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식 시인·시앤영 원장

한낮은 바람이 불어도 햇빛 덕분에 나름 견딜만하지만, 그늘 안으로 들어가면 차차 찬 기운이 들어서 어깨가 움츠러든다.

산중의 바람은 그늘을 좋아해서 그 속에 오래 머무르며 노닥거리는 걸 즐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산중에 적응하려면 바람의 속성과 바람이 자주 출몰하는 시간과 장소를 알아둬야만 그를 미워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인간이 어찌 바람의 생각을 미리 알고 대처할 수 있겠는가.

바람은 또한 짓궂은 행동을 즐겨하므로 온 산과 들판의 단풍들을 일찍 떨어뜨리고 땅 위의 낙엽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거나 한 방향으로 몰아붙이기도 한다.

거리를 걷다 보면 아름답게 물든 잎들이 혹독한 바람으로 인하여 심하게 부대낀 나머지 마치 돌가루처럼 부서져 모퉁이에 웅크리고 있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알 수 없는 것이 바람의 마음인 만큼, 사람에게도 이처럼 찬 바람과 같은 기운으로 상대를 대하는 경우를 가끔 경험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속에는 그의 성정이 들어가 있다.

숨어 있어서 알 수 없는 성정은 그 자신도 모르게 어떤 극적인 상황에서 바로 나타나곤 한다. 누군가 무슨 상을 탔다거나 또는 누군가 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으면 순간 질투심이 발동해 당사자와 함께 한 자리마저 무시한 채 곧장 뛰쳐 나가버린다. 축하할 줄 모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성정을 가진 이를 굳이 문단 안에서 거론하자면, 그러니까 표현을 비틀어서 말하자면, 그 이름난 시를 질투할 정도가 되어야지 그 시인을 질투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질투 속에는 미움이 박혀 있어서 서로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이다.

일반인도 역시 마찬가지다. 설령 이와 유사한 상황이 전개되더라도 그 사람의 능력을 시기해야지 그 사람 자체를 시기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결국 이런 심리적 사태는 자신의 식견이 부족한 상태에서 나타나는 행위와 같다. 우리는 이럴수록 자신의 식견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쓰메 소세키(1867-1916)의 『인생의 이야기』(시와서. 2019. 박성민 옮김),「담화」편에서 <문학담>을 펼쳐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스스로의 식견에 반하지 않게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러나 식견이란 깊이 생각하고 깊이 수양하고 깊이 읽고 또 깊이 품어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문학자는 두뇌 수양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식견이 없는 작품은 그런 점에서 보면 가치가 없습니다. … 때문에 학문이 없으면 안 됩니다. 학문이 없다면 식견이 있어야 합니다. 어렵게 말하면 인생관이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차츰 햇볕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엊그제가 소설(小雪)이었고 다음 주에는 대설(大雪)이 버티고 있다. 이 절기 사이에 눈이 올 듯도 하여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오히려 설레는 마음보다 추위 걱정이 앞선다. 산중의 새벽은 어느덧 기온이 급속하게 떨어져 밖은 얼고 실내에는 냉기가 인다.

필자는 며칠 전에 월동 준비를 했다. 무슨 감동할 정도의 대단한 준비는 아니지만, 이 또한 주위의 식견을 통해 마련한 것이어서 매우 유익하다. 지난해에 보일러 기름을 아끼느라 멋모르고 실내 난방 전원을 꺼놨는데 동파사고로 애를 먹었다. 그래서 며칠 전에 거실 침대 위에 텐트를 설치했더니 외풍이 줄고 텐트 안은 미지근한 물을 마신 후의 온기가 고여 있었다.

이 텐트 하나가 필자의 생활을 변화시켰다면 도시인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외로운 다람쥐가 좁은 굴에서 기어 나와 먹이를 찾듯 필자의 이른 아침도 이처럼 분주하게 움직인다.

밖으로 나오니 마당가에서 한 송이 겨울 장미가 얼굴을 내밀며 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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