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3(목)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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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미술관에는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연작 중 하나인 ‘절규’(1893)가 전시돼 있다. 1991년 노르웨이를 방문하면서 우연히 보았고 우연히 알게 된 작품이다. 세계에서 빛나는 그림으로 손꼽히는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피카소의 게르니카,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 등과 함께 평가되고 있는 작품 중 하나이다. 처음 본 절규에서 붉은 노을로부터 하늘이 뒤틀리는 공포를 느낀 해골 같은 얼굴을 한 인간이 두 손으로 귀를 막고 힘을 다해 무언가를 부르짖고 있는 그림에서 평생 잊지 못할 불안, 고통, 절망을 느낄 수 있었다.
매튜 D. 리버먼은 ‘사회적 뇌’라는 저서에서 ‘인간의 뇌는 생각을 위해서 만이 아니라, 사회적 연결’을 위해서도 설계됐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도록 촉각이 발달해 있다. 실제로 피부라는 촉각 조직은 사회성 기관이며, 촉각은 모든 감각 중 가장 먼저 발달하는 뇌감각이다. 인간은 손을 얹고, 쓰다듬고, 손을 잡고, 껴안고, 팔짱을 끼고, 키스하는 등의 무수한 촉각적 자극을 통해 사회적 유대를 만들어 간다.
절규는 감성적인 뇌의 작용이다. 뇌과학자들은 감성을 흥분, 공포, 불안, 기억, 욕망을 관장하는 신경망의 연결인 ‘대뇌변연계를 중심으로 한 ‘즐겁거나 불쾌한 마음의 작용’으로 밝히고 있다. 변연계는 시상하부, 대상피질, 해마, 편도체로 구성돼 있다. 무리 짓기와 구별 짓기 그리고 공격성 본능을 관장하는 시상하부는 스트레스를 통제한다. 대상피질은 인지기능과 주의 집중력을, 해마는 장기 기억을 담당하면서 어떤 기억을 떠올리고 무엇에 집중하는지와 긴밀한 연관을 가지며, 편도체는 대상피질과 작용하여 불안, 공포, 기쁨, 행복 등의 감정을 형성한다. 변연계 바깥쪽의 전전두피질은 사랑, 열정, 미움과 같은 인식 가능한 느낌, 정서, 그리고 단어로 표현하도록 생각하고 조절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뇌는 감정 조절의 전전두피질과 감정 형성의 변연계가 상호작용을 해 느끼고 행동을 결정한다.
뇌에서 미움을 관장하는 경로를 ‘미움 회로’라 불리지만 ‘미움 회로’는 ‘사랑 회로’라고 불리는 곳과도 상당히 겹친다. 우리 뇌는 두려움이나 불안을 느꼈을 때 무리 짓기와 구별 짓기로 대응해 우호집단을 향해서는 사랑과 결속 그리고 협력을 만들고(사랑 회로), 비우호집단을 향해서는 분노와 공포와 역겨움을 느끼게 된다(미움 회로). 인간에게는 협력과 결속 그리고 혐오와 배척의 스위치가 함께 내장된 것이다.
한강 작가는 12월10일 노벨문학상 수상 이틀 전 특별한 시간을 내어 어린시절 영감을 많이 받았던 동화의 작가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의 집을 방문했다. 린드그렌이 1973년에 발표한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열 살 때쯤 읽었던 한강 작가는 “그들을 둘러싼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폭력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 책이 자신의 내면에서 80년 광주와 연결되어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저자인 린드그렌은 아동문학으로 죽음을 진지하게 다룬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서 요나탄과 칼 형제의 목소리를 빌어 옳은 일을 지키기 위해서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 뿐만 아니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5·18의 시간에 시민들은 절규했고 그 시간이 만들어낸 잔인하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은 탄생했다. 12월3일 계엄령 선포 이후 세상은 절규하고 있다. 이제 노벨문학상의 한강 작가로부터 우리는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한 대한민국이 무엇을 배울 것인가? 에 대해 답을 찾아야 한다.
그는 “가장 어두운 밤에도 언어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고, 언어는 이 행성에 사는 사람의 관점에서 상상하기를 고집하며, 언어는 우리를 서로 연결한다” 그리고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이지”라고 이야기한다. 절규의 시간에 두려움과 용기 그리고 상처와 치유라는 인간의 영원한 화두에 대해 진실이 담긴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왔다. 우리 자신의 상처받은 영혼이 불가피한 모험을 거치면서 연결된 고통을 사랑으로 포용해 가는 한강 작가의 사유가 필요한 시간이 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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