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6일(금요일)
홈 >> 기획 >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해남 우수영 강강술래길
울돌목 거센 해류는 오늘도 명량대첩 혼을 싣고 흐른다

  • 입력날짜 : 2018. 02.06. 18:19
거센 물살을 이루며 빠져나가는 조류를 이용해 10배가 넘는 군함을 물리친 명량대첩의 현장 울돌목에는 진도대교가 놓여 있다. 우수영국민관광지 전망대에서 본 울돌목과 진도대교.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났다. 정유재란이 있기 1년 전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모함을 받아 하옥됐다. 이순신을 대신해 통제사가 된 원균은 일본군에 대항했으나 대패하며 전사했고, 수군은 거의 전멸상태에 빠졌다. 사태가 긴급해지자 선조는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해 왜군을 막도록 했는데, 이때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군사 120명과 병선 12척뿐이었다.

일본 수군은 한산도를 지나 남해안 일대를 장악해 육상 진출은 물론 서해까지 접근하려고 했다. 1597년 9월16일 새벽 일본수군 133척이 울돌목으로 진입했다. 군사력은 일본이 압도적으로 우세했지만 이순신은 후퇴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며, 마침 북서류하던 해류가 점차 남동류로 바뀌어 상대적으로 조선군에게 유리해졌다. 이순신은 총통과 불화살을 쏘아대며 방향이 바뀌는 조류를 이용해 공격함으로써 일본 병선 31척을 격파했고, 일본수군은 달아나버렸다.

명량대첩비(보물 제503호)는 조선 숙종 때 충무공이 정유재란 때 해남 전라우수영 앞 바다 울돌목에서 거둔 명량대첩을 기록한 비석이다.
이 해전은 후에 추가된 1척을 포함해 13척의 배로 10배 이상의 적을 크게 이긴 싸움으로 정유재란의 대세를 바꾸고, 이후 일본수군이 서해로의 진출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계기가 됐다. 후세들은 이 전투를 명량대첩이라 불렀다. 명량(鳴梁)은 물살이 빠르고 소리가 요란해 바닷목이 우는 것 같다고 하여 불려진 ‘울돌목’의 한자말이다.

오늘은 420년 전 명량해전 현장에 서서 당시의 상황을 가슴으로 느껴볼 참이다. 울돌목 앞 우수영국민관광지에 들어서니 ‘명량대첩 해전사 기념전시관’이 기다리고 있다. 2017년 3월 개관한 명량대첩 해전사 기념전시관은 정유재란 당시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을 물리친 명량대첩의 역사와 이순신 장군의 호국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곳이다.

명량대첩 해전사 기념전시관 옆에는 ‘강강술래 전수관’도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인 강강술래는 주로 해남·완도·무안·진도 등 전남 해안일대에서 성행됐다. 강강술래는 노래, 무용과 놀이가 혼합된 부녀자들의 놀이로 주로 추석날밤에 행하여지며 정월대보름날 밤에 하기도 한다.

강강술래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전하고 있는데, 이순신장군과 관련된 이름이 대표적이다. 마을 부녀자들을 모아 울돌목 근처 옥매산 허리를 빙빙 돌도록 해 우리 병사가 엄청나게 많은 것처럼 현혹을 시켜 왜군으로 하여금 미리 겁을 먹고 달아나게 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있은 뒤로 근처의 마을 부녀자들이 서로 손을 잡고 빙빙 돌면서 춤을 추던 관행이 강강술래로 정착됐다는 것이다.

우수영은 조선시대 전라도우수영이 있었던 곳이라서 불려진 이름으로 지금까지도 지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명량대첩 해전사 기념관을 거쳐 나오면 울돌목이 내려다보이고 주변은 수변공원으로 조성돼 있다. 울돌목에는 화원반도와 진도를 잇는 진도대교가 웅장하게 서 있다. 강강술래길은 해변 성곽길을 따라 진도대교 교각 아래를 지나 울돌목 물살체험장이 있는 곳까지 간 후 수변공원으로 되돌아 나오면서 시작된다.

울돌목에 서 있으니 폭우가 내린 냇물처럼 센 물살이 괴성을 지른다. 바닷물이 큰 소리를 내며 흘러 울돌목이라 부른 이유를 알 것 같다. 거센 물살을 이루며 빠져나가는 바닷물을 바라보며 정유재란 당시 치열했던 전투를 생각한다. 이곳에서는 2014년 개봉한 영화 ‘명량’을 촬영하기도 했다.

