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순복 품자주자시민들 대표회장 / 조선대 법학과 교수

지방자치는 단체자치와 주민자치로 이뤄진다. 단체자치는 자치분권의 원리를, 주민자치는 주민주권 원리를 나타낸다. 주민자치는 주인으로서의 시민의식, 주민의식이 중요하다. 주민자치의식과 역량이 필요하다. 내가 사는 마을과 지역사회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마을 주민이다. 무엇이 우리 지역사회에 필요하고 무엇이 불편한 지를 절실하게 아는 사람은 바로 주민이다. 주민이 동 행정의 주체로서 나서야 한다. 행정이 시키는대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의 합의를 통해 마을 계획을 세우고 주민총회를 통해서 주민이 원하는 사업계획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공공 서비스를 공동으로 생산하는 기저에 바로 주민 자치회가 있다. 행정이 일방적으로 하는 시대는 지났다. 주민의 선호와 수요를 반영한 정책 결정과 원만한 정책 집행을 위해서는 주민의 참여와 동의가 필요하다. 정책 평가도 궁극적으로는 시민이 참여해야 정당성이 부여될 것이다.

시민 주체의식과 주민 주체역량이 하루아침에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교육과 학습 그리고 시행착오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독일에서는 시민 정치 교육이 필수라고 한다.

우리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공수부대의 총칼 앞에서도 시민들은 피로써 민주주의를 지켰다. 치안 부재 상황 10일 동안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상황에서도 시민들은 주먹밥을 나누고 헌혈을 했다. 모든 통신과 정보가 차단된 상황에서도 도청 앞 분수대 광장에서 시민들은 자유 토론을 통해서 의견을 개진하고 공유했다. 이른바 분수대 학습동아리 활동이었다. 피로 값주고 희생을 통해 민주주의를 일구었다. 미국의 토마스 제퍼슨은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라고 했다는데, 권위주의 군사독재정권 치하에서 많은 분들이 민주화의 제단에 고귀한 피를 흘리셨다. 3·1만세운동과 5·18은 국민이 주권자임을 나타낸 역사적인 사건이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무도한 정권에 의해 2024년 12월3일 밤 10시30분에 자행된 뜬금없는 비상계엄 선포로 국회를 장악하려는 시도에 대해, 시민들이 나서서 국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 군인들로부터 국회를 지키고 이 땅의 민주주주의를 지켜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5·18 이후에 태어난 어떤 이는 계엄군의 총부리를 맨 손으로 잡으면서 계엄군에게 “부끄럽지 않느냐”고 일갈했다. 그는 5·18의 교훈이 있었기에, 오늘이 가능했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한강 작가는 80년 5월을 조명한 소설 ‘소년이 온다’를 썼다. 노벨문학상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한강은 “맨손으로 무장한 군인들을 껴안으면서 제지하려고 하는 모습도 보았고, 총을 들고 다가오는 군인들 앞에서 버텨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았다. 마지막에 군인들이 물러갈 때는 마치 아들에게 하듯이 ‘잘 가’라고 소리치는 모습도 보았다”며 “그분들의 진심과 용기가 느껴졌던 순간이었다”고 했다. “젊은 경찰분들, 군인 분들도 내적 충돌을 느끼면서 최대한 소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언급했다. 성숙한 시민의식, 주민주체의식과 역량이 한밤의 추위를 견디며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바로 엊그제 실체적 절차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비상계엄 발동에 대해 국회의사당 앞으로 집결한 시민들은 한국 사회가 망가지는 것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시민으로서 나왔다고 했다. 내가 사는 마을과 동네에서부터,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부터 자치와 자율의 훈련이 내재화돼야 한다. 그러기에 주민자치는 민주주의 훈련장이요, 민주주의 성공의 조건이라고 하지 않은가?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고, 함께 토의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가운데 이견을 조율하며, 지역사회 공동체의 의제에 대해 합의를 도출해가는 과정이 민주주의 훈련이다. 깨어있는 시민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 보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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