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3월16일 대통령은 일본 총리와 도쿄에서 저녁밥을 먹는다고 한다. 지난주, 한국인을 강제 동원한 일본 전범기업에 내놓고 면죄부를 준 다음 잡힌 식사다.

얼마전 3·1절 기념행사에서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 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얘기해서 유관순 열사를 깜짝 놀라게 한 뒤 보름도 지나지 않았다.

얼마전 정부가 제시한 강제동원 배상 해법은 수교 이래 최악이라는 한일 갈등 해결을 위한 현실적인 차선책이라고는 하지만 일본 정부의 사과도, 피고기업의 참여도 전제되지 않았다. 당장 피해자 측은 “결국 일본에 모든 면죄부를 줬다”고 반발했다. 야당은 “일본 눈치만 본 굴욕 외교”라고 비판했다.

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일제 강제징용 생존 원고 3명은 정부가 추진하는 ‘제3자 변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거부 의사를 전달했다.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 대리인 측은 제3자 변제를 맡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에 제3자 변제 거부 의사를 담은 내용증명을 전달할 예정이다. 대리인은 내용증명에서 양금덕·김성주 할머니의 채권은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와 직결된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전제로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한 것이라며 “제3자가 채권자의 의사에 반해 함부로 변제하여 소멸시켜도 되는 성질의 채권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서울대 민주화교수협의회(민교협)는 14일 낸 성명에서 “(정부의 해법은) 삼권분립의 원칙 등 헌법적 질서에 대한 존중과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는 일방적인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한국갤럽이 8~9일 전국 1,002명을 조사한 결과 일본 가해기업 대신 국내 재단이 기금을 마련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는 ‘제3자 변제’ 방식을 정부가 내놓은 데 대해 59%가 ‘일본의 사과와 배상이 없어 반대한다’고 답했다. 지난 주말엔 시민단체가 주관한 규탄집회에 민주당-정의당이 합류했다.

설상가상 지난 9일 일본 중의원 안전보장위원회에서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강제동원은 없었다. 이미 다 끝난 일”이라고 말했다. 강제동원 자체를 공식적으로 부정한 처사는 명백히 우리정부와 우리국민을 모독한 행위다.

지난 주말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등 시민사회·정치권·노동계가 피해자 권리를 박탈하고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정부 해법 철회를 강력히 요구하며 서울시청광장에서 ‘강제동원 굴욕해법 강행 규탄! 일본의 사죄배상 촉구! 2차 범국민 대회’를 연 이유다. 광주에서도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 ‘3자 변제안’ 폐지를 촉구하는 거리 서명운동이 열렸다. 광주전남역사정의평화행동은 “굴욕 외교에 반발하는 국민들과 함께 민족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역사는 거꾸로 가는 역사를 용서하지 않는다. 정부가 제3자 변제 방식을 발표한 지 사흘 만에 일본 외무상은 아예 강제 동원은 없었다고 공식 부인하는 것 보라. 반성이라고는 티끌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일본 아닌가. 누가 사과하고 누가 용서해야 하는 주체인가. 가해자는 철저히 이익을 챙기고 있고 피해자는 손해와 굴욕을 견뎌야 하는 이 상황을 보고 안중근 의사는 뭐라 말할까.

더군다나 최근 일본 정부는 35년 만에 자국 내 섬을 재집계했다며 독도를 포함해 발표했다. 우리와 관계 개선하겠다는 나라의 태도가 너무 가증스럽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사과와 배상을 받기 위한 수십년의 노력 끝에 대법원에서 승소한 피해자들의 요구를 정부가 뒤집는단 말인가. 우리나라의 국격이나 위치가 일본의 눈치를 보고 일본에 굴욕외교를 할 만큼 낮지 않다. 피해자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시간에 쫓기듯 얼렁뚱땅 매듭지으려 하지 말라.

정부가 내놓은 방안은 일본 피고 기업에 대한 피해자들의 채권을 일방적으로 소멸시키는 데만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를 진행시키기 위해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정관을 변경해 피해자들에 대한 금전적 지원 근거를 마련하는 절차를 당장 멈추라.

정당한 사과와 배상을 받기 위해 30년 넘게 싸워온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일본측의 사과도 배상도 없이 한국 기업에게서 돈을 받으라며 강요하는 것은 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관계 개선을 애원하는 굴욕외교는 독립정신에도 위배된다.

우리는 지금 자주독립과 평화를 꿈꿨던 3·1운동의 염원과 반대로 가고 있다. 1919년 봄, 선조들은 일제의 식민지배와 억압 속에서 목숨을 걸고 독립을 외쳤다. 더이상 고통받지 않는 새 세상을 꿈꾸며 피를 흘렸다.

진심으로 바란다. 정부는 세계사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지금, 일본과 어떤 관계설정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국민 의견을 물어야 한다. 독립운동가들이 바랬던 자주롭고 평화로운 나라를 위해 지금 나아가는 길이 정녕 바른 길인지 질문하고 성찰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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