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3(목)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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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이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을 이유로 450여 일간 지속된 10·26 계엄이 마지막이었으니,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10번째다.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을 겁박하는 이런 무도한 발상과 야만적 행위가 아직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이 섬뜩하고 참담할 따름이다.
이 같은 작금의 현실을 지성인들은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교수신문이 전국 대학교수 1천86명을 대상으로 올해의 사자성어를 설문한 결과, ‘도량발호(跳梁跋扈)’를 압도적으로 밀었다.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라는 뜻이다. 권력자는 국민의 삶을 위해 노력하고 봉사하는 데 권력을 선용해야 함에도, 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하고 있음을 비판한 것이다.
글쎄, 이렇게 압축적이고 적확한 단어가 또 있나 싶다. 권력자가 지켜야 할 규범의 본질은, 위임받은 권력을 선용해서 국민의 안위와 행복을 위해 노력하고 봉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이와는 판이하다. 권력자들은 자신이 곧 권력의 원천인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우리는 신물이 나게 봐왔다.
권력을 사유화하는 위정자가 많을수록 국민의 삶은 팍팍하고 고단하다. 권력자가 위임받은 권력으로 주인을 지배하는 형국, 즉 주객이 뒤바뀐 상황에서 국민이 행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올 사회상황을 극명하게 표현한 사자성어 ‘도량발호(跳梁跋扈)’에는 많은 게 함의돼 있다. 대통령 부부의 국정농단 의혹에서부터 친인척 보호, 정부·기관장의 권력 남용, 검찰 독재, 굴욕적인 외교, 경제의 몰이해와 국민의 삶에 대한 무관심, 명태균·역술인 등에 의한 나라 분열이 그것이다.
이번 탄핵 정국에서 위기에 빠진 대의민주주의에 희망을 준 건 다름 아닌 시민들이었다. 촛불 대신 아이돌 응원봉으로, 민중가요 대신 K-가요로,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민의 힘을 보여줬다.
국회의사당 근처 카페에는 탄핵 집회 참가자들을 위해 500만 원어치의 커피를 선결제해 뒀다는 등, 시민들의 선결제 릴레이 사례가 소셜미디어에 줄줄이 올라왔다. 이념과 관계없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들이 민주주의의 버팀목이 된 것이다.
또한 시민들은 계엄선포 직후 국회로 달려가 무장한 계엄군의 국회 진입을 온몸으로 저지하고, 국회 담장을 넘는 국회의원들을 호위했다. 그리고 국민의힘의 탄핵 반대 당론 둑을 무너뜨린 것도 역시 시민들의 힘이었다.
특히 ‘탈정치 세대’로 불렸던 청년 세대의 건강한 민주 의식도 빛났다. 과거와는 달리 올 집회는 2030세대의 여성들이 중심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K-팝을 부르며 집회 문화를 바꿨고, K-민주주의라는 또 하나의 K컬처를 탄생시켰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를 목격하고, 양극화와 능력주의에 고통받는 그들의 누적된 분노와 실망이 동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또 한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다. 그런데 전혀 아쉽지 않다. 혼란의 시간을 생각하면 치가 떨릴 뿐이다. 지울 수 있다면, 지워버리고픈 2024년이다.
그러나 2024년을 접으면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이 순간에도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며 광장에 나선 수백만 시민의 상기된 얼굴들, 그리고 노벨문학상 작가 한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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