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만큼의 낙엽이 지고, 그런 만큼 아파하고
성근 갈대처럼 서서 자는 이 잠을
그들은 예순의 숲이라 이름 지어 불렀다

폐 정미소 지붕 위에 그려진 새털구름
방금 기찻길에 핀 여린 구절초처럼
서늘한 시간의 냄새는 거기 머물러 있으리

(시집 ‘달아공원에 달아는 없고’, 가히, 2024)

[시의 눈]

어느새 숲길로 들었습니다. 서너 겹 지나온 둔덕길과 새벽부터 출근하던 제지공장의 정문이 보입니다. 길은 가팔랐지만 뭐 견딜만은 했습니다. 동구에서 떨어진 정미소 뒷산에는, 거짓말같이 예순의 숲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바쁘다 바쁘다 그 길을 서둘러 갑니다. 아마 좌고우면하지 않고 지나온 제 걸음 습벽 때문일까요. 그래, 들어가는 길로는 다시 나올 수 없겠지요. 숲엔 지나온 길만큼 어두운 생의 허물이 쌓여갑니다. 세파에 부대끼는 아픔 층도 그만큼 켜켜이 누적되지요. 참, 낙목의 허리께로 부딪쳐오는 제 무게를 견디기 어렵습니다. 골병의 통증은 뭇 항생제가 켜대는 크로스오버에 스스로 일디보의 사중창인 양 토해집니다. 방금 세월의 한 간이역을 또 지나왔습니다. 구절초 몸짓들이 시간을 잡으려 흔들거립니다. 노오란 그 웃음을 내 표정에 얹어보지만 틀니 밖 입술만이 씰룩거릴 뿐입니다. 예순의 숲 앞에, 난 식구들에게 참 미안했네요. 노상 편두통을 단 이마엔 서너 개 그물친 비애를 푸줏간 고기처럼 매달고 있었네요. 그 숲이 불랙홀로 벌써 접수해버렸듯 날 삼킨 나무들은 오늘도 서늘한 시간의 냄새로 머물러 있습니다. 쥐스킨트가 묘사한 그루누이의 향기일까요. 운명처럼 고인 향수의 찬 샘으로 예순의 애순들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달균 시인은 경남 함안에서 나 1987년 ‘남해행’과 무크지 ‘지평’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 ‘열도의 등뼈’(2019), ‘늙은 사자’(2016), ‘문자의 파편’(2011), ‘장롱의 말’(2005) 등을 펴냈습니다. 그는 대상과 존재에 한 줄 여백으로 소통하며 자신의 호흡을 늦춘 겸손의 자리에 미학적 보폭을 조용히 딛는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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