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3(화)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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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는 애초부터 문화중심 도시로의 자격을 갖추고 있었던 도시이다. 그런 터에 노무현의 목소리로 “창조적 문화역량을 발휘해서 지역발전을 하십시오”라는 목소리를 듣고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부끄럽기까지 했다. ACC는 우리 광주로선 대통령 노무현이 내린 분외의 선물이었다. 그런 때문인지 ACC는 시간이 갈수록 그 역할이 다양해지고 내실 또한 커진다는 것을 최근에 더더욱 크게 느끼고 있다.
ACC가 완성되는 과정에서 당시 이병훈 추진단장이 보인 리더십 또한 돋보였던 것은 물론이다. 필자는 지금도 이병훈 단장이 쓴 『아시아로 통하는 문화』란 책을 서가에 꽂아놓고 광주의 미래가 답답할 때마다 꺼내어 읽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이병훈을 오늘의 광주를 문화적으로 올려세운 ‘작은 거인’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 이후 이병훈 단장은 전국에서 유일한 광주시 제1대 문화경제부시장을 지냈는데 이 또한 광주문화의 가속페달을 밟았던 시기와 연관이 된다. 그럼에도 광주의 문화적 후진성은 여전하다. 문화중심도시 광주가 지구상을 들썩이는 K컬처에 어떤 역할을 보태고 있는가를 물으면 그 위상은 여전히 초라하다.
K컬처는 ‘한류’의 바람을 타고 대한민국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리드하는 개념으로 진화하고 있다. 세계인이 열광하면서 즐기는 문화생태계가 그 방향으로 조성되어 가고 있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K컬처는 고부가가치산업으로 한국경제를 이끄는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K컬처가 호시절을 구가할 때 광주는 과연 무얼 했을까? 노무현의 문화적 구상이 엄청났음에도 광주의 적막강산은 이어지고 있었다. 당연히 광주는 K컬처 생산의 전진기지로 나아갔어야 했다. 이럴 때 광주시민의 한 사람이자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부끄럽다는 생각뿐이다. 더 이상 엉거주춤하다가는 문화중심도시 광주가 문화의 주도권마저 내놓고 방황하는 사태가 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현대문학사에서 1930년대의 ‘시문학파’로 본격 시문학을 정립한 사람은 광산의 용아 박용철 시인인데도 강진 영랑생가에 가서야 그 향기를 접할 수 있다. 담양에 소재한 한국가사문학만 해도 그렇다. 무등산자락 자미탄을 배경으로 크게 꽃피웠던 가사문학을 광주가 아닌 담양에 넘겨줌으로 담양은 이제 가사문학의 성지가 되고 있다. 1996년 ‘문학의 해’를 맞아 당시 김종 광주문협 회장이 광주호 상류에 문학컴플랙스(복합공간)을 설계하고 추진했을 때만 해도 충효동을 중심으로 광주의 문학적 미래는 자못 창창했었다. 당시의 계획대로만 갔더라면 계산풍류로 상징되는 가사문학이나 시문학파기념관 같은 볼거리는 무등산을 배경으로 한 광주의 주요 관광품목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실로 부끄러운 일이다.
최근만 해도 그렇다. 2024년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광주의 유례없는 쾌거이지만 주도권은 벌써 장흥으로 넘어가고 있다. 한승원문학관에다 한강의 볼거리를 접목하자는 문화기획은 기대가 자못 고조되어 장흥관산고등학교를 노벨문예창작고등학교로의 개편이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한강 작품을 보러 5·18도시 광주로 와야 하는데도 장흥으로 방향을 틀게 된 것이다. 문화중심도시 광주는 이렇듯 노상 빼앗기고만 있는 도시가 됐다. 이쯤이니 광주를 향한 노무현의 포효가 다시금 그리워지는 것은 당연지사.
문화제일주의를 역설한 김구선생은 『백범일지』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했다. 김구 선생의 문화국가론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문화제국’으로 탄생시킨 셈이다. 김구 선생은 광주를 콕 집지는 않았지만 노무현은 광주를 구체적으로 적시했었다. 그럼에도 광주는 K컬처는 물론이고, 볼만한 지역의 문화유산마저 타지에 넘기는 수모를 계속해서 겪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부끄러운 것은 정치 행정이 아니고 우리 같이 칼럼이나 쓰는 서생들 차지이니 누구부터 탓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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