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19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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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채 박사의 신 해양실크로드] 베트남 힌두왕국의 수도 ‘나트랑’ (1)
고대 힌두왕국의 부귀영화를 품고 있는 ‘나트랑’

  • 입력날짜 : 2019. 03.05. 18:14
포나가르 주탑 안에 안치돼 있는 포나가르 여신과 제단. 그리고 성교(링가와 요니) 형상.
우리나라와 유사한 역사를 가진 베트남!
오랜 세월 중화문화권 국가 중의 하나로 중국의 비롯한 몽골, 일본, 그리고 서구 열강의 끊임없는 침략을 받아왔고, 급기야는 우리와 같이 분단의 아픔을 겪어 온 나라!

2018년 우리나라 여행객이 가장 많이 찾는 여행지가 베트남 다낭이었다고 한다. 그동안 1위였던 오사카가 2위로 밀려났다고 한다. 다낭 인기에 힘입어 새로 각광받고 있는 곳이 나트랑이다. (‘나트랑’은 ‘나짱’으로도 불린다. 나트랑은 나짱의 불어식 발음이다.) 지난해 휴가철에 1천%나 증가했다. 증가했다기 보다는 폭증했다. 다녀온 여행객들의 반응도 생각 외로 근사하고 매력있다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올해 해외관광은 나트랑이 기대된다!

▶베트남 최고의 해변휴양지

호텔 뷔페식당에서 보이는 편안한 아침 풍경이 마음에 든다. 하늘과 구름과 바다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동남아의 다른 휴양지에 비해 소박한 운치다. 새파란 바다를 가르며 신나게 달리는 스피드보트가 바다에 흰 선을 쭉 긋는다.

호텔을 떠나 해변으로 나섰다. 해변이 넓으면서 참 깔끔하다. 6㎞에 이르는 백사장이 예쁘다. 구름이 낮게 깔려 있다. 부드러운 하얀 모래, 진녹의 따뜻한 바닷물, 야자수가 드리워진 해변, 사나운 파도…! 파란 색이 아닌 녹색의 에메랄드빛 바다다. 그 색이 너무 예쁘다.

해변 도로를 따라 리조트와 호텔이 쭉 들어서 있다. 해변에는 공원이 조성돼 있어 천천히 걷기에 좋다. 길을 따라 분위기 좋은 카페, 식당, 클럽이 보인다. 인근의 크고 작은 섬들의 풍광도 뛰어난 아름다움이다. 섬마다 고급 리조트와 호텔들이 들어서 있다. 특히 최고의 해양레포츠가 집중된 빈폴랜드 섬이 가까이 있다.

▶손때가 안 묻은 ‘여행자 거리’

프랑스 식민시기 부터 휴양지로 개발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베트남 최고의 해변 휴양지가 돼 있었다. 현지인은 물론 외국인들로 항상 붐빈다고 한다. 아트센터 주변은 특히 많은 관광객으로 항상 꽉 찬다고 한다. 앞 바다에는 수십 척의 요트와 보트가 떠다닌다. 베트남 최고의 해변 휴양지란 말이 실감난다.

커피 한 잔 하러 카페에 들어갔다. 열대 정원 속에 있는 카페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듯 한 공간이다. 잠시 바닷바람을 맞으며 그 시간을 즐겼다. 뉘엿뉘엿 해가 저물 즈음에야 일어섰다.

해변 도로와 이어진 ‘여행자 거리’로 들어섰다. Biet Thu 부터 Hung Muong까지 이어지는 지역이다. 나트랑의 최고 번화가다. 호치민의 데탐거리와 방콕의 카오산 거리와 같은 거리다.

러시아 인들이 특히 많이 보인다. 맛집과 저렴한 숙소들이 많이 보인다. 맛집들은 인산인해다. 노천 맛집도 마찬가지다. 밤이 되면 더욱 관광객이 불야성을 이룬다고 한다.

근처에 야시장도 있어 함께 구경했다. 좁은 거리에 기념품점과 노점들이 꽉 차 있다. 친절하고 값도 싸다. 사람이 많아 발 디딜 틈이 없다. 아직 많은 이들의 손때가 묻지 않아 온정이 느껴지는 시장이다.

▶‘포나가 사원’ 가는 길
포나가르 사원 앞에 선 필자. 사원 입구의 ‘만다파’가 보인다.

사원으로 가는 길은 오토바이와 자전거 부대가 유달리 많다. 맨발의 승려도 보인다.

그들의 삶의 무게만큼이나 무겁고 버거워 보였다.

차가 사원 가까이에 이르자 나짱 강변의 바위언덕 위에 참탑이 보인다. 먼 옛날 참파 왕국의 수도였던 이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다. 베트남 참파 유적 가운데 가장 걸작이라고 한다. 817년에 건립된 붉은 벽돌 탑들이다. 언덕 위에 웅장하게 서 있다. 힌두유적이다. 베트남의 참파유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입구에 다다르자 투어 버스에서 쏟아지는 관광객들로 혼잡스럽다. 중국 단체 관광객이 엄청났다. 사원 입구에 ‘만다파’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탑이라기보다는 기둥 같은 탑이다. 붉은 빛깔의 8각 기둥들이 4열로 늘어서 있다. 높낮이가 서로 다르다. 종교의식을 행하기 전에 의식 준비를 하던 곳이라 한다. 천년의 세월이 흘러, 초기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알 길이 없다. 지붕이 있었을까!요리시설도 있었을까! 혼자 곰곰이 생각해 봤다.

