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2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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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평화누리길 8코스 (반구정길)
갈매기 벗 삼던 반구정이 평화를 애타게 기다린다

  • 입력날짜 : 2018. 09.18. 18:58
화석정에서는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은 물론 멀리 개성 송악산까지도 바라볼 수 있다.
경기도 파주는 분단되기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개성과 평양, 신의주로 가는 길목이었다. 지금도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을 가기 위해서는 파주 땅을 거쳐야한다. 파주에서도 문산읍은 임진각이 자리하고 있고, 민간인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는 마지막 땅이다. 평화누리길 8코스는 분단의 아픔을 되새기며 임진각이 있는 파주시 문산읍의 들과 야산을 따라 걷는 길로 반구정에서 시작된다.
반구정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차해 두고 반구정으로 통칭되는 황희정승유적지로 들어선다. 매표소를 지나 청정문이라 쓰인 중문을 지나니 왼쪽으로 고직사, 월헌사, 방촌영당, 경모재 같은 건물들이 황희정승을 기리고 있다.

맞은편 언덕에 올라서니 8각 정자 앙지대가 임진강을 바라보고 앉아있다. 그리고 앙지대 옆에 반구정(伴鷗亭)이 자리하고 있다. 반구정은 고려말에서 조선 세종조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임금을 보필했던 청백리 황희정승이 말년에 고향에 돌아와 갈매기를 벗 삼아 지낸 곳으로 임진강 하류 경치 좋은 곳에 세워진 정자다. 임진강이 벗이 되던 정자 앞으로는 철조망이 둘러쳐져 평화롭고 아름답던 옛 시절을 무색케 한다.

반구정 앞 주차장으로 돌아와 77번 국도 지하도에 세워진 ‘평화누리길 8코스’ 대문을 통과한다. 지하도를 지나자마자 좌회전하여 임진각으로 통하는 자유로 옆 농로를 따라 걷는다. 농로를 따라 걷다가 철길을 건넌다. 이 철길은 파주를 관통하는 철로이자, 서울에서 개성과 평양을 거쳐 신의주까지 이어졌던 경의선 철로다. 총연장 499㎞로, 1904년 용산-개성 구간 공사를 시작해 1906년 전구간이 개통됐다.
민간인이 신분증 확인없이 자유로이 갈 수 있는 마지막 역인 임진강역. 다음 역은 하루 한 차례 안보관광으로만 갈 수 있는 도라산역이다.

남북분단 이후 경의선 구간은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어져 남한은 서울-문산, 북한은 개성-신의주 구간만 운행했다.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친 남북 정상회담 이후 경의선 연결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남한에서는 2003년 12월31일 경의선 복원 공사로 도라산역까지 남쪽 철로가 이어지고, 이후 도라산역에서 북한쪽까지 복원을 완료해 2007년 5월17일 시험운행까지 했다. 2007년 12월11일부터는 남측의 문산역과 북한의 판문역을 잇는 개성공단 전용 화물열차가 정기운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화물열차마저도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에 이르면서 운행이 정지됐다. 남북정상은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동해선과 함께 경의선을 현대화해 남북철도를 연결하기로 합의했다. UN의 북한경제제재가 풀리고 남북관계가 크게 진전된다면 경의선은 남북한 통일의 가교역할뿐 아니라 남북한 경제교류의 통로역할을 할 것이다.

농로를 따라 마정리와 장산리로 가는 길은 한적하고 평화롭다. 임진강변의 철책을 바라볼 때면 들판의 평화로운 기운은 반감된다. 임진강변의 철조망이 분단의 아픔만큼 녹슬어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철책 중간 중간에 설치된 초소들은 분단현실을 감시하면서도 남북통일을 애타게 기다린다.
파주 황희정승유적지에는 황희정승을 기리는 고직사, 월헌사, 방촌영당, 경모재 같은 건물들과 임진강변에 반구정이 자리하고 있다.

넓은 들판에는 일제히 이삭을 내민 벼들이 풍요로운 가을을 예고해준다. 길가에는 나팔꽃, 수박풀꽃 같은 들꽃들이 따가운 햇살 속에서도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장산리 마을 앞을 지날 때는 코스모스가 고개를 흔들며 길손을 맞이해준다. 들판 북쪽으로 멀리 개성의 상징적인 산, 송악산도 바라보인다. 임진강을 건너온 바람은 북한에서 불어온 바람이다. 자유로이 오가는 바람이 부럽다.

