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7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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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나PD의 보통날]교향악 축제 장면들

  • 입력날짜 : 2019. 04.15. 19:05
#1. 서울 가는 기차 안, 몸을 살짝 웅크리고 잠드신 김홍재 지휘자님의 옆 모습. 김홍재 지휘자님과 함께 3년째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주최하는 국내 최고의 오케스트라 축제인 ‘교향악 축제’에 참여하고 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대절버스를 타고 먼저 서울로 떠나고, 점심 일정이 있으셨던 지휘자님을 모시고 기차를 탔다.

기차에 타자마자 ‘하나도 좀 쉬세요!’하시더니 눈을 감으신다. 주무시는 걸까 그저 눈을 감고 상념에 빠지신 걸까, 지휘자님의 표정과 몸이 지금 조금 괴롭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하다. 하루 전날 있었던 광주 공연에서 정말 혼신의 지휘를 하셨는데, 관객들은 무척 좋았다고 피드백을 들려줬지만 그럼에도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분명히 앓으실 것 같아’하고 나는 무대 위 지휘자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 많이 불편하신 걸까? 공연 연습에, 다른 공식 일정들을 동시에 신경쓰시느라 많이 힘드셨겠지.’ “지휘자님 이것 드시겠어요?”,”지휘자님 괜찮으세요?” 바라보며 그저 의례적인 인사를 건네는 것밖엔 할 수 있는게 없어 속상한 옆자리 승객.



#2.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산책을 좀 하고 호텔로 들어 가겠다며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가는 김홍재 지휘자님과 사모님. 교향악 축제를 응원하기 위해 일본에서 사모님이 오셨다. 서울 호텔에 먼저 도착한 사모님이 지휘자님과 나를 맞아 주셨다. 간단히 짐을 정리하고 지휘자님, 사모님, 사무국 식구들이 다같이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그리고 그제야 컨디션이 좋지 않아 약을 먹었다고 고백하시는 지휘자님. 내 마음 편하자며 종일 지휘자님께 종알종알 안부를 묻던 내가 얼마나 귀찮으셨을까? 광주에서 지내시던 일주일동안 충분히 살펴 드리지 못한 것이 후회와 죄송함으로 밀려온다. “이제 내가 왔으니 괜찮아요!”하며 명랑하게 분위기를 환기 시키시는 사모님.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산책좀 하고 들어갈게요”하고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가는 두 분의 모습이 참 산뜻하다. 산책을 하며 두 분은 어떤 대화를 하실까? 지난 일주일 간 좋았던 일, 속상했던 일, 때론 화가 났던 일들… 사려깊으신 성격에 부하직원에겐 할 수 없었던 말들을 자신만의 대나무숲에 털어놓고 계시겠지. 사모님이 오셔서 참 다행이다!



#3. 동료의 어색한 웃음. 외지 공연에 가면 사무국 직원들은 본연의 임무에 몇 가지 추가 임무를 요구받는다. 우리는 때로 투어가이드가 됐다가, 의전담당이,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협상가가 되기도 한다. 평소와 다른 근무환경에서 평소보다 다양한 이벤트가 발생되기 때문에 각자의 업무영역을 넘어 좀 더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유연함 사이에서 피로가 쌓이기도 하고, 때론 상처가 생기기도 한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혼자 처리해 버리는 나는 ‘선생님 지금 도와 드릴 일 없어요?’하는 동료의 전화에 ‘아니요. 딱히 없어요’하고 대답해 버렸다. 나중에 자기 일로 분주해진 동료는 나를 스쳐지나가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선생님, 저 좀 도와주세요. 우리 같이 해요’, ‘제가 지금 도와 드릴 수 있는 일 있을까요?’하고 말하는 건데.



#4. 부담감 100배의 솔로 연주를 끝낸 트럼펫 객원수석에게, 객석에서는 보일 듯 말듯 목례로 경의를 표하는 옆자리 연주자. 이번 교향악축제를 위한 김홍재 지휘자의 선곡은 바로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이었다. 10개 이상의 표제를 가진 악곡으로 구성된 곡이라 감상하는 입장에서는 참 흥미롭지만, 개별 악곡을 하나의 큰 곡으로 짜임새 있게 해석해 내는 것이 까다로울 뿐 아니라 관파트 솔로가 두드러져 연주자에게도 참 부담스러운 곡이다.

특히 트럼펫 솔로가 까다롭기로 악명이 높다. 2천여명의 눈과 귀가 집중되는 부담감 백배의 솔로 파트를 무사히 완주하고, 트럼펫 객원수석이 악기를 입에서 떼는 순간 왠지 그의 어깨 위에 있던 짐도 같이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옆자리에 앉은 다른 트럼펫 연주자가 살짝 목례로 연주에 경의를 표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격렬하게 내적박수를 쳤다.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연습하고, 또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받아 왔을까? 때론 까다로운 고객들이기도 한 연주자들을 마음 깊이 이해하고 싶은 순간. 그나저나 모든 순간 정확한 비팅을 때리는 김홍재 지휘자님의 오케스트라 조련법도 대단하군요.



#5. 오케스트라를 태운 광주행 버스의 뒷모습. 모든 연주를 마치고, 관객을 향해 다같이 인사를 하며 비로소 웃음을 지어보이는 오케스트라. 거 참, 후련하군요. 원주 집에 들르기로 한 나는 오케스트라를 태운 버스가 광주로 출발하는 것을 배웅했다. 며칠간의 하트 트레이닝과 방금 전의 장렬한 연주로 지칠 대로 지쳤을 몸과 마음들을 버스가 싣고 떠났다. 모두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 연주 최고였어요! 기사님 우리 단원들 잘 부탁해요.



#6. 원주 터미널 앞, 버스 창 밖으로 보이는 엄마의 작은 차. 단원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따로 강남터미널에 와 본가에 가기 위해 원주행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휴대폰으로 SNS와 클래식 관련 게시판에 올라온 공연 후기를 찾아봤다.

반응이 아주 좋다. 수준급 연주로 광주시향의 재발견이라는 평가와 함께 지금까지 본 오케스트라 중 최고라는 평가도 눈에 띈다. 후기를 살펴보는 사이 어느새 버스가 익숙한 터미널 앞 신호등에 정차했다. 창밖으로 엄마의 작고 귀여운 차가 보인다. 좋았던 일, 속상했던 일, 때론 화가났던 일들… 나만의 대나무 숲에서 좀 쉬어야겠다./정하나 광주시립교향악단 공연기획담당


정하나 광주시립교향악단 공연기획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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