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25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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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권력 뒤에 숨은 여성폭력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사장

  • 입력날짜 : 2019. 03.20. 19:00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뜻으로, 어떤 처지나 상황이 때에 맞지 않음을 이르는 말. 한국은 민주주의국가이지만 적어도 권력형 성범죄에 관한한 춘래불사춘이다.

최근 문재인대통령은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고(故) 장자연 관련사건과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 ‘별장 성접대 의혹’, ‘버닝썬’ 클럽과 경찰유착의혹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세 사건 모두 여성 성범죄와 깊은 관련이 있다.

문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법무부장관·행정안전부장관으로부터 보고를 받은뒤 “과거의 일이지만 진실을 밝히고 스스로의 치부를 드러내고 신뢰받는 사정기관으로 거듭나는 일은 검찰과 경찰의 현 지도부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져야 할 일이라는 점을 명심해 달라”고 말했다. 해당사건에 대해 “수사기관이 고의적인 부실수사를 하거나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진실 규명을 가로막고 비호·은폐한 정황이 보인다면 공통적인 특징은 사회 특권층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이를 권력형 비리로 규정했다. 사실상의 수사 ‘가이드라인’이다. 대통령이 사건의 핵심을 짚은 만큼 이번엔 끝장을 보자.

나아가 더불어민주당은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 별장성접대의혹사건, 고 장자연 사건 관련해서 특검과 국정조사 도입을 포함한 전면 재수사를 촉구했다.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서는 두 사건의 특검도입에 국민의 72%가 찬성했다.

사실, 김학의·장자연 사건은 지난 수년 동안 진실을 규명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수사기관에 의해 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 ‘버닝썬·김학의·장자연 사건’의 본질은 소수 특권층이 저지른 비리로, 공권력의 유착·은폐 의혹이 제기됐다는 점에서 진상조사단만으로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데 한계가 있어 보인다. 특검이 꼭 도입되어야 할 이유다.

점입가경. 버닝썬사건은 이제 우리 사회의 성폭력문화 문제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불법촬영물을 ‘자랑거리’로 공유해온 남성 유명 연예인의 카톡 대화내용이 폭로되면서 성범죄에 대한 미온적 인식과 처벌,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문화까지 수면 위에 떠올랐다. 이번 사건은 폭력에서 성매매 알선, 경찰 유착 의혹 등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더니 불법 동영상 유포 범죄까지 확인된 것이다. 영화에서나 봄 직한 최악의 막장 드라마가 현실로 옮겨진 듯해서 충격적이다.

성매매에 시달리다 자살한 장자연, 별장에 불려가 권력자들에게 성매매를 강요당한 여성들, 자신의 성관계 영상이 자신도 모르게 찍혀 모든 사람들에게 돌림빵 당한 여성들···. 피해여성의 시각에서 보면,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은 쉽게 성을 사고 들통 나서 조사를 받았지만 힘 있고 빽 있는 사람들이라 면죄부를 받은 것으로 비춰진다.

<고 장자연 사건> 고 장자연씨는 유력인사들에 대한 술시중과 성접대를 했다며 자신의 피해사례와 관련자들의 이름을 담은 문건을 남기고 2009년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장자연씨가 소속사로부터 성 접대를 강요받았다는 의혹이 일었지만 검찰은 연루자들을 무혐의 처분하며 사건을 조용히 마무리했다. 공소시효 만료를 코앞에 앞둔 장자연 사건이 배우 윤지오씨의 등장으로 새 국면을 맞았다. 윤씨가 장자연 사건 10년 만에 목격자로서 자신의 신분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김학의 사건> 김학의전법무부차관은 박근혜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3월 임명된 전 법무부 차관이다. 하지만 그는 바로 같은 달 강원 원주시 소재 한 별장에서 김 전 차관이 건설업자 윤중천(58)씨로부터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됐다. 이후 김 전 차관은 임명 6일 만에 차관직에서 물러났으며, ‘김학의 별장 성접대’ 사건으로 경찰 조사 끝에 검찰에 송치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검찰은 적나라한 성접대 동영상이 나왔지만 “영상 속 인물을 김 전 차관으로 특정하기 어렵다”며 “관련자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무혐의 처분을 내려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을 들었다.

<정준영 몰카사건> 정씨가 지인들과 단톡방에서 나눈 대화 내용을 보면 여성을 물건처럼 대하거나 성(性)을 상품 취급하는 그들만의 그릇된 가치관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2015년 12월 정씨가 성관계 동영상을 단톡방에 올리고 자랑한 사실을 알아챈 피해 여성이 ‘비밀을 지켜달라’고 부탁하자 정씨는 그 내용까지 단톡방에 올렸다.

이들 세 사건은 단순한 성 추문이나 폭력사건이 아니다. 사회 특권층과 권력기관이 연계된 비리다. 정부가 철저한 재조사를 다짐한 만큼, 권력기관과의 유착 등 의혹이 낱낱이 규명되어야 한다. 검찰과 경찰은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자신의 치부를 과감히 도려내겠다는 의지로 대처해야 한다. 공소시효를 따질 것이 아니라 특검을 통해서라도 사건의 진실이 낱낱이 드러나야 권력형 성폭력자들도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국민 앞에 보여줄 수 있다.

이제 공은 검찰과 경찰로 넘어갔다. 결자해지 심정으로 신뢰 회복해야 한다. 검찰은 ‘봐주기 수사’ 비난을 떨치기 위해서도 은폐·비호 의혹을 철저하게 가려야 한다. 경찰도 버닝썬사건에서 촉발된 마약·성범죄 수사를 철저히 해서, 일부 권력기관이 유착해 묵인·방조하고 특혜를 줬다는 의혹까지 명명백백 밝히길 바란다.

오랜 시간동안 진실이 은폐되고 피해자가 오히려 정서폭력을 당하는 상황에서 목격자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세 사건 모두 성착취와 인권유린, 한국사회의 윤리적 파탄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여성인권의 현주소이며 한국의 부끄러운 한 부분이다. 가해자들은 거리를 활보하는데, 피해자들은 죽음을 택하거나 위협에 시달리는 상황이라면 이게 법치국가인가. 공평한 수사를 통해 권력형성폭력의 은폐된 진실을 온전히 드러내,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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