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미자

매화꽃 송이송이 그려진
원피스를 하나 해 입고 싶어
하얀 바탕에 홍매화가 그려진
허리 라인이 딱 맞는 봄 원피스
흰 구두 차림에 흰 숄더백을 메고
매화 향기 은은한 화병이 놓여진
찻집에서 오랜만에
옛친구랑 차 한잔 하고 싶어
음악은 봄이어서 쇼팽이 좋겠지
지난 회포 풀다가 지루해지면
찻집을 나와 천천히 국립박물관으로 가서
옛 선인의 설중탐매도(雪中探梅圖) 그림을 보고 싶어
꽃샘눈이 마치, 내 원피스에
매화꽃잎처럼 흩날리는 날
내 마음 속 설산에 깊이깊이 숨어 있는
고목의 매화 한 송이 찾아서 떠나고 싶어
(시집 ‘첫 마을에 닿는 길’ 황금알 2015)

[시의 눈]
삼월이라지만 잔설 속 핀 매화란 보기 어렵지요. 여인의 옷으로부터 봄이 온다는 옛말이 실감 납니다. 홍매화 무늬 원피스를 입고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그 부풀기는 화자 마음만이 아니겠지요. 좋은 사람 앞에서 설레이는 건 봄도 마찬가지일 듯해요. 매화가 만발한 산 언덕이면 좋겠지만, 난분분할 땐 박물관 탐매도라도 봐야겠습니다. 한데, 그조차 시샘하듯 꽃샘눈이 휘몰아치는군요. 흰 원피스 홍매도 핏방울이듯 점점이 흩뿌려지고 맙니다. 매화 찾기란 이리도 아득하군요. 지금 정치의 난장판은 눈보라보다 더합니다. 잃고 만 우리의 봄, 소용돌이 싸움에 국태민안(國泰民安)의 매화는 어디서 피고 있을까요? 우미자 시인은 1951년 전주 출생으로 원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83년 ‘시문학’으로 등단해 시집 ‘무거워라 우리들 사랑’(1989) 등을 펴냈습니다. 그는 낙원주의에 입각한 사람과 자연을 형상화하며 거기 깃든 영혼의 샘물로 피폐된 우리 가슴을 관수해주는 그 봄의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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