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24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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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석 박사의 뮤지엄 읽기] (2) 바둑박물관에 건네는 훈수 그리고 묘수
바둑박물관, 발상 전환으로 버라이어티·판타지 더해져야

  • 입력날짜 : 2018. 01.24. 18:25
지난 2016년 3월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에서 ‘알파고’와의 5번기 5국 맞대결을 펼친 이세돌 9단. /연합뉴스 DB
며칠 전 어느 모임에서 들었던 이어령 선생의 신년 덕담이 생각난다. “개는 영어로 Dog다. 이를 거꾸로 하면 God. 즉, ‘창조주’ 또는 ‘신(神)’이 된다. 사람들은 개를 액세서리처럼 취급하지만 개의 입장에서는 되레 사람을 이용하고 있다. 사람 곁에 있으니 놀면서도 끼니 걱정이 없고, 전용 미용실에 호텔까지 있으니…. 개를 위해 사람은 종일 돈을 번다. 요즘 같으면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실감난다. 개가 신이 될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고 내 본위보다는 다른 이의 입장에서 사고하는 한해가 됐으면 한다.”

윤태석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연구실장, 문화학 박사
신선한 훈수처럼 파고든 이 말은 한국기원(韓國棋院)이 구상중인 바둑박물관에도 묘수일 듯하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로 촉발된 바둑의 인기가 최근 몇몇 자치단체로 전이돼 바둑이 박물관의 관심 테마로 크게 부각되고 있다. 영암군에서 전남도와 함께 국립바둑박물관을 추진하더니 이번에는 경기도 화성시와 한국기원이 손잡은 바둑박물관이 건립 초읽기에 들어간 양상이다.

이를 위해 한국기원에서 자문회의가 있었다. 기온마저 뚝 떨어진 이달 초 그곳을 처음 방문하면서 두 가지에 자못 놀랐다. 세계 최강의 반열에 있는 우리 바둑의 산실, 한국기원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이었다는 것과, 이런 여건 속에서도 대국을 펼치고 있던 프로와 아마추어기사들의 뜨거운 열정, 그리고 이를 헌신적으로 뒷받침하고자하는 집행부의 강한 의지가 그것이었다.

자문회의의 배경은 새로이 활로를 찾던 한국기원이 바둑을 특성화하려던 화성시를 만나 ‘세계바둑스포츠컴플렉스’라는 이름으로 확장이전이 현실화됨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기원과 함께 있던 바둑방송도 옮기기로 했고, 바둑인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박물관도 때맞춰 신설하기로 했다.

자문회의에는 바둑전문가를 주류로 방송관계자 2명, 박물관계에서는 필자가 참여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위치한 세계체스명예의 전당.
박물관 건립방안을 안건으로 한 회의는 실무자들이 조사한 국내 박물관 건립과정과 건축 사례의 보고로 시작됐다. 참석자들의 질의와 실무자들의 진지한 답변에서 박물관에 대한 염원과 열기가 충분히 느껴져 우선 좋은 박물관이 들어설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논의가 계속될수록 프로기사들은 기원의 기능을, 방송관계자들은 바둑방송의 역할을 피력하며 넓고 좋은 공간과 시설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박물관에 대해서는 높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개념이나 구체적인 방향은 잡히지 않은 상태였다.

여기서, 바둑박물관에 넌지시 몇 가지 훈수를 둬보고자 한다. 먼저, 바둑박물관은 대한민국의 국격을 바둑으로 보여준다는 개념과 콘텐츠의 종합체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한다. 우리바둑의 개척자 조남철(趙南哲)선생이 1945년 설립한 한성기원(漢城棋院)을 모태로 한 한국기원 70여년의 역사는 물론, 바둑에서 파생될 수 있는 모든 유·무형의 증거물을 인간생활의 전 영역으로 나눠 과거, 현재, 미래를 담아내는 개념이여야 하기 때문이다. 바둑인들의 땀방울이 바둑알처럼 농축돼 우뚝 선, 우리 바둑은 이제 더 이상 바둑계 내부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박물관이 필요한 것이다.

바둑계에서는 바둑관련 자료가 단순하고 풍부하지도 않아 이를 어떻게 구획하고 전시할 지를 걱정하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박물관의 관점으로 확장해보면 훨씬 다양하고 입체적인 자료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를 역사·교육·경제·문화·사회·국제관계 등 인간 삶의 전 영역으로 구획해 동적이면서도 대단히 다채롭게 전시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세계 체스명예의 전당 정문 앞에 있는 대형 체스판
먼저 전시의 구획부터 보면, 바둑의 역사와 교육적 측면을 위시로 경제적, 문화(사)적 관점, 여가를 넘어선 힐링과 정신건강 등의 의학과 의료자원, 게임과 드론 등 제4차 산업혁명과 연계한 미래 산업, 알파고 등 인공지능(AI)을 접목한 뇌 과학, 한·중·일을 비롯한 국가 간 각축전으로 본 국제관계 등은 광의의 구분이다.