울독목에는 해남과 진도 땅에 이순신장군의 동상 두 기가 서 있다. 해남 우수영에 위치한 ‘고뇌하는 이순신상’은 높이 2m, 폭 65㎝의 실제 사람 크기와 비슷하다. 평상복에 칼 대신 지도를 들고 13척의 작은 병력으로 왜군 133척을 무찌르기 위해 외롭게 고민하는 모습을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표현했다.

이순신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 전경.
건너편 진도 녹진리에 있는 ‘지휘하는 이순신상’은 8각 기단부 15m, 동상부 15m, 총 높이 30m로 충무공 동상 중 가장 크다. 동상은 ‘명량해전’의 승전을 기리기 위해 왼손에 칼을 잡고 오른손으로 지휘하는 모습인데, 울돌목 바닷물의 거세고 빠른 유속과 해전의 긴박감을 이끄는 장군의 비장함을 느낄 수 있다.

‘우수영 강강술래길’은 수변공원에서 해안데크를 따라 가다가 전망대로 오른다. 전망대에 오르니 울돌목과 주변풍경이 아름답다. 진도는 물론 장산도, 안좌도 같은 신안의 섬들이 서쪽 바다 멀리에서 거대한 풍경화를 이룬다. 정유재란을 생각하면 이곳에서 보는 풍경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세상이 평화롭지 못하면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망대를 내려와 오솔길로 들어선다. 길은 ‘청룡산 쉼터정자’ 방향으로 낮고 포근한 야산을 따라 이어진다. 청룡산을 내려서니 밭들이 조각보처럼 맞닿아 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밭에는 양파, 마늘, 월동배추 같은 채소들이 겨울을 나고 있고, 지난 가을 수확 후 작물 없이 휴식을 취하는 밭들도 있어 색상이 다양하다. 밭 사이로는 구불구불 농로들이 물길처럼 흘러간다.

망해루 쪽에서 본 우수영마을과 우수영항이 조용하고 평화롭다.
해안 도로변으로 내려오니 우수영항이 눈앞에 와 있다. 우수영항 앞에는 양도라 불리는 무인도가 우수영을 지키는 수문장 마냥 자리를 잡고 있다. 양도는 울돌목의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하면서 외부로부터 시선을 가려줘 우수영이 천혜의 요새가 되도록 했다. 우수영항 뒤로 우수영 마을이 바다를 바라보며 둥지를 틀었다.

우수영은 조선시대 전라도우수영이 있었던 곳이라서 불리어진 이름이다. 우수영 주민들에게는 지금도 명량대첩 고장의 후예라는 자긍심이 대단하다. 우수영은 2015년부터 3년 동안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는 ‘마을미술프로젝트’로 문화마을을 조성했다. 인구가 줄어들면서 생긴 빈집이 미술관이 되고, 골목에는 벽화가 장식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마을로 탈바꿈됐다. 명량해전과 충무공 이순신의 늠름한 모습을 담은 그림에서부터 지역주민들의 생활양식이 듬뿍 스며있는 벽화에 이르기까지 마을 전체가 거대한 미술관이 됐다. 우수영마을에는 ‘무소유’ 등 ‘맑고 향기로운’ 글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법정스님의 생가도 있다.

방죽샘을 지나 망해루로 오르는 밭길을 걷다보니 우수영마을과 우수영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우수영을 감싸고 있는 낮은 망해산 정상에 망해루(望海樓)라 불리는 누각이 서 있다. 망해루에 오르니 사방으로 전망이 트여 과거 지휘소로 쓰였음을 금방 알 수 있겠다. 우수영에는 과거 해안을 따라 성(城)을 쌓았는데, 돌과 흙을 섞은 혼합식 성이었다. 고지도에 따르면 성곽에는 동서남북 4개 성문과 성안에 동헌과 객사가 있었다. 망해산 주변에는 토성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충무사와 명량대첩비로 향한다. 명량대첩비(보물 제503호)는 조선 숙종 때 충무공이 1597년 9월16일 해남 전라우수영 앞 바다 울돌목에서 거둔 명량대첩을 기록한 비석이다.

명량대첩비 앞에 서 있으니 이순신장군의 기개와 병사들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여행쪽지

▶우수영 강강술래길은 정유재란 당시 울돌목 조류를 이용해 10배가 넘는 왜병을 물리친 명량대첩의 혼이 스며있는 길이다.
▶코스 : 명량대첩 해전사 기념전시관→울돌목 물살체험장→울돌목 해안데크→전망대→청룡산 정자쉼터→옛 충무사→우수영항→방죽샘→망해루→명량대첩비→동헌터→우수영항(7.6㎞, 2시간 30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명량대첩 해전사 기념전시관(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102)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많이본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