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광주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열린 조성진 피아노 리사이틀 공연은 1천500여명 관객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선사했다. 사진은 피아니스트 조성진 프로필

넓은 무대 위 악기는 피아노 한 대였지만, 이날 공연은 마치 한 편의 오케스트라 같은 다채로운 선율을 펼쳐냈다.

지난 15일 오후 4시 광주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열린 조성진 피아노 리사이틀 공연은 황홀함 그 자체였다.

이번 공연은 티켓 오픈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전석이 매진될 만큼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치열한 티켓팅을 거쳐 모인 1천500여명이 객석을 가득 채운 공연장의 모습은 흡사 아이돌 콘서트를 방불케 했다.

약 3년 8개월 만에 광주 무대에 오른 조성진은 이날 라벨과 리스트 작품을 선보였다.

열렬한 박수갈채 속 등장한 조성진은 가장 먼저 라벨의 ‘그로테스크한 세레나데’를 연주했다.

자리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은 그가 손수건으로 건반을 닦고 첫 음을 내딛는 순간 공기의 흐름이 일순간 바뀌었다.

건반을 어루만지는 듯한 조성진의 연주는 섬세하면서도 미끄러지듯 시작됐다.

라벨의 곡은 호수에 비친 윤슬 같이 맑고 투명한 느낌을 자아냈다. 속삭이는 듯한 피아노 선율에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연주에 몰입했다.

경쾌한 리듬감과 오묘한 화성 변화로 신비감을 주는 라벨의 ‘고풍스러운 미뉴에트’,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 등은 조성진 특유의 감각적이면서도 담백한 타건을 느낄 수 있는 곡들이었다. 건반 하나하나가 눌릴 때마다 맑게 퍼지는 음색은 마치 물방울이 건반 위를 굴러다니는 듯한 느낌을 줬다.

고난이도로 꼽히는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는 조성진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다양한 변주가 빠른 속도로 이뤄지는 가운데 그만의 정교하면서도 풍부한 감정 표현이 더해졌다.

그중 ‘스카르보’는 익살스럽고 장난끼 많은 난쟁이 요정 스카르보를 묘사한 곡으로, 고도의 기술과 변화무쌍한 감정 표현을 동시에 요하는 어려운 곡이다. 강렬하게 휘몰아치는 현란한 연주와 함께 곡에 심취한 표정, 몸동작은 무대를 열정으로 가득 채웠다.

마지막 프로그램인 리스트의 ‘순례의 해 제2권 이탈리아’는 ‘혼례’, ‘생각하는 사람’, ‘살바토르 로사의 칸초네타’ 등 모두 7곡으로 구성됐다. 조성진은 50분 가량 쉼 없이 이어지는 긴 호흡의 작품을 때론 물 흐르듯 잔잔하게, 때론 격정적이면서 화려하게 꾸며냈다.

마지막 곡인 ‘단테를 읽고, 소나타풍의 환상곡’ 연주가 끝나자 객석 곳곳에서는 열렬한 환호와 함께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날 앙코르 곡으로 조성진은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라벨의 ‘어릿광대의 아침’을 선사하며 관객들의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가히 ‘건반 위의 시인’이라고 불릴 만한 조성진의 리사이틀 무대에 진한 여운이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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