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2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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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역사 바로세워 국민통합 계기로 삼자”

  • 입력날짜 : 2018. 04.25. 19:53
‘5·18진상규명, 완성품 조사에 이르려면…’을 주제로 한 광주정신포럼이 25일 오후 동구 금남로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광주매일신문과 민주화운동기록관 주최로 열렸다./김애리 기자 kki@kjdaily.com
광주매일신문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25일 오후 기록관 7층 다목적실에서 5·18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 7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5·18진상규명, 완성품 조사에 이르려면…’을 주제로 한 광주정신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에는 각계 전문가와 5·18기념재단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김성 2017년 국방부5·18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포럼은 염규홍 전북교육청 인권옹호관, 정준호 광주민주화운동동지회 공동대표, 신동일 광주국제교류센터 이사, 오성수 광주매일신문 편집국장의 주제발표, 이재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저자, 최용주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의 지정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포럼의 발제문과 주요 토론 요지를 요약한다. /편집자註

●주제발표
▲염규홍 전북교육청 인권옹호관(2007년 국방부 과거사위 조사1과장)
▲정준호 광주민주화운동동지회 공동대표(법무법인 평우 대표변호사)
▲신동일 광주국제교류센터 이사(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원)
▲오성수 광주매일신문 편집국장
●사회 : 김성 2017년 국방부5·18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
●토론
▲이재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저자 ▲최용주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5·18 진상규명 위원 선정에 정부 의지 보여야”

●주제발표 1 : 염규홍 전북교육청 인권옹호관

5·18진상규명위원회의 위원 구성에서부터 각별한 선정방안이 검토돼야 한다. 위원은 전원 민간영역에서 추천하고 공무원이나 국회의원·지방의회의원 등이 위원을 겸직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이는 무엇보다 독립성 보장이 강조돼야 한다는 뜻이다.

더욱이 정부 부처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진상조사에 나서야 하는데 국방부 차관 등이 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여전히 남아있어 미흡하다는 평가다.

여기에다 모든 위원이 국회의장과 여·야당에서 추천토록 해 5·18이 정쟁의 수단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05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구성 당시, 위원들은 당시 국방부 차관이 5·18때 광주에 출동한 군대의 연대장 출신이었다는 이유로 ‘차관이 사퇴하지 않는 한 진상규명위원회에 참여할 수 없다’고 원칙을 밝혀, 국방부 차관을 교체한 후에 위원회를 출범한 과거가 있다.

현 국방부 차관도 과거에 광주의 진실을 왜곡하는데 앞장선 기구에 근무한 경력이 있음이 드러났기 때문에 5·18에 대한 진상규명 의지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국방부 차관을 사퇴시켜야 한다.

만약 또다시 사퇴하지 않은 상태에서 위원들이 임명될 경우에는 위원들은 진상조사에 나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이번 진상조사위원회는 청문회 실시와 특별검사에게 수사 의뢰할 수 있는 권한, 가해자에 대한 사면 등의 권한이 있다. 이러한 권한은 기존 과거사 청산 관련법보다 진전된 것이므로 최대한 활용해야 하며, 적극 행사해야 한다.

아울러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17조에는 위원회의 정원을 50명 이내로 한다고 명시돼있다. 기존의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정원 규정을 두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 규정은 5·18진상조사위의 규모를 최소화하려는 것으로 여·야의 타협의 의미로 읽힌다. 정부 부처에서 꼭 필요한 인원(국가기록원 등) 이외에는 조사관 중심으로 직원을 선발해야 할 것이다.

특히 광주시의 경우 특별법 제57조에 의거해 5·18 관련 문서를 전부 공개하고, 광주시에 5·18진상조사위 활동을 지원해 인력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 또 5·18진상조사위 광주사무소를 시청 내에 두고 지원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공동대책위, 진상조사에 필요한 자료 재정리”

●주제발표 2 : 정준호 법무법인 평우 대표변호사

1994년 4월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를 앞세워 공소권 없음을 결정했다. 광주에서는 곧바로 ‘5·18광주학살책임자 처벌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구성했고 강신석 목사를 상임위원장, 정수만 당시 5·18유족회장을 집행위원장으로 당시 민주화운동 단체들을 총망라했다.

