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1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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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채 박사의 신 해양실크로드] 해상실크로드의 중국 거점, 영파 (1)
옛 신라인이 만든 신령스런 보타산 관음상

  • 입력날짜 : 2017. 10.17. 18:48
중국 보타도는 중국 4대 불교성지 중 하나다. 매년 수백만명에 이르는 관광객과 참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신령스런 관음이 모셔져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옛날 신라 상인이 높은 풍랑으로 못 가져와 그곳에 모셔놓은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일본 승려 ‘혜악스님’으로 해서 이뤄졌다고 하고 있다. 국력과 자금력을 앞세워 일본이 설화를 선점해 간 것이다. 하루빨리 우리나라 학계와 불교계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왜곡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문병채 (주) 국토정보기술단 단장
▶중국 4대 불교성지 보타산 가는 길

보타도행 배를 타는 주자첨 포구는 정말 이색적인 모습이다. 티베트 포탈라 궁 모습으로 건축됐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보타도 관광을 끝나고 나서야 알았다.

입도를 기다리는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배를 타고 보타산으로 향했다. 바람이 없어 파도가 잔잔하다. 배에서 보는 ‘섬이 누워 있는 관음’이다. 멀리서 보면 섬이 저렇게 관음보살이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한 시간여를 타고 보타도 항구에 도착했다. 인산인해였다. 이 작은 섬에 중국인들이 몰려가는 까닭은 도대체 무엇일까. 최근엔 이곳에 거대한 관음상이 세워져서 그럴까.

보타산으로 가는 선착장 역시 비교적 깨끗하고 정돈돼 있었다. 이 곳 사찰이 얼마나 부유한지를 알 수 있었다. 모든 공공시설이 대리석으로 꾸며져 있다. 사람들이 이동하는 방향을 따라 이동하니, 표를 끊고 관광구역으로 입장한다. 중국에서 느끼는 것이지만, 외국인 입장권이 너무 비쌌다. 시기에 따라 다른데 ‘초파일’에 가장 비싸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인파 때문이다.

대합실에서 보타산 지도 한 장을 챙겨들고 나섰다. 보타산 관광의 시작을 알리는 입구! 미니버스들이 많은 곳이 있다. 그곳에서 가고 싶은 곳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이 가능했다.

입구 광장에는 문화해설사들이 엄청 많았다. 과장하면 여행객 수만큼이나 많았다. 그 중에 실력 있게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에게 말을 걸었다. 아주머니 해설사는 해박한 지식으로 우리의 궁금증을 많이 해소시켜 줬다. 성실성도 그지없었다.

조음동 입구에서 주지스님과 기념촬영하고 있는 필자.
보타산은 3박으로도 다 둘러보지 못할 만큼 많은 불교 유적들이 있다. 너무 많은 절이 많아 전문가 아니면 돌아와서 기억이 잘 안 난다. 남해관음(南海觀音), 법우사(法雨寺), 천보사(千步沙), 혜제사(慧濟寺), 보제사(普濟寺) 정도는 꼭 가 봐야 할 곳들이다. 이들을 대충만 보더라도 하루는 족히 소요된다. 이들은 모두 미니버스로 이동할 수 있는 곳이다. 계획성 있게 움직이면 최소한의 시간과 비용으로 둘러 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용궁이라 부르는 곳이 이곳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관음불교 성지인 ‘보타산’(普陀山)

절강성 주산군도(舟山群島)에 속한 섬이다. 이 섬의 크기는 11.82㎢, 면적 41.95㎢, 해안선 22.5㎞, 직사각형 형태를 갖추고 있다. 보타산은 오래 전부터 ‘해산제일’(海山第一)이라는 미명을 갖고 있었다. 자연풍경은 아름답고 다채롭다. 해안에는 기이한 돌들이 천태만상을 이루고 해식동굴이 많고 골짜기들이 절경을 이룬다. 울창한 숲속에 새들이 지저귀고 꽃향기 그윽하다. 여러 차례 이름이 바뀌었다. 매장산(梅岑山), 보타산(霧墻?, 백화산(白華山), 보타산(普陀山) 등으로 불렀다.

옛 문인들은 ‘산과 호수의 으뜸은 서호(西湖)에 있고, 산과 강의 명승은 계림(桂林)에 있고, 산과 바다의 절경은 보타(普陀)에 있다’고 노래했다. 산에는 고찰들이 널려있다. 30여개의 사찰이 있다. 모두 웅장하고 장엄하다. 전성기에는 3개의 큰 절, 88개의 암자, 128개의 수련장소, 4천여명의 스님들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비록 조그만 섬에 불과하지만, 그 명성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불교 4대 성지 중에 하나로, 섬 전체가 불교사찰과 유적으로 가득하다. 국내외 많은 불교신자들이 온다. 특히, 1982년에 국가풍경구로 지정된 후에는 관광객이 매년 수백만명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한중 고대 해상교통로의 요지로 우리 한반도인들의 발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 그들은 보타원을 찾고 향을 피우며 무사 항해를 기도한다. 예불은 당시 바다를 건너는 이들이 반드시 행하는 의식의 하나였다.

