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28일(월요일)
홈 >> 기획 > 기획일반

[윤태석 박사의 뮤지엄 읽기] (9) 북한 박물관 유물
“문화유산과 박물관에 전가된 ‘고난의 행군’”

  • 입력날짜 : 2018. 05.16. 18:35
조선중앙력사박물관 전시실 전경.
인사동이나 장한평 고미술상 상인들을 만날라치면 인사말보다 깊은 한숨이 앞서 들려오곤 한다. “40년 넘게 이일을 했지만 지금처럼 힘든 적은 없었다”, “차라리 IMF때가 좋았다”, “고려청자가 새파란 서양화가의 그림만도 못하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 등 대동소이한 푸념들이다. 이 같은 고미술시장의 불황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 보인다. 먼저 주거공간의 서구화는 실생활에서 고미술품의 수요를 크게 줄게 했다. 은행 지점과 같은 곳에서도 인테리어가 화려해지면서 서양풍 미술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음은 이를 반증한다. ‘문화재보호법’의 지나친 규제도 한몫하고 있다. 수량까지 많은 하치라도 국내에서만 거래될 수밖에 없으니 가격은 바닥이고 이런 문화재는 함부로 다뤄지기 십상이어서 보호에 역행하는 부작용까지 우려된다.

경매의 활성화도 요인 중 하나다. 최근 온·오프라인 경매는 대단히 활성화돼 있다. 시스템 상 같은 상품대에 놓여 타 물건들과의 무한경쟁을 통해 선택되기를 구걸하게 됐다. 유일품인데도 그룹화 돼 공정시세가 매겨졌으며, 경매의 특성상 미술품 자체의 역사, 미학, 희소성보다는 가격이 평가의 기준이 된 듯해 씁쓸하다. 장기경기 침체는 말이 필요 없는 이유다.

윤태석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연구실장·문화학 박사
우선 거래가 뚝 끊겨 돈이 돌지 않으니 제값을 받지 못할게 빤해 내놓지 않게 되고, 좋은 물건이 나오지 않으니 큰 손들이 사라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놓이게 됐다. 투자가치의 폭이 줄어든 데다 전망까지 불확실해 우리 것은 더욱 외면 받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요인은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완전히 깨졌다는 것이다. 내부에서는 농어촌인구 감소, 핵가족화, 아파트 선호, 주택가격 상승에 따른 빈번한 이주 등으로 민속품 등 생활 자료가 지속적으로 시장에 유입되고 있다.

위축된 고미술시장의 대안을 찾기 위한 컬렉션의 다변화 현상도 뚜렷해졌다. 대외적으로는 중국이 개방되면서 진위(眞僞)를 불문한 엄청난 양의 자료가 들어오고 있으며, 북한의 ‘고난의 행군’기인 199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북한 문화재도 중국을 거쳐 물밀듯이 유입돼 왔다. 경기상황도 좋은데다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보다 글로벌하고, 자유로운 거래와 투자가 용이한 중국과 일본, 현대미술품에 관심이 커진 것이다.

인터넷의 일상화와 여행 자율화도 이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보여준 단색화의 고공행진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이들과의 경쟁에 밀려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것도 이유 중의 하나로 점쳐진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재에서 값은 곧 그 물건이며 아우라(Aura)임은 엄연한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 문화재의 값은 이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며, 보호와 보존, 관람태도와 질서와도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북한미술품은 지금도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북한과 중국 접경지대인 선양(沈陽), 단둥(丹東) 등은 공공연한 북한 문화재의 불법 집하장이며 국제 밀거래시장으로 자리 잡아 왔다.

문화재 밀거래 업자들은 이곳을 거점으로 중국 공안과의 부당한 거래 하에 수많은 문화재들을 일본과 중국, 유럽 각국을 비롯해 국내로 팔아넘겨 왔다.

고려 태조 왕건 청동상.
통영반(盤), 나주반과 함께 조선 3대 반으로 유명한 해주반의 경우 IMF이전만 하더라도 인사동에서 300만-500만원에 거래되는 것이 최근에는 20만-30만원에도 팔리지 않을 만큼 흔해 졌다. 물가상승률까지 고려할 때 북한에서 얼마나 많은 양이 들어왔는지를 짐작케 한다. 보다 심각한 것은 더 많은 양을 빼내기 위해 아무렇게나 분해해 컨테이너에 장작 쑤셔 넣듯 실려와 맞지도 않는 상판과 마구리를 억지로 조립한 것도 왕왕 볼 수 있다.