▶베트남 최초 힌두사원

가파른 길을 따라 사원으로 올라갔다. 사원은 고대 참파왕국의 유적으로 힌두교 양식이다. 모두 적벽돌로 된 탑이다. 탑은 대부분이 파괴되고 주탑과 작은 탑 몇 개만이 남아 있었다. 원래는 7-8개의 탑이 있었다고 한다. 가장 높은 주탑은 25m에 이르렀다. 지금껏 모르타르를 사용하지 않고 벽돌을 쌓은 방법을 알아낼 수 없다고 한다. 모든 사원은 동쪽을 향해 있다.

탑 상단 층마다 힌두 신들의 조각들이 새겨져 있다. 화려한 무희들이 눈에 들어온다.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거나 무릎을 굽힌 채 신을 찬양하는 자세, 관능미 넘치는 육체와 요염한 자세, 무희들 다리 사이로 늘어뜨려진 천 가닥 등 모든 것이 선정적이고 신비한 분위기를 준다. 그동안 여러 차례 화재로 화마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는 것이 흠이랄까, 곡선의 아름다움이 극치를 이룬다.

탑 안으로 들어갔다. 탑 내부에 많은 신자들이 줄지어 봉헌과 기도를 하고 있었다. 가장 웅대한 ‘중앙탑’에는 참배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탑 내부는 작고 비좁은 데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있던 터라 오래 있기가 힘들었으나 사람들을 비집고 기어코 들어갔다.

▶낯 부끄러워 못 볼 형상

중앙에 포나가르 여신상이 있고, 그 앞에 제단이 설치돼 있다. 그리고 그 앞에 시바의 성기(링가)가 그의 부인 파르바티의 성기(요니)와 섹스하고 있는 형상이 안치돼 있다. 다산을 모토로 하는 힌두신앙을 목격할 수 있었다. 탑의 지붕에도 성기(링가)가 설치돼 있었다. 아들을 점지해 주는 효험이 있다 해 항상 참배객들로 넘쳐난다. 어찌나 많이 만지고 뽀뽀했던지 성기들이 반질반질하다 못해 반짝반짝 빛난다.

주신인 ‘포나가르’상은 965년에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포나가르’는 ‘10개의 팔을 가지고 손에 신들이 준 무기를 들고 있는 악마를 퇴치하는 ‘여전사’다. 힌두여신이다. 남편인 시바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바가 그녀를 피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다른 여신과와는 달리 항상 시바와 함께 등장하지 않고 혼자 안치된다. 여전사여서 그런지 표정이 다른 신들과 달리 상당히 험악해 보인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사원 뒤쪽에 박물관이 있었다. 박물관이라기보다는 작은 전시관이다. 남은 유물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유물들이 있어 들러볼 만 했다. 이곳 사원과 탑의 역사를 설명해 놓아 도움이 됐다. 한쪽 벽에는 ‘갖가지로 인테리어 한 링가와 요니의 상스러운 유물’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감상하는 남녀 관광객들이 낮 부끄러워했다. 1천년 전에도 인테리어를 했다니, 일부는 놀라워했다.

▶부귀영화가 한낱 꿈이려나?

사원 뜰에서는 시간대별로 전통공연도 하고 있었다. 의상만 베트남 전통의상이지 부채춤과 북이라…. 우리 문화와 매우 흡사하다. 사원 뜰에서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좋다. 나트랑 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맑은 날이어서 더욱 좋았다. 작은 항구가 사원 바로 밑에 내려다보인다. 고깃배들이 떠있는 전경이 무척이나 애잔해 보인다.

다리를 쉴 겸 시원한 나무 그늘 의자에 앉았다.
문병채 (주) 국토정보기술단 단장

한 때 화려했을 ‘참파왕국’을 생각했다. 참파왕국은 192년에 ‘스리마라 왕’이 베트남 중부지역에 세운 왕조다. 남인도 인들이 상륙해 건설한 힌두왕국이다. 이후 1832년까지 존속했다. 당나라 때는 임읍(林邑), 송나라 때는 점성(占城)이라 불렀다. 당 태종에게 앵무새를 바치기도 했다. 229년 중국 오나라 사신으로 다녀 온 주응(朱應)과 강태(康泰)에 의하면, 벌거벗은 나체나 다름없이 다녔고 문신을 하는 이가 많았다고 기록돼 있기도 하다.

또한 752년에는 붓테츠란 승려가 일본에 들어가 참파의 무용(임파락)과 밀고경전을 전하기도 했다. 임파락은 아악의 일종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때 송나라에서 전해진 아악이 이와 유사하다. 이렇듯 참파왕국은 해상실크로드의 한 거점을 이루고 고유문화를 형성해 온 고대 해양국가였다.

참파왕국의 화려했던 옛 역사를 생각하면서, 자태를 뽐냈을 지도 모를 작은 탑들을 바라보노라니 지나간 시간과 사라진 것들에 대한 숨결이 느껴지는 듯 했다

BC 700년 전후로 왕국의 틀을 갖추고, 한 때 동남아 전역에 세력을 뻗치고, 해상실크로드를 따라 인도와 아라비아, 중국과 우리나라까지 무역을 했을 제국에 대해 생각했다.

부귀도 영화도 모두 한낱 꿈이려나!

날씨는 화창하고, 푸른 하늘은 맑고 투명하다. 모든 것이 평화롭고 아름답다. 사원은 넓지 않지만, 이것저것 볼 것이 많은 유적지다. 다음에 또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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