보타도의 주요 사찰과 한반도인 유적
신라 상인들은 일찍이 보타산 사찰에 불교 기물을 시주했다는 기록이 있다. 선박이 이곳에 이르면, 반드시 기도를 드린다. 절에는 종경(鐘磬)과 동물(銅物)이 있는데, 모두 계림(신라) 상인들이 시주한 것으로 그 나라의 연호가 많이 새겨져 있다. 때문에 많은 사찰에 유물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확인할 수 없어 매우 유감이다.

인근 지역에도 한반도 관련 지명이나 유물들도 존재하고 있다. 영파에 고려사관(高麗使館) 터가 남아 있고, 실제로 영파 천일각박물관에는 이 지역에서 발굴한 고려청자가 전시되고 있다. 우리 민족이 해외에 남긴 문화유산을 보다 빨리 체계적으로 조사 정리할 필요가 있다.

보타산(푸퉈산)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곳이다. 지장보살을 모신 안휘의 구화산, 보현보살을 모신 사천성의 아미산, 문수보살을 모신 오대산과 더불어 중국 4대 불교성지 중 하나이다. 유일하게 바다 위에 위치하고 있어 해천불국(海天佛國) 이라고도 한다.

▶일본에 의해 왜곡된 우리 고대사

보타도에는 관음을 모신 보타원이 있다. 양나라 무제(502-549)때 세워진 사찰이다. 그 앞에는 ‘신라초’라 부르는 암초가 있다. 송나라 사신 서긍의 ‘고려도경(1124년)’에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고려도경은 서긍이 고려로 가는 북송 사신단의 일원으로 수도 개봉에서 대운하를 타고 남하해 항주→영파→보타산→흑산도→개경에 도착하는 여정을 남긴 책이다.

이 책에 의하면, 보타도에는 보타원이 있는데, 그 전각에는 신령스런 관음이 모셔져 있다. 옛날 신라 상인이 산서성의 오대산에 갔다가 미륵상을 조각해 가지고 와, 이곳 보타도에서 배에 싣고 본국으로 돌아가려다가 배가 암초에 걸려 좌초되어 더 나갈 수가 없었다. 할 수없이 관음상을 암초 위에 내려놓았는데, 이 지역 승려 종악(宗岳)이 그 불상을 전각을 짓고 그 안으로 모셨다. 이 뒤로 바다를 왕래하는 사람은 반드시 가서 참배해 복을 비니 감응하지 않음이 없었다. 오월(吳越·907-978) 시대에 ‘전’씨란 사람이 그 관음상을 내륙의 개원사로 옮겼다. 지금 보타도에서 봉안되는 관음상은 그 뒤에 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기록돼 있다.

우리 역사를 보건데,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그 주인공이지 않는가들 여기고들 있다. 의상이 귀국하기 얼마 전인 646년에 현장법사가 ‘대당서역기’를 편찬했던 것으로 봐, 그에 영향을 받아 관음불교를 알게 되었으리라 보여 지며, 의상대사가 귀국 후 낙산사에 홍련암(관음도량)을 창건한 예를 봐도 그렇다. 두 곳의 스토리뿐만 아니라 지형형세도 유사하다. 바위굴 속으로 바닷물이 파도와 함께 들어왔다 나갔다 하며 신비스런 소리를 연출한다. 이는 보타도의 조음동(潮音洞)과 너무 흡사하다. 의상대사의 생존시기는 625-702년이다. 보타도 관음보살의 설화가 생긴 시기는 8-9세기다. 이 때는 신라의 무역선들이 동아시아 곳곳을 연결하고 있었을 때다. 장보고(張保皐·?-846)가 동중국해를 지배하던 때다. 이 무렵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무역을 하던 상인은 장우신(張友信)이란 재당(在唐)의 신라인이 있었다. 이 사실은 김성호의 ‘중국 진출 백제인의 해상활동 천오백년’에 잘 나타나 있다. 또 당시 중국 기록에도 ‘보타도에 있는 절과 종 등이 모두 신라 상인들이 바친 것’이란 중국 기록도 있다[흑장만록(黑莊漫錄)]. 이런 정황에서 이 관음상을 가져가려 한 것은 신라인 ‘장우신’이란 설도 있다. 보타도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안내판에는 일본 승려 ‘에가쿠’가 창건한 것으로 쓰여 있다. 남송시대에 지반(志盤)이 쓴 ‘불조통기’(佛祖統紀, 1269년) 기록에서 연유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 일본이 거대한 돈을 들여 관음사원을 만들어 놓았다. 또한 몇 년 전에는 중·일 합작으로 ‘불긍거관음’이라는 영화가 대대적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국력과 자금력을 앞 세워 일본이 설화를 선점해 간 것이다.

‘고려도경’에 따른다면, 우리로서는 신라초와 더불어 한국인 창건설이 한결 진실에 가깝다. 고려도경이 불조통기보다 시대도 145년이나 앞선다. 또한 당시에 중국으로 항해하던 많은 구법승이 장보고 선단을 이용하던 당대의 해양력을 판단해 봐도 그렇다. 그러나 논란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중국 현지의 문화관광 해설사들도 한결같이 보타도는 일본 승려 ‘혜악’으로 해서 이런 인연이 이뤄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루빨리 우리나라 학계와 불교계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왜곡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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