원형은 사라지고 어느 여염집 부뚜막과 안방을 오가며 밥상머리 애환이 켜켜이 쌓인 그을음과 칠도 나부처럼 벗겨진 채 내던져진 것이다. 해주반과 동향(同鄕)으로 기교는 없지만 희화적인 풍자와 해학적인 코발트 문양이 신선한 19세기 해주백자항아리 역시 집단으로 유배된 처지는 매일반이다. 이외에도 자수, 서화, 공예품, 도자기, 목물(木物), 민속품, 와당, 불교유물 등 북한에서 빠져나온 문화재의 범위는 전방위적이다.

그나마 이들 문화재가 남한으로 흘러들어왔다면 다행일 수 있다. 그러나 국보나 보물급 문화재는 우리보다 형편이 나은 일본과 중국, 유럽 등지로 흘러들어갔다는 소문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신 문화재 불법유출이며 약탈인 것이다.

또한 문화재의 적지 않은 수가 북한의 박물관에서 빠져나왔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이런 문화재 유출은 1994년 김일성이 죽고 이어진 국제적 고립과 자연재해 등으로 극도의 어려움을 겪은 시기에 김정일이 만들어낸 ‘고난의 행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김정일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긴장 분위기를 조성하고 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해 사회적 이탈을 막고자 했다. 그럼에도 이 시기 북한에서는 최소 수십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다.

생명 줄인 끼니와 직면한 이들에게 억압은 더 이상 통제의 수단이 될 수 없다.

도덕과 윤리는 무너지고 법과 질서의 프레임은 느슨해진다. 이시기 북한주민에게 필요한 것은 쌀이었고, 돈이 되는 것은 죄다 팔아 쌀로 바꿔야만 연명할 수 있었다. 대량의 문화재도 이때 빠져나오게 된 것이다.

북한의 박물관은 300여개소로 추산된다. 그나마도 우리의 국립중앙박물관격인 조선중앙력사박물관(평양 모란봉구역)이나 향산력사박물관(묘향산), 조선미술박물관(조선중앙력사박물관 건너편), 도립사리원박물관(사리원시) 등 소수의 중요박물관을 제외하고는 3대 세습과 노동당 집권을 정당화하기위한 혁명사적관으로 바뀌었거나 신설됐다. 기존 박물관의 경우 진열장에 있던 유물이 수장고에 보관·관리되면서 개방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고, 이것들이 유출의 타깃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유물보호법’(북한 문화재의 종합법령, 1994년 3월24일 제정)과 박물관의 보호 속에서도 빠져나오는 판국에 남아있는 유물 관리실태는 어떠할까? 심히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적인 이슈로 끝난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핵 폐기 등의 긴장완화에 앞서 문화 분야의 교류에 활로를 열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통일부와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한 관련 기관에서는 이미 이에 대한 준비가 한창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문화재와 박물관 관련 협력은 무엇보다 시급하다.

유출된 문화재 현황을 조사하고 관리실태를 점검해 물적 기술적 지원을 해줘야 한다. 박물관인력들에게는 전문역량과 기술을 전파하고 전시장과 진열장, 수장고 환경개선에도 도움을 주어야한다. 항온항습, 도난 및 화재방지 분야에는 설비 지원도 필요하다.

소장품 DB화도 돕고 국제박물관협의회(ICOM)과 국제푸른방패(Blue Shield International·자연재해, 사회적 소요, 무력충돌 등의 위험에 처한 문화유산 및 박물관 등을 보호하는 활동을 하는 비정부 국제기구) 등과 같은 국제기구에도 가입케 하는 등 할 일이 산더미다. 그것이 비록 유엔제재에 저촉된다하더라도 문화재는 인류공영의 자산임을 공감하고 적극 추진했으면 한다. 고려 건국 1천100년이 된 올해 국립부여박물관의 ‘개태사-태평성대 고려를 열다’ 특별전(5월22일-7월22일)을 시작으로 박물관에서도 이를 기념한 행사들이 다채롭게 준비되고 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이 오는 12월 열 ‘대고려전’(2018년 12월4일-2019년3월3일)은 대표적인 문화이벤트다. 속히 남북 간의 문화물꼬가 터져서 2006년 ‘북녘의 문화유산전’(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았던 ‘고려 태조상’을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싶다. 이러한 협력으로 20세기에 와서 단절된 고려의 역사를 잇고, 내년이면 100주년이 되는 3·1운동도 남북한이 만나 재조명해야 한다.

독립기념관, 유관순 열사기념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일본군위안부역사관과 같은 박물관이 나선다면 보다 실증적인 성과로 이어질 것이다. 북한지역의 문화유산과 박물관에 우리민족의 반(半)이 있음을 인지할 때다.






많이본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