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1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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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규슈올레-가라쓰코스
임진왜란 전초기지 나고야성에서 우리의 아픈 역사 생각하다

  • 입력날짜 : 2018. 05.22. 18:39
나고야성에는 아담하면서 아름다운 항구가 있는 요부코(呼子)와 카베시마(加部島)를 연결해주는 요부코대교가 눈길을 끈다.
규슈올레-가라쓰코스를 걷기 위해 후쿠오카를 거쳐 가라쓰에 도착했다. 가라쓰는 ‘가라’(唐, 중국 당나라)와 ‘쓰’(津·나루)를 합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조선과 교역한 무역항이었다. 가라쓰는 인구 12만명의 사가현 제2도시이다. 가라쓰 버스센터에서 나고야성박물관 입구로 가는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달려간다. 나고야성박물관 입구에 도착하니 관광객이 많이 눈에 띈다. 초입에는 ‘규슈올레 가라쓰코스 스타트지점’이라고 한글로 쓰인 글씨도 보인다.

숲으로 들어서니 아열대림이 원시성을 느끼게 해준다. 숲길을 벗어나면 정겨운 마을길을 만나고, 마을길을 지나면 들길을 지나기도 한다. 가라쓰코스를 걷다보면 과거 위세를 떨쳤던 영주들의 진영터를 자주 만난다. 나고야성터 주변의 수많은 진영터 중에서도 호리 히데하루 진영터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지금도 사랑방과 저택, 전공공연 무대 등의 터가 그대로 남아있다.

나고야성 정상에는 현해탄을 바라보며 타원형으로 가지를 뻗은 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서 있다.
한참을 걷다보니 울창한 숲이 열리더니 푸른 초원지대가 나타난다. 호리 히데하루 진영터다. 호리 히데하루는 이곳에 머무르면서 군사들을 훈련시켰다. 일본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소중한 유적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국을 침략하기 위해 전쟁준비를 했던 곳이라 기분이 썩 좋지 않다.

호리 히데하루 진영터를 벗어나 구시미치(串道)라고 불리는 400년 된 길을 지난다. 길은 5m 정도 깊이로 패여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듯한 착각이 일어난다. 400년 넘게 사람들이 통행했던 이 길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묘사한 그림에도 나타나있을 정도로 오래된 길이다. 소박한 옛길을 걷다보면 따뜻한 지방에서 잘 자라는 대나무들이 절제된 모습으로 길손을 맞이한다. 정취있는 옛길은 나고야성터로 이어지고, 성터가 바라보이는 곳에 다원이 정갈한 모습으로 둥지를 틀고 있다. 이곳은 다원 다이게쓰로 말차가 인기 있다. 말차는 녹차 분말을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시는 차다.

다원 앞에는 푸른 초원과 나무들이 정원처럼 잘 가꿔져 있고, 작은 방죽도 운치를 더한다. 방죽 제방을 건너 나고야성으로 향한다. 방죽 위쪽으로 나고야성곽이 이끼에 감싸인 채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나고야성으로 들어선다. 성곽 안쪽에는 수백년 된 거목들이 성의 오랜 역사를 대변해준다. 거목으로 이뤄진 구불구불한 숲길을 따라 성터 정상에 닿는다. 정상은 축구장 두 개 크기의 넓은 공터로 이뤄져 있다. 이 공터에는 과거 사방을 조망하며 군을 지휘할 수 있는 천수각이 있었다.

해변길을 걸어가는데, 제주도에서 많이 봤던 주상절리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주상절리는 화산활동이 빚어낸 최고의 예술품이다.
나고야성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를 위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쌓은 성이다. 도요토미는 조선과 가장 가까운 이곳에 성을 쌓고 전국에서 모은 영주와 군사들을 훈련시켜 우리나라를 침략했다. 그러니까 이곳은 임진왜란·정유재란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나고야성은 임진왜란 1년 전 1591년 10월 착공해 이듬해 4월, 6개월 만에 완공했다고 한다.

성의 상징인 천수각이 있던 천수대에는 러시아 발틱함대를 무찌르고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도고 헤이하찌로의 전승기념비가 우뚝 서 있을 뿐이다. 다만 수백년 된 고목들이 오래된 성이었음을 알려준다. 일본 국가지정 특별사적으로 지정된 나고야성터는 한국인에게는 치욕적인 장소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다시는 그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아야 된다는 다짐의 장소이기도 하다.

