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2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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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광주정신, 광주형일자리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사장

  • 입력날짜 : 2018. 12.05. 18:43
지구촌 어느 지역이 지역의 이름을 붙인 정신, 지역의 이름을 붙인 일자리가 있겠는가. 21세기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광주’가 내놓은 거대한 가치는 무게를 측정할 수가 없다. 한국 민주주의 근간 정신이 되는 ‘광주정신’을 세계화시킨 광주가 ‘광주형일자리’라는 시대명제를 또 창출해냈다.

‘광주형일자리’는 광주시가 지역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고안한 사업으로, 기업이 낮은 임금으로 근로자를 고용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복리·후생 비용 지원을 통해 보전한다는 일자리 창출 사업이다. 이는 고임금 제조업으로 여겨지는 완성차 공장을 짓되, 임금을 절반으로 낮춰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광주형일자리의 기본 개념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적정 임금 ▷적정 노동시간 ▷노사책임경영 ▷원하청 관계 개선 등으로, 고임금 제조업으로 여겨지는 완성차 공장을 짓되 임금을 줄이고 그만큼 일자리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다.

이에 광주시는 빛그린산업단지 내에 자동차 생산 합작법인 설립을 추진했고, 현대차가 2018년 5월 참여의향서를 제출했다. 광주시와 현대차는 7000억 원을 투입해 빛그린산업단지 내 62만8000㎡ 부지에 1000cc 미만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연간 10만대 양산하는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공장 설립 시 정규직 근로자는 신입 생산직과 경력 관리직을 합쳐 1000여명, 간접 고용까지 더하면 1만-1만2000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리고 고용되는 근로자의 임금은 자동차 업계 평균임금의 절반 수준만 지급하는 대신 각종 후생복지비용으로 소득 부족분을 지원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광주형일자리는 독일 완성차업체 폭스바겐의 ‘AUT0(아우토) 5000’ 프로젝트를 참고한 것이다. 폭스바겐은 2001년 경기침체로 자동차 생산량이 급감하자 별도의 독립법인과 공장을 만들자고 노조에 제안했고, 노조는 이를 수용했다. 이는 당시 5000명의 실업자를 기존 생산직의 80% 수준인 월급 5000마르크(약 300만원)에 정규직으로 채용하자는 것이 핵심이었다. 독립회사로 설립된 AUTO5000은 이후 7년간 ‘투란’과 ‘티구안’의 생산기지 역할을 하는 등 순항을 거듭했고, 고용위기가 끝난 2009년에는 폭스바겐 그룹에 편입됐다.

애초 ‘광주형일자리’를 만들었던 윤장현 전 광주시장은 고임금 반값으로 지방 청년들을 돕자는 숭고한 사상에서 이 안을 냈다. 국내차 업계에선 이른바 ‘광주형 일자리’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광주형일자리는 독일 등 해외에서는 유사한 사례가 있으나 국내에서는 전혀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이었기 때문이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임금이 줄어들지만 삶의 질이 높아지고, 일자리를 나눠주는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하청업체의 기술개발·인력양성을 지원한다. 노동자 대표를 경영에 참여시킴으로써 불량률 저하, 투명성 제고 등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정부가 노·사·민·정 합의로 구축되는 ‘광주형 일자리’는 투자 위축, 고용절벽, 청년실업 등 심각한 일자리 문제를 타개할 대안으로 생각하고 국정과제로 삼았다.

1996년 우리나라에 마지막 자동차 공장이 지어진 후 지금까지 현대·기아차는 전 세계에 19개 공장을 지어 5만7000개 정도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이들 나라의 지방정부들은 부지와 인력 확보를 도와주는 것은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숙련도가 높아질 때까지 교육훈련비를 부담하기도 하고 낮은 임금을 약속하기도 했다. 한국내에서 광주가 이런 시도를 해보겠다는 것이다. 효과가 있다면, 외국에 나가있는 공장들이 우리나라로 돌아올 것이다.

필자는 광주형일자리가 광주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경상도 지역도 자동차산업을 부활시킬 대안으로 광주형일자리를 주목하고 있다. 2009년 대규모 리콜로 위기에 빠진 도요타자동차는 낮은 임금을 내세워 투자를 유치한 기타큐슈 공장 덕분에 경쟁력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도 ‘광주형 일자리’를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는 자동차업계의 생각이다.

5일 광주시는 광주형일자리를 둘러싼 광주시와 현대자동차의 투자 협상이 사실상 타결됐다고 밝혔다. 현대차와 최종 협의를 마무리하고 6일께 투자협약 조인식을 할 예정이다. 최종 협약서에 서명하게 되면 노사 합의를 전제로 민간 기업의 대형 투자를 끌어냈다는 점에서 그동안의 투자유치와는 사뭇 다른 의미를 지닌다. 저효율과 불안한 노사관계 때문에 자동차산업을 불안하게 보았던 많은 국민들이 한국자동차업계를 바라보는 시각, 외국인들의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그동안 국내 투자를 꺼리던 대기업들이 광주형 일자리가 정착되면 국내 투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고 광주시는 보고 있다. 필자가 이 칼럼을 쓰고 있는 2018년 12월5일 오후 4시 현재, 민주노총은 광주형일자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대파업을 선언했다. 남아있는 과제가 많은 것이다. 일하기도 좋고 기업하기도 좋은 사회를 만들자는 ‘광주형일자리’는 그동안도 고통스럽게 진행되어왔지만 목표성공 때까지 더 많은 고통스런 과정이 남아있다.

정치적 민주주의에 기여한 광주가 광주형일자리를 통해 경제민주화에도 기여한다면, 새로운 경제산업모델을 제시하면서 대한민국을 한걸음 더 끌어올릴 것이다. 광주형일자리가 양보와 타협, 상생, 배려의 정신으로 전국화되길 바란다. 다른 지역도 광주형일자리 모델을 확산해,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 우는 젊은세대에게 희망의 손을 잡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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