는 자연산 굴이 붙어있다. 날씨가 추워지면 물 빠진 시간대를 이용하여 자연산 굴을 채취한다.

두랭이해변과 북쪽 와온해변 사이에 형성된 갯벌 한가운데로 바닷길이 열려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 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자세히 바라보면 갯벌에서 게들이 기어 다니고 있다. 갯벌에 무수한 점이 보였는데 그 주인공이 게였던 것이다. 게들은 갯벌 위를 기어 다니다가 사람 발자국 소리만 나도 금방 구멍 속으로 숨어버리는 생존본능을 보여준다.

여수시의 마지막 마을인 율촌면 두봉마을 앞을 지난다. 두봉마을을 지나 도로를 따라가다가 작은 다리를 건너니 순천시 해룡면이다. 남파랑길은 여수를 지나 순천 땅에 진입한 것이다.

와온해변으로 통하는 도로를 따라가다가 도로 위쪽에 자리한 용화사로 올라간다. 작은 절이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고 여자만을 바라보는 조망이 일품이다.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산사음악회 현수막도 걸려있다. 이웃 종교와 함께,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문화행사가 눈길을 끈다.

용화사를 출발해 산기슭 밭길을 따라 와온해변으로 향한다. 와온마을 골목길을 거처 해변으로 내려오니 와온포구가 기다리고 있다.

와온포구는 여자만과 순천만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방파제에 앉아 여자만과 순천만을 바라본다. 드넓은 갯벌이 질박하게 살아가는 해변마을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그 모습이 한없이 포근하고 소박하다.

<장갑수·여행작가>

※여행쪽지
▶남파랑길 60코스는 여수에서 순천으로, 여자만에서 순천만으로 넘어가는 코스로 드넓은 갯벌과 어촌마을의 질박한 모습을 보면서 걷는 길이다.
▶코스 : 궁항마을→장척마을→봉전마을→가림산해안산책로→와온해변
※거리, 소요시간 : 15.1㎞, 5시간 소요
※난이도 : 보통
※출발지 내비게이션주소 : 궁항마을회관(여수시 소라면 궁항길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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