나고야성에는 현해탄을 바라보며 타원형으로 가지를 뻗은 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서 있다. 우리는 그 나무 옆에 서서 나고야성터로 다가오는 천혜의 풍경에 넋을 잃는다. 울창한 숲이 마을을 감싸 안아 포근하고, 에메랄드빛 바다는 시리도록 아름답다. 드넓은 바다에 듬성듬성 작은 섬들이 떠 있어 화룡점정이 된다. 아담하면서 아름다운 항구가 있는 요부코(呼子)와 카베시마(加部島)를 연결해주는 요부코대교도 지척에서 눈길을 유혹한다. 성곽 아래에는 잔디가 잘 가꿔진 진영터도 있다. 나고야성 주변에는 벚나무가 많아 이른 봄이면 벚꽃명소가 되기도 한다.

하도미사키곶 끝에는 ‘여인의 성지’라는 이름을 가진 하트 모양의 조각상이 있어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하다.
천수대에서 사방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화를 두고 내려가려니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마을로 내려와 마을길을 걷는다. 마을 골목길을 걷다보니 가라쓰 도자기를 생산하는 하나타가마(炎向窯)가 기다리고 있다. 예로부터 다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온 가라쓰 도자기를 굽는 하나타가마에는 갤러리까지 갖추고 있다.

농로와 숲길을 반복해서 걷다가 하도미사키 캠프장에 닿는다. 소나무 밭에 텐트를 칠 수 있는 캠프장은 주말이라 많은 사람들이 이용을 하고 있다. 캠프장에서 곧장 내려서서 해변길을 걷는다. 검은색 현무암으로 이뤄진 해변과 주변 바다의 풍경이 제주올레 중에서도 바당올레를 걷는 느낌이다.

해변길을 걸어가는데, 제주도에서 많이 봤던 주상절리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주상절리는 화산활동이 빚어낸 최고의 예술품이다. 주상절리는 에메랄드빛 바다와 어울려 더욱 아름다워졌다. 우리는 주상절리를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전망대에 서서 이 세상 최고의 예술가는 자연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국민숙사에 도착하기 직전 하도미사키 곶의 끝이 보인다. 곶 뒤에서 하도미사키를 바라보고 있는 두 개의 섬들이 고개를 내민다. 바닷가 의자에 앉아 있으니 바다는 더욱 고요해진다. 고요함 속에서 외로운 충만감이 내 몸을 감싸준다. 군청색 바다는 검은 돌과 다정한 벗이 돼 밀어를 속삭인다. 해변의 바위들은 바다를 그리워하고, 바다는 해변의 바위를 온몸으로 껴안는다. 바다는 해변 바위와 사랑에 빠졌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다. 길은 하도미사키 해수욕장으로 이어진다. 하도미사키 해변은 주로 바위나 몽돌로 이뤄져 있는데, 이곳 해수욕장은 결이 고운 모래사장이다. 활모양의 작고 아담한 해수욕장은 아름다우면서도 정겹다. 해수욕장에는 제주도의 돌하르방 두 기가 세워져있다. 규슈올레 가라쓰코스를 개통하면서 세운 것이다.

해수욕장 백사장에 서서 서쪽으로 넘어가는 태양을 바라본다. 멀리 보이는 작은 섬 너머로 해가 서서히 모습을 감춘다. 세상을 밝게 비췄던 태양은 우아한 모습으로 바다 속으로 빠져든다. 공식적인 올레길은 해수욕장에서 끝나지만 해수욕장에서 하도미사키 곶의 마지막 부문까지 걷는다.

곶의 끝에는 하도미사키곶(波戶岬)이라 쓴 작은 탑이 세워져 있다. 하도미사키 탑 옆에서는 ‘여인의 성지’라는 이름을 가진 하트 모양의 조각상이 눈길을 유혹한다. 해수욕장과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뿐만 아니라 사랑을 상징하는 조각상까지 있어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한 곳이다. 주변의 작은 섬들에서 하나 둘 불빛이 켜지기 시작한다. 규슈에서의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간다.


※여행쪽지

▶ 규슈올레 가라쓰코스는 사가현 가라쓰시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하도미사키 곶을 걷는 길로,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제주도 해안길을 걷는 것 같다.
▶ 코스 : 나고야성박물관 입구 특산물판매점→호리 히데하루 진영터→다원 가이게쓰(海月)→나고야성터→가라쓰도자기 히나타가마→하도미사키 소년자연의 집→국민숙사 하도미사키→하도미사키해수욕장
▶ 거리/소요시간 : 11.2㎞/4시간30분 소요
▶하도미사키에는 국민숙사에서 식사를 할 수 있고, 하도미사키와 가라쓰 시내 중간에 있는 조그마한 항구 요부코(呼子)에 나오면 오징어활어회를 맛볼 수 있다. 요부코에는 식당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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