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전시관 ‘물로 쓴 시(時)_못다한 말’

4전시관 전경 ‘물로 쓴 시(詩)’ 관객 참여 섹션

1전시관 ‘미래 기억_과거는 왜 지나가지 않는가’

인간의 폭력성과 존엄, 상처와 회복의 이중성을 품은 역사 앞에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전시가 마련됐다.

송창애 작가 개인전 ‘오하나 인피니티 - 소환된 미래기억’이 다음달 6일까지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글라스폴리곤, 베이스폴리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미국 유학 시절부터 쌓아온 사유와 경험을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와 접목해 예술적 서사로 풀어낸 작업이다.

작가는 미국 오리건대학교에서 회화와 드로잉을 전공하며 인간 존재의 본질, 기억과 상처, 반복되는 역사에 대한 사유를 예술로 표현해 왔다. 석사 과정 중 9·11 테러와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 고문 사진을 접한 충격은 이후 작업의 출발점이 됐다.

한국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그는 서구의 단일 시점을 해체하고 다중 시점을 활용한 ‘이동하는 시선’을 추구해왔다.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바라보는 시각은 영상·설치 작업으로도 확장됐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제작한 ‘천개의 눈물’ 시리즈는 물의 수압으로 바탕색을 지우는 ‘물 드로잉’ 기법으로 완성됐다.

물방울 드로잉 1천여 점은 슬픔과 연대의 의미를 담아 이후 전시에서도 관객의 기억과 감정을 따라 조용히 흐른다.

작가의 예술 세계 중심에는 ‘물’이 있다. 흐르는 물은 기억을 지우고 감정을 잇는 매개로, 말할 수 없는 것을 드러내는 비물질적 언어로 작용한다.

그중 관객 참여 프로젝트 ‘물로 쓴 시(詩)’는 한지에 지우고 싶은 기억을 물로 써 허공에 걸어두는 방식의 작품으로, 시간의 흐름 속 감정의 흔적을 남긴다.

이번 전시는 과거(아트폴리곤), 현재(연결로), 미래(글라스폴리곤)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로 구성됐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과 끝이 맞닿아 있다.

1전시관 ‘미래기억’에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향하는 기찻길을 형상화한 작업이, 2전시관 ‘가까이 먼’에서는 아부 그라이브 수감자들을 모티브로 한 드로잉이 전시된다.

과거 섹션의 설치작품 ‘심음, 과거는 왜 지나가지 않는가’에서는 영화 ‘노스탤지아’에 등장한 산 갈가노 수도원이 영상 배경으로 등장한다. 성스러움과 폐허, 기억과 실재의 경계를 표현하는 이 장소는 인간 내면의 황폐함을 상징한다.

현재를 지나 도달하는 베이스폴리곤 지하 1층에서는 ‘천개의 눈물’ 시리즈가 회화·영상·설치작업으로 펼쳐진다. 심연의 강을 은유한 공간 속에서 관람객은 슬픔과 상처를 공감하고 자신의 내면과 마주한다.

하이라이트는 글라스폴리곤 1층 관객 참여 섹션에서 만날 수 있는 ‘물로 쓴 시(詩)’다. 지우고 싶은 기억이나 감정을 물붓으로 써 내려가는 체험이다. 증발한 글자와 대비돼 감정은 고요히 남아 관객들에게 여운을 준다.

정헌기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대표는 “이번 전시는 단지 5·18을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그 기억을 품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고 말했다.

/최명진 기자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