임진리 마을에 도착하니 마을입구에 ‘평화누리길 임진리 쉼터’ 편액이 붙은 정자가 길손들에게 쉬었다 가라한다. 뙤약볕에서 길을 걷다가 그늘에 앉아 물마시고 담소도 나누는 휴식은 다음 걸음을 활기차게 해준다. 임진리는 임진나루가 있었던 마을이라서 지어진 이름이다.

임진리 마을을 지나 임진나루터 근처에 이른다. 지금은 철조망에 가로막혀 임진나루로 갈수는 없지만 임진강이 유유히 흘러가는 모습을 지척에서 볼 수 있다. 임진나루는 임진강 유역의 대표적 나루로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로 파천을 하면서 건넜던 나루이자 고려, 조선시대 개성과 한양을 오가는 주요 길목이었다.
임진강변의 철조망이 분단의 아픔만큼 녹슬어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철책 중간 중간에 설치된 초소들은 분단현실을 감시하면서도 남북통일을 애타게 기다린다.

다음으로 율곡리 마을 뒤편 언덕에 자리 잡은 화석정(花石亭)을 만난다. 화석정은 원래 고려 말 유학자 길재가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에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던 곳으로 폐허가 돼 방치되고 있다가 율곡의 5대조인 이명신이 세종 25년(1443)에 정자를 세웠다.

그리고 율곡 때 다시 중수됐다. 율곡선생은 국사를 보면서도 여가가 날 때마다 화석정을 찾았고, 관직을 물러난 후에는 여생을 이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보내면서 시와 학문을 논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파천할 당시 억수같이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강을 건널 때 이항복이 화석정에 불을 질러 무사히 강을 건넜다고 전한다.

현종 14년(1673)에 율곡의 후손들이 다시 세웠으나 한국전쟁 때 또 소실됐다. 현재의 화석정은 1966년 파주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복원한 것으로 건축양식은 팔작지붕 겹처마에 초익공 형태로 조선시대 양식을 따랐다.

정자에 오르니 임진강의 푸른 물결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남서쪽으로 유유히 흘러오던 임진강은 화석정 근처에서 방향을 북서쪽으로 바꾸면서 휘돌아 흐른다. 휘돌아 흐르던 강물은 장산리 앞에서 물줄기가 두 갈래로 나뉘어져 가운데에 초평도라는 섬을 만들어놓았다.
율곡선생이 관직을 물러난 후 여생을 제자들과 함께 보내면서 시와 학문을 논했다는 화석정.

초평도 뒤로 멀리 개성을 감싸고 있는 송악산이 불꽃처럼 솟아있다. 주변의 풍광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강변에는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다. 정자주변의 느티나무 노송 몇 그루만이 옛 정취를 쓸쓸히 회상하게 한다.

임진강 건너로 보이는 땅은 옛 장단군으로 남한 땅이지만 민간인통제구역이라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 장단군 출신 실향민들의 한을 달래주고, 먼 거리를 다니며 농사짓는 농민들의 불편함을 풀어주기 위해 진동면 동파리에 60세대의 주거단지를 조성해 2003년부터 입주해 예외적으로 민통선 안에 1개 부락만 사람이 살고 있다.

화석정에서 내려와 율곡리 마을길과 논길을 지나 37번 국도 아래 굴다리를 지나니 율곡습지공원이 넓게 조성돼 있다. 율곡습지공원은 봄이면 유채꽃이 피고, 여름이면 연꽃,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피는 아름다운 공간이다. 서둘러 꽃을 피운 코스모스가 드넓은 코스모스 단지를 아름답게 장식할 가을풍경을 연상케 해준다. 100만 송이에 이르는 코스모스 꽃은 사람들의 얼굴에도 아름다운 꽃을 피워 평화의 기운을 전해줄 것이다.


※여행쪽지

▶평화누리길 8코스(반구정길)는 임진각 근처의 들판과 임진강변을 따라 걷는 길로, 반구정→임진강역→장산전망대→화석정→율곡습지공원까지 13㎞ 거리에 걷는 시간만 3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파주 반구정주차장(경기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190)
▶반구정과 화석정, 임진각 주변에는 장어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많다. 그중 반구정 옆 반구정나루터집(031-952-3472)이 유명하다. 임진강역 근처 철로변에 있는 샘뜰두부집(031-952-8010)의 두부요리는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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