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 아동문학가

“이젠 괜찮아, ‘걱정 인형’이 가져갔거든.”

옛 마야 문명의 발상지인 중부 아메리카의 과테말라에서 전해오는 ‘걱정 인형’은, 부모가 걱정하는 아이에게 선물로 줬던 것에서 유래한단다. 작은 나무와 헝겊 조각으로 만든 조그맣고 볼품도 별로 없는 걱정 인형에게 속상하고 걱정되는 일들을 이야기하게 한 다음, 베개 밑에 넣어 두고 잠자리에 들게 한단다. 그러고선 아이가 새근새근 잠이 들면 베개 밑에 넣어둔 걱정 인형을 살며시 빼내어 치우는 방법이다. 아침이 되어 잠에서 깨어난 아이는 베개 밑에 넣어 두었던 걱정 인형이 사라진 걸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쉰단다. 슬프고 속상하고 걱정되는 일들을 모두 걱정 인형이 가져가 걱정도 대신 해주고, 아주 멀리 가져가 내다 버린다는 부모의 말에 기분도 좋아진단다.

영국의 세계적인 삽화가이며 동화작가인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 <겁쟁이 빌리>에도 걱정 인형이 등장한다. 침대에 누워 잠을 자는 동안에 모자가 너무너무 많아져 침대를 덮쳐 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침대 밑에 놓아둔 신발들이 잠을 자는 동안에 창문을 넘어 도망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잠을 잘 수 없는 빌리의 이야기다. 잠을 자는 동안에 큰비가 내려 침대가 물에 잠겨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커다란 새가 날아 들어와 빌리를 입에 물고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마음 편히 잠을 잘 수 없는 겁쟁이 빌리의 이야기다.

“걱정하지 마라, 아가야,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엄마 아빠가 널 지켜 줄 거야.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단다. 다 네 상상일 뿐이야.” 아빠와 엄마가 건네는 위로의 말도 걱정을 더 해줄 뿐이다. 쓸데없는 걱정이나 하는 아이가 된 것 같고, 누군가가 지켜줘야 할 나약한 아기가 된 것 같아 더 많은 걱정이 쌓일 뿐이다. 황당하고 말도 안 되는 걱정이나 하는 바보가 된 것 같아 또 다른 걱정이 더해질 뿐이다.

“걱정하지 마라, 걱정 인형이 대신해 줄 거란다.”

할머니도 빌리처럼 별별 상상을 다 하며, 걱정도 많았는데 지금은 괜찮다는 말과 함께 건네주신 걱정 인형도 빌리의 걱정을 없애지는 못한다. 걱정 인형에게 걱정을 털어놓고, 베개 밑에 넣어 둔 다음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을 잘 수가 없다. 빌리가 자는 동안에 빌리의 걱정들을 대신하여 걱정하고 있을, 빌리의 걱정들을 아주 멀리 내다 버리기 위해 애쓰고 있을 걱정 인형들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걱정 없는 시간이 있었을까….’

가만 생각해보면, 살아오면서 걱정 없는 시간이 얼마나 있었나 싶다. 날씨가 너무 추울까 봐 걱정하고, 날씨가 너무 더울까 봐 걱정했다. 사람을 초대해 놓고는, 너무 적게 준비한 것 같아 걱정하고, 너무 많이 준비한 것 같아 또 걱정했다. 이런저런 걱정도 없이 너무나 편안하게 지내는 것 같으면, 내 삶의 방식이 안이해진 것 같아 또 다른 걱정이 생겨났다. 하지만, 걱정은 단지 걱정일 뿐인 것 같다. 걱정은 또 다른 걱정을 낳게 될 뿐,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거쳐야 할 단계도 아니고 앞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준비도 아닌 것 같다.

2025년, 새해가 시작됐다.

이제는 걱정이 아닌, 준비하며 함께 나아가는 시간들이 됐으면 좋겠다. 빌리의 걱정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었던 것은 아빠와 엄마의 위안도, 할머니가 건네주신 걱정 인형도 아니었던 것처럼, 걱정의 시작도 걱정의 끝도 우리들의 몫이니 말이다. 걱정 없는 세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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