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그림-설악 2024’

‘오늘날의 순례는 어디에 있는가.’

영암 아천미술관이 오는 30일까지 오수경 작가 개인전 ‘지오 필그림-감각적 지도(Sensory Map)’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고 오승윤 화백의 딸이자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구축해온 오수경 작가를 초청해 마련된 기획초대전으로, 한 예술가의 정신과 그로부터 이어진 또 한 세대의 창조적 사유가 한 공간에서 만나는 자리다.

‘나의 샘, 나의 근원(我泉)’을 뜻하는 아천미술관은 오승윤 화백의 주요 작품을 소장하며 한국 근·현대 서양화의 맥을 잇고 있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의 정체성과 작가의 예술적 뿌리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작가의 신작 연작 ‘지오 필그림-감각적 지도’는 자연 속 ‘순례자’(Pilgrim)로서 경험한 풍경과 감각의 층위를 회화로 풀어낸다. 작가는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이는 지층처럼 색과 형태를 반복적으로 겹쳐 올리며 화면 위에 ‘감각의 지층’을 구축한다. 이러한 과정은 풍경의 재현을 넘어 인간과 자연, 시간과 존재에 대한 사유로 확장된다.

오수경 작가는 “수백만 년의 압력을 견뎌온 암석의 결처럼, 나 또한 그 시간과 감각을 회화의 층으로 압축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에게 순례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신체와 감각을 통해 세계와 직접 맞닿는 과정이다. “박물관의 정교한 VR 기술이 발전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직접 몸을 움직여 순례의 길을 걷는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회화는 체험과 몰입의 미학을 품는다.

작품은 중국 둔황의 막고굴, 천산 산맥의 바위, 사막의 빛 등 원형적 자연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작가는 그 경험을 ‘압축된 감각’으로 전환해 인간의 몰입과 자연의 시간, 깨달음의 흔적을 한 화면에 응축했다. 암석의 결과 대지의 흔적은 순례의 여정 속에서 마주한 깨달음의 흔적이자 시간의 패턴으로 남는다.

오 작가는 “디지털 기술로는 완전히 재현할 수 없는 세계의 감각, 그리고 인간이 세계와 맺는 근원적 관계를 탐구하며 그 여정을 ‘감각적 지도’로 기록했다”고 밝혔다.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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