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문화재단 전문위원

오랜만에 소극장엘 갔다. 광주 동구 예술의 거리에 위치한 미로극장, 계단을 따박따박 걸어올라가 제일 위층에 자리한 소극장 객석에 앉았다. 소극장은 추억을 돋게 하는 공간이다. 옛날 기억이 떠올랐다. 친구의 손을 잡고 찾아가 연극 속으로 빠져들었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다. 오래 전 소극장의 연극문화는 지금과는 딴판이었다. 영화관람 횟수에 비견될 만큼 소극장에 자주 갔었던 듯 싶다. 무려 20-30년 저쪽 너머의 이야기긴 하다. 이후 영화산업은 번창했고 영화관람객은 급신장했다. 그에 반해 연극은 쪼그라(?)들었다. 특히 소극장 연극은 애처로울 지경이 됐다. 그런 와중에도 소극장을 지키며 꿋꿋이 소극장 연극에 매진하고 있는 극단도 있다. 마치 독립운동하듯이 말이다.

연극은 매우 재미 있었다. 극단 희망문화컴퍼니가 쏘아올린 ‘목욕탕 부르스’,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였다. 특히 중년을 훌쩍 넘어선 중량감있는 배우들이 맛깔스럽게 던지는 대사와 연기는 객석에 있는 관람객들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동네 사랑방이자 직위의 고하없이 평등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는 ‘목욕탕’이라는 공간에서 배우들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거기엔 오늘을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오래된 목욕탕에서의 이러저러한 사연은 각박한 삶 가운데서도 정을 쌓아가는 우리네 이야기였다. 어릴 적 동네 목욕탕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심각한 청년취업난, 가족간의 사랑, 지인들과의 관계 등이 복잡다단하지만 유쾌하고 재밌게 그려졌다. 소극장 공연이라는 점 때문에 옛 시절의 추억이 자연스레 떠올려지는 시간이었다.

다들 지나간 추억은 아름답다고 한다. 아슴푸레 떠오르는 추억은 정말 아름답기도 하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어쩌면 상처나 부끄러움이기도 하고 잊어버리고 싶거나 없애야 하는 대상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과거의 흔적을 송두리째 없애고 거기에 비까번쩍한 새 것을 갖다 앉힌다. 그렇다고 해서 추억의 대상을 없애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낡고 추레한 것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때문에 과거의 흔적 지우기를 멈추고 이를 문화콘텐츠화해 자산으로 남겨야 한다. 이를 잘 보전하고 가꿔 문화관광자원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원도심 활성화에 대한 화두가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것도 그같은 맥락일게다. 얼마 전 광주 동구에서 ‘원도심활성화 공론회’가 개최됐다. 동구는 다른 도시의 중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도시의 시작이 이뤄진 곳이기에 다른 지역보다 도시의 역사와 관련한 자산이 풍성하다. 한때 개발이란 명목아래 없애고 새로 짓고 했던 것에서 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기존의 것을 보존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게 이 시대 트렌드가 됐다. 여러 가지 방안들이 공론회에서 나왔다. 동계천 복원을 비롯해 원도심역사관(도서관+도시 아카이브 공간), 모바일 중심의 웹사이트 통합으로 스마트 관광 실현, 골목길 활성화, 상가 활성화, 광산길·서남로 로드마켓 조성, 대인예술시장 특성화 등이 그것이다.

누가 뭐래도 추억은 우리가 가진 자산이다. 추억이 상품이 되는 시대다. 더욱이 우리는 짧은 시간 속에서 많은 경험을 했다. 50대 이상의 시니어들은 농업사회에서 산업화사회, 정보화사회, 제4차 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 다 경험했다. 논밭에서 농사짓는 것에서부터 단시간내에 이룩한 고도의 기술문명사회까지를 한 세대가 경험한 것이다. 복잡하고 신속하게 돌아가는 세상살이에서 체험의 만렙이 됐다. 이 추억과 체험이 K-Culture를 세계에 우뚝 세운 동력이 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 어디서고 찾아볼 길 없는 풍성한 체험에 토대를 둔 스토리의 강력한 힘을 강조하는 것이다. 추억의 편린을 없애지 않고 원도심을 활성화하는 게 도시의 미래 발전에 주춧돌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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