공대위는 처음 고소장을 작성한 5·18민중항쟁연합 간사를 중심으로 실무팀을 구성하고 곧바로 서울명동성당과 옛 전남도청 앞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같은해 12월 당시 ‘노태우비자금 폭로 사건’을 계기로 김영삼 전 대통령은 5·18특별법 제정을 여당에 지시해 결국 특별법을 제정했다. 검찰은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해 재수사를 시작했고, 공대위는 서울의 민변, 민교협 등이 참여한 국민대책위원회와 협의해 검찰의 재수사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검찰의 특별수사본부가 구성되자 공대위에서는 수사대상과 참고인 선정 및 현장 확인 등에 필요한 도움을 줬다. 그러나 검찰은 공대위가 요구한 모든 내용을 수사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공대위 실무팀이 생산한 많은 문건들은 지금 5·18기록관에 대부분 보관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한 확인 작업을 통해 진상조사에 필요한 정보를 다시 정리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공대위의 역할은 1차적으로 5·18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이 제대로 제정될 수 있도록 대응하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전문인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여기서 ‘전문인력’은 5·18민주화운동의 사실관계와 5·18민주화운동의 명예회복·진실규명을 위한 지난 투쟁의 과정도 제대로 인지해야 한다. 또 공대위는 지난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됐던 검찰의 수사기록·공소장을 철저하게 분석하는 것과 서울지방법원과 항소심, 대법원의 모든 판결문에 대한 분석, 5·18민주화운동연합이 작성한 고소장의 고소사실과 공대위가 검찰, 법원, 헌법재판소에 보낸 각종 의견서 등을 분석해 조사대상과 내용을 선정해 진상규명위원회에 제공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적은 인력으로 여러 항목의 조사가 이뤄져야하는 만큼 위원회 구성이 완료되기까지 관련 조사 항목을 확정할 수 있는 ‘사전 신고센터’를 설치해 운영해야 한다.


“당시 문서관리 수준 감안 저인망식 검토 필요”

●주제발표 3 : 신동일 광주국제교류센터 이사

과거 한국군의 기록물 관리체계는 군은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인식이 부족한데다 권력자에서 실무진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임의로 파기하는 경우도 발생하면서 기록물 관리 수준은 양호하지 못했다.

한국 육군은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부산에서 육군종합문서보관소를 창설, 최초로 영구문서를 이관받아 보존하기 시작했다. 1968년 육군 중앙문서관리단으로 이름을 바꾼 후 2004년 육군 기록정보관리단으로 명칭이 변경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5·18 관련 문서를 생산·관리·보존했던 시기는 중앙문서관리단 시절이다.

육군은 부산 문서보관소에 중요문서 원본을 보관하다가 영구보존을 위해 1968년부터 마이크로필름을 도입, 문서를 촬영해 마이크로필름 형태로 보존하기 시작했다. 이후 1990년대 말에 전자문서관리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현재는 종이문서, 마이크로필름과 전산자료 형태로 주요문서를 보존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80년에 발생한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이 생산·활용·보존되던 시기에는 대부분 수작업으로 문서가 관리됐으며, 잘해야 마이크로필름으로 문서를 촬영해 보존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문서관리의 주체가 곧 진상규명의 대상인 상황에서 중요 기록물을 무단파기·훼손·조작하기가 훨씬 용이했을 것으로 추정되면서 기록물을 통해 진상규명을 위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었다.

지난 1988년과 1989년 광주특위에서 몇 차례에 걸쳐 ‘5·17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록’, ‘5·18 직후 훈·포상자의 공적조서’ 등 문서 제출을 국방부에 요청했으나 대부분 ‘없다’거나 ‘폐기했다’는 회신을 받은 것이 대표적이다.

반면, 1980년대 문서관리 수준을 감안했을 때 아무리 일사불란하게 기록물을 파기했다고 해도 완벽하게 뒤처리를 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남아 있다.

특히 일선 부대 문서이관의 경우 문서관리 전문가가 아닌, 일상 업무 처리하기에도 바쁜 행정병이나 초급간부가 실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오류투성이인 경우가 많아 충분한 시간을 갖고 당시 이관문서를 저인망식으로 훑어본다면 뜻밖의 성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진실 규명’ 이뤄지길”

●주제발표 4 : 오성수 광주매일신문 편집국장

그동안 38년이란 긴 시간이 흐르면서 5·18 진상규명이란 작업은 4차례나 진행됐음에도 진상규명다운 진상규명이 없었다.

따라서 집단발포 명령자, 지휘권 이원화, 행방불명자, 암매장, 사망자 수, 양민학살, 간첩조작사건, 화염방사기 사용, 유언비어 생산자, 보안사령부의 역할, 신군부 5·18 기획설 등 20여가지에 이르는 ‘핵심 진실’은 아무 것도 밝혀내지 못했다.

이로 인해 ‘전두환 회고록’이나 지만원 등 일부 극우세력들이 지금도 끊임없이 5·18을 공격하고, 왜곡하고, 조작하고, 폄훼하고 있다. ‘어설픈 진상조사’가 오히려 일부 극우세력에 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38년 만에 맞은 이번 5·18 진상규명은 하늘이 준 마지막 기회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광주는 모두가 하나돼 5·18을 이 땅의 역사 위에 당당하게, 그리고 바르게 세울 수 있도록 80년 5월 그날처럼 5·18 광주정신을 구김 없이 실천해야 할 것이라는 주문을 먼저 드린다. 중앙과 광주시는 각각 진상규명을 위한 명확한 준비와 조사를 위한 협조를 견고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한 광주현지대책으로 5·18 진상규명 광주 현지 대책위원회(이하 광주대책위) 구성을 서둘러야 한다. 진상조사위원회와는 별도로 조직으로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조사위의 활동을 돕고 때로는 지역의 의견을 전달하고 진행과정도 꼼꼼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광주대책위는 진상조사 전, 진상조사 중, 진상조사 후로 구분하고 체크해 나가야 할 것이며, 반드시 ‘광주 현지 합의안’을 이끌어내 국방부 등 관계 기관·단체 등과 액티브하게 교섭해야 한다.

