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9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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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韓·中 언론교류 프로그램 참가기] 중국 둔황의 문화유산 보전과 관광 정책
막고굴 천년 유산 과학적 복원으로 옛 榮華 되살린다
둔황연구원 주관 불상·벽화 복원 및 훼손방지 작업
관광객 수용량 연구로 하루 방문객 6천명으로 제한

  • 입력날짜 : 2019. 07.09. 18:23
중세 동서 문명교류에 대한 유물적 보고(寶庫)로 꼽히는 중국 간쑤성 둔황의 막고굴이 웅장한 자태를 보이고 있다./사진제공=중국 신화통신사
이 취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중국 신화통신사의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둔황의 사방은 온통 희뿌옇다. 바람만 불면 온통 모래먼지가 흩날렸다. 시내로 들어가는 길도 어슴푸레하다. 길가에는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심어 놓은 백양나무들이 쭉쭉 뻗어 황량함을 덜게 하고 있었다….”

2002년 7월 어느 날의 취재수첩의 한 쪽이다. 당시 기자는 실크로드의 매력에 푹 빠져 보름간의 일정으로 타클라마칸 사막을 횡단하며 투르판, 쿠처, 호탄, 카슈가르 등 고대 비단길을 헤매고 다녔었다. 그 곳은 척박한 자연환경에다 관광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오지인지라 여정 내내 스릴감에 휩싸였었다.

그 후 17년 만에 다시 찾은 둔황은 옛 모습을 감추고 산뜻한 오아시스 도시로 변모해 있었다. 잘 포장된 거리는 4차선으로 쭉쭉 뻗어 있고 빽빽하게 들어선 늘씬한 백양나무는 사막의 모래바람을 막고 있었다. 곳곳에 들어선 빈관(賓館)은 웅장했으며 거대한 야시장은 잘 정돈된 상태에서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한마디로 생동감 넘치는 관광도시의 면모를 한껏 보여주고 있었다.
사막지대의 한쪽에 자리잡은 둔황 막고굴 전경. 경사진 황토벽면을 따라 벌집처럼 석굴이 조성됐다. /사진제공=중국 신화통신사

둔황과 세계문화유산 막고굴

둔황은 기원전 139년 한나라의 장건이 서역으로 흉노족을 징벌하기 위해 거쳐 가면서 역사 속에 등장했다. 당시 한나라를 침범한 흉노족을 몰아내기 위해 장건이 지나간 길을 따라 실크로드가 탄생했다. 이를 계기로 동양과 서양이 연결됐으며 동·서양의 문명이 이어진 길을 실크로드라고 명명했다. 한나라는 이 곳 둔황을 실크로드의 요충지로 삼았다.

이 길을 따라 인도의 승려들이 들어오면서 중국에 불교가 전파됐다. 그 가운데 낙준 스님이 있었으며, 그는 사막의 끝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이곳 명사산 자락에 굴을 뚫고 부처님을 모셨다. 그 때가 서기 336년이다. 이후 1천년에 걸쳐 굴이 하나 둘씩 만들어져 동굴사원이 되고, 벽화가 그려지고 승려들이 수행처로 삼으면서 불교 성지로 자리잡게 된다.

중국의 불교는 4세기부터 14세기까지 번창기를 향유했다. 황실에서부터 일반 백성들까지 불교를 믿었다. 당