정책에도 포함될 것이 적지 않다. ‘신안 천일염 바둑팀 운영 및 지원에 관한 조례’, ‘광주시의 체육진흥조례’, ‘서울특별시 서초구 행정기구 설치 조례 시행규칙’ 등에서 보는바와 같이 자치단체별 체육·행정도 수용의 대상이다. 국회 조훈현의원이 발의해 계류 중인 ‘바둑문화산업진흥법’과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등에 입각한 범 정부차원의 정책도 흡수해야한다.

서울, 대전, 경기 구리시, 경남 사천시가 복지와 도박에 바둑도 녹여내 사회문제와 결부한 것도, 소소하지만 박물관 콘텐츠의 하나다. 여기에 더해 서울, 부산, 대구, 광주, 경기, 경남·북 등이 학원과 과외교습에 바둑을 연루해 펼치는 행정도 바둑 인구의 저변확산과 사교육문제 차원에서 다룰 만한 소재다.

보다 세부적으로는 기보(棋譜, 碁譜)를 병법으로 풀어낸 군사학, 바둑이 매개가 된 응용자원과 부대사업도 고려해야한다. 바둑에서 파생돼 일상에서 널리 쓰이는 용어도 흥미롭다. 호구(虎口), 꼼수, 악수, 강수, 초강수, 묘수, 무리수, 승부수, 훈수, 정석, 초읽기 등은 다양한 용례로 펼쳐놓는다면 바둑을 언어의 관점에서 보게 돼 그 입지가 넓어 질 수 있다.

다음으로 관련 자료의 측면에서 예를 들어보자.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 대국을 펼쳤던 바둑판이나 바둑돌은 당연히 기본적인 자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는 바둑을 모르는 이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끌기에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승부수를 던질 때 세차게 뛰던 이세돌의 맥박과 초조한 눈빛, 거친 호흡, 특유의 움직임, 공간을 압박했던 공기와 긴장감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

오늘날 사물인터넷(IoT)이나 디지털기술로 이를 구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잘만 재현해낸다면 정적인 바둑의 이미지 변신은 물론 바둑 콘텐츠의 첨단 과학화 가능성도 점쳐보는 계기도 될 것이다.

기술의 구현과 관리보수는 우리바둑의 위상에 맞게, 같은 지역에 있는 세계 최고의 삼성전자가 도와준다면 해결될 수 있다. 이렇듯 바둑이 리얼리티(Reality)라면 박물관은 버라이어티(Variety)와 판타지(Fantasy)여야 함을 알아야한다.

바둑처럼 딱딱한 콘텐츠일수록 부대시설에 더 신경을 써야한다.

관람객을 위한 식음료코너에는 이세돌이 어릴 적 고향 비금도에서 즐겨먹던 음식과 음료를 찾아내 그곳에서 공수한 재료로 요즘 감각에 맞게 조리해 낸다면, 이 음식만으로도 바둑을 잘 둘 것 같은 착각이 들어 큰 인기를 끌 것이다.

제부도갯벌에서 잡은 낙지의 먹물과 계향리들(화성 정남면)에서 생산한 쌀을 이용해 검고 흰 바둑빵을 개발해보면 어떨까? 맛으로도 바둑을 느낄 수 있다는 것과 함께 지역농가에도 도움이 되는 묘수가 될 수 있다. 야외나 옥상에는 넓은 바둑판을 설치에 드론으로 바둑을 둘 수 있게 해도 좋을 것 같다.

요즘 감각에도 맞아 아이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박물관이 들어설 동탄에도 애완견을 동반한 관람객이 많다.

이들을 위한 애견 카페의 이름은 ‘바둑이 하우스’ 정도로 하면 어떨까싶다.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바둑이와 철수’로 한글을 뗀 기성세대들에게는 잊어졌던 추억이 되살아 날 것이며, 바둑이는 사라지고 달마티안 무늬로 더 익숙한 손자들에게 ‘바둑이’의 의미를 설명하는 도슨트도 될 수 있다.

바둑박물관에서 만큼은 박물관의 정석 따위는 고려치 말고, 오늘날 박물관이 가장 지향하는, 어떠한 것이라도 동원해 관람객을 ‘오래 머물게’(Remanent)하고 함께 ‘참여할 수 있게’(Engagement)하는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한다.

따라서 박물관에서의 바둑은 우리의 위상을 대변하는 매개이며 전혀 다른 결론까지도 풀어낼 수 있는 열쇠가 돼야 한다. 또한 박물관이 화성시에 있다는 물리적 공간성마저 떨쳐내야 한다.

광복의 혼란기에서도 서울 남산동에 기원의 간판을 걸어 대한민국 바둑의 오늘을 있게 했던 것 같은 결국(結局)의 자세로 큰 비전을 갖고 기획돼야 한다.

바둑박물관의 목적은 분명히 대한민국 바둑의 총체를 담아 표방하고, 시들해져가는 인기를 살리는데 있다. ‘Dog가 God도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으로 바둑을 보다 넓게 보고, 바둑계를 넘어 일반인들의 시각을 사로잡을 묘안을 찾아 박물관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것이 승부수임을 명심해야한다. 바둑의 문외한이 던진 이 훈수가 묘수가 되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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