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1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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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게미 맛집 찾아 별미 여행 떠나요] (1) 광주 광산구 명화식당
빨간 국물이라 매울까 염려마라
혀끝에 감도는 맛은 담백하리라
3代의 손맛을 잇는 국물이 깊게 미(味)

  • 입력날짜 : 2018. 02.28. 18:51
차별화된 육수로 끓여낸 애호박 옛날국밥은 국물이 빨개서 얼큰할 것 같지만 의외로 담백하고 시원하다. 그래선지 아이부터 어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아 15년 넘게 한결같은 사랑을 받고 있다.
맛 여행을 즐기는 인구가 늘고 있고 여행에서 먹거리가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면서 외식산업은 우리 경제의 큰 축을 이루고 있다. 이에 광주시는 광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깊고 독특한 맛을 발굴해내기 위해 학계, 외식업계 등 여러 전문가들의 심사를 거쳐 지난해 12월 명화식당, 성내식당, 김가원, 매월흑염소가든, 돌담간장게장 등을 5대 ‘광주게미맛집’으로 엄선했다. ‘게미’는 씹을수록 고소한 맛, 또는 그 음식 속에 녹아있는 독특한 맛이란 뜻의 전라도 방언이다. 세련된 인테리어나 화려한 시설을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전라도에서만 사용되는 ‘게미’라는 방언처럼 빛고을의 깊고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는 맛집을 소개한다. 광주시가 지정한 ‘광주게미맛집’ 다섯 곳 안에 담긴 이야기를 황인숙 복지건강국장으로부터 듣는다. /편집자 주

# 허름해도 입소문난 식당

한 눈에 봐도 허름한 건물. 키 낮은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총 13개 테이블이 있는 홀과 2개 방이 전부라서 작고 볼품없어 보이는 식당이다.

메뉴판도 없이 주문은 오직 하나. 쟁반에 놓인 큼직한 스텐 그릇 안에 곱빼기처럼 양이 봉긋 솟아 빠알간 국물이 넘친 채 서빙하는 손길이 손님상에 음식을 놓는다. 밥 말아진 국물에 파릇한 애호박과 돼지고기가 먹기 좋게 얹어 있는데 이 메뉴에 반해 수많은 손님들은 문턱이 닮아질 정도로 이곳을 찾고 또 찾는다. 하루에 평균 300그릇, 운수 좋은 날은 500그릇 이상 팔려 16년간 단일 메뉴로 대박치는 이것은 ‘애호박 옛날국밥’. 이곳은 광주시내에서 차로 달려 30분 정도 걸리는 광산구 명화동에 자리한 ‘명화식당’이다.

# 애호박 옛날국밥의 원조는 ‘술국’

황인숙 (광주시 복지건강국장)
이 식당 터의 주인장의 계보를 따지면 현재 37세 서영호 사장이 하기 전에 어머니 김용자씨가 했고 그 위에 고모 서춘자씨가 했다. 지금 인기 많은 ‘애호박 옛날국밥’의 원조는 바로 서영호 사장의 어머니와 고모가 파셨던 ‘술국’에서 비롯됐다. 1969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을 켜고 소달구지가 다녔던 시절. 시댁 동네인 명화동에 살았던 서춘자씨는 생계수단으로 지금 식당 자리에서 술장사를 했다. 말이 술장사이지 남편이 돼지를 키워 식육점도 하고, 화물알선소도 하고, 동네 사람들이 주문하면 이것저것 팔아서 마치 만물상과 같았다. 또한 그녀는 호탕한 성격에 손님들이 식재료들을 가져와 요리해 달라면 음식 솜씨가 좋아 뭐든지 ‘뚝딱’ 해드려 좋은 인심을 샀다. 1980년대는 전화기가 처음 들어와 모든 소식통은 그녀로 통~했으니 이곳은 명화동의 ‘문화발전소’ 격이었다. 이렇게 서춘자씨는 늘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잔술을 팔면서 술안주로 일명 ‘술국’을 연탄불에 끓여서 줬다. ‘술국’은 당시 그녀의 남편이 사육하는 돼지를 잡고 나서 남은 내장과 선지, 그리고 김치, 야채, 생선 등을 넣어서 잡탕처럼 끓인 것이다. 이렇게 술장사를 해서 제법 돈을 벌었던 고모는 친남동생을 장가보내려고 중신까지 했는데, 지금의 서영호 사장의 어머니 김용자씨다.