구성 범위는 5·18단체, 학계, 시민사회단체(여성단체 포함), 광주시 관계자 등 20명 안팎이 적당할 것으로 본다.

또한 시행령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진상규명의 성패가 좌우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광주대책위에서는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대안 제시 등을 통해 합리적인 시행령을 도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울러 진상조사의 목적은 ‘책임자 처벌’이 아니라 ‘진실 규명’임을 거듭 강조하며 이를 통해 5·18 역사를 바로 세우고 국민통합에 기여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조작된 군 문서 실체 낱낱이 밝혀야”

●이재의 ‘죽음을 넘어…’ 저자

“기획적 왜곡 조작시도에 관한 조사는 특별법이 추구하는 국민통합 목적달성에 가장 핵심적인 항목”이라는 발제자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5·18왜곡이 1997년 대법원 판결 이전과 이후로 구분해서 시기별로 왜곡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고 조사방안도 달라야 한다.

특히 금번 진상규명특별법이 과거정권에서 자행된 5·18 왜곡·폄훼에 대한 공분을 추진동력으로 삼고 있으며, 적폐청산 차원이라는 성격이 훨씬 강하다는 점을 고려해 1997년 이후 공권력의 비호 아래 자행된 왜곡실상의 진상규명에 큰 비중을 둬야 한다.

금번 진상규명은 조작된 군 문서의 실체를 철저히 파헤치고, 낱낱이 국민들에게 공개함으로써 왜 군 문서에서 ‘스모킹 건(smoking gun)’을 찾아낼 수 없었는지를 납득시키는 작업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특별조사위원회가 국민들에게 군 문서의 왜곡실상을 납득시키는데 실패한다면 문서에 의한 진상규명을 기대했던 국민들은 크게 실망할 것이다.

사실상 ‘스모킹 건’을 찾는 일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므로, 사건의 전후 맥락을 설득력 있게 구성하는 방증자료를 광범위하게 찾아내 실제 상황을 재현해내고, 이를 다양한 증언들로 뒷받침하는 방향에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


“원칙에 충실해 가해자 처벌 근거 마련”

●최용주 5·18재단 비상임연구원
5·18진상규명 작업이 미진한 이유는 민주주의로 이행한 국가에서 잘못된 과거를 청산해 민주주의를 공고화하려는 ‘이행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 실천 원칙이 제대로 지키지지 않아서다.

역사적으로 ‘이행기 정의’는 진상규명, 가해자 처벌, 피해자 명예회복, 사회통합의 수순을 밟아야 하는데, 5·18의 경우는 전복된 형태로 나타났고, 진상규명도 단편적 쟁점과 형사법적 기준에 의해 임시방편으로 진행됐다.

진상규명 작업이 파행적으로 된 배경에는 이 나라의 형식 민주주의가 정치 엘리트들간의 ‘타협에 의한 이행’으로 이뤄지면서 과거청산 작업에 대한 정치적 의지가 부족했고 시민사회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마지막이 될 진상규명 작업은 ‘이행기 정의’ 수행의 4가지 원칙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조직적·인적·물적·사회적 자원이 갖춰야 한다.

이번 진상규명 작업에서는 국가가 광주학살의 실상을 총체적으로 인정하는 일을 받아내고, 새로운 법적 근거를 마련해 가해자들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또 진상조사 특위는 그동안 광주항쟁을 꾸준히 연구하고 현장을 목격해 전문성이 뛰어난 제1세대 연구자·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야 한다.


“시행령은 특별법 한계 보완 제정돼야”

●조진태 5·18재단 상임이사

특별법에 근거해서 시작할 진상규명은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특별법에 따른 진상조사위원회는 중대한 임무를 지닌다.

그러나 특별법은 지자체의 역할과 임무가 명확하지 않거나 심층 조사를 할 인력 부족 등 몇 가지 한계를 뒤따른 만큼, 앞으로 제정될 시행령은 이를 구체적으로 보완해야 한다.

먼저 국민적 관심과 참여의 과정이 필요하며, 조사위원은 민간전문가가 대폭 참여하도록 구성돼야 한다.

또 국방부, 행정기관 관계자는 실무적 전문성을 전제로 파견돼야 하고 광주시에 구체적 권한을 지닌 실무위원회가 구성되도록 해야 한다.

또 광범위하고 원천적인 자료 확보를 기초로 사실관계의 명징한 입증을 위한 조사가 진행돼야 한다. 입증이 불가능한 미제에 대해서는 명확한 과제로 적시해 보고서에 명확하게 근거를 남겨 규명 불능의 경우에도 공론화해야 한다.

5·18유관기관의 전문적인 노력과 함께 피해 당사자의 증언진술 등을 토대로 독자적인 미해결과제를 재설정하고 사실규명을 위한 기록물 확보와 조사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정리=오승지 기자 ohssjj@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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