# ‘술국’의 진화 ‘애호박 옛날국밥’

23살에 결혼한 김용자씨는 서울에서 밥벌이로 했던 옷가게가 풀리지 않아 낙향했다. 그녀는 시누이 서춘자씨가 하는 식당을 물려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술국’을 접했는데, 방법은 달리했다. 양파 뿌리, 무청시래기, 말린 고추 등을 넣어서 푹 우려낸 육수에 손님들의 요구에 따라 밥을 말아서 준 것이다. 이 국밥이 처음부터 인기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 남편이 200두 정도 돼지를 키웠기 때문에 손질해 주면 김용자씨는 식육점도 하면서 선도 좋은 ‘곱창 주물럭과 삼겹살’을 팔았다. 이 맛에 홀딱 반한 손님들이 밀물처럼 몰려들어 곱창 주물럭과 삼겹살로 유명한 맛집이 됐다. 이때 국밥은 사이드 메뉴에 불과했다. 곱창과 삼겹살로 호황을 누리자, 2004년 둘째 아들인 서영호씨가 부모를 돕기 위해 가업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2006년 일이 터졌다. 어머니 김용자 씨가 식당에서 일하시다 넘어져서 그만 허리를 다친 것이다. 어머니가 석달 간 병원 신세를 져 손이 모자랐기에 돈이 됐던 곱창과 삼겹살은 접고 애호박 국밥 하나만 팔게 됐다.

# 애호박 옛날국밥의 경쟁력은 차별화된 육수

20년간 돼지를 사육한 아버지와 국밥 만드신 어머니를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랐던 서영호씨. 요리를 좋아한 그는 어깨 너머로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애호박 국밥’을 고안하였다. 먼저 맛의 기본인 육수는 어머니가 했던 방식에서 응용하였다. 어머니는 모든 재료들을 한꺼번에 넣고 육수를 냈다면 아들은 육수를 3가지로 나눴다. 야채들을 끓인 육수, 말린 해조류로 끓인 육수, 고기와 뼈로 우려낸 육수가 바로 그것이다. 이 3가지 육수에 들어가는 재료들은 모두 20여 가지. 따로 준비하는 육수마다 맛과 향이 제대로 나는지 가늠하는 척도는 서영호 사장의 내공이 쌓인 예리한 혀끝이 감별한다. 맛의 변질을 막기 위해 각각 육수는 한 번만 우려내고 최상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 살얼음이 낄 정도로 저온 저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따로 준비한 3가지 육수의 적정비율을 맞추는 것도 그가 시행착오를 거쳐 터득한 노하우다. 손님이 주문하면 즉시 3가지 육수를 황금비율에 따라 섞고 고춧가루를 푼 후, 돼지고기를 썰어 넣고 싱싱한 애호박과 새송이버섯을 넣는다. 돼지고기와 애호박을 고르는 눈썰미도 매우 까다롭다.

광산구 명화동에 자리한 ‘명화식당’. 단일 메뉴인 애호박 옛날국밥의 맛에 매료된 수많은 손님들이 문턱이 닳아질 정도로 이곳을 찾고 또 찾는다.
부모의 영향으로 늘 돼지고기를 먹고 손질했던 서영호씨는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 맡아보면 귀신같이 돼지고기가 좋은지 나쁜지 구분할 수 있다. 오래된 돼지고기는 가차 없이 도축장에 다시 반품하고 이틀 동안 냉장 숙성된 신선한 돼지고기만 그는 받는다. 애호박은 광주 각화동의 농산물 공판장에서 공수한 최고 좋은 ‘특급’이다. 고춧가루는 때깔 좋은 국산 태양초 고추로 만든 것이다. 고모와 어머니가 했던 옛 맛 그대로는 아니지만 품질 좋은 재료들과 차별화된 육수가 이 집만의 경쟁력이다.

# 남녀노소 즐기는 시원담백한 국물

변함없이 옛날식 스텐 그릇에 담아주는 애호박 옛날국밥. 강렬한 붉은 빛의 국물이 눈을 유혹하고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찌르고 파릇한 애호박과 돼지고기가 입을 자극한다. 숟가락으로 말아진 밥을 뜨면 통 크게 쓴 새송이버섯이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국물이 빨리 스며들지 않게 식은 밥을 넣어주는데, 돼지고기와 애호박을 곁들어 한 입 넣으면 무척 부드러운 돼지고기와 식감 좋은 애호박, 국물 배인 밥이 어우러져 입에 착착 감긴다. 특히 국물 맛이 오묘하다. 국물이 빨개서 얼큰할 것 같지만 의외로 담백하고 시원하다. 그래선지 이 집의 애호박 옛날국밥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 좋아하고 15년 넘게 한결같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 남도식 국물에서 풍기는 게미

기름진 남도 땅과 청정 바다에서 나는 좋은 재료들은 ‘국밥’을 깊이 있는 맛으로 승화시켰다.

특히 온 가족이 대를 이어가는 명화식당은 인정이 철철 넘치게 국밥 양이 푸짐하다. 음식물 쓰레기 줄이라고 아우성이지만 배고픈 시절을 겪어봤기에 ‘배불리 한 끼 먹고 가면 좋겠다’ 는 어머니의 푸근한 정이 담겨진 애호박 옛날 국밥. 이곳에 온 손님들마다 애호박 국밥 한 그릇을 배 두둑이 먹고 넉넉한 어머니의 사랑을 채운 듯 8천원의 행복을 안고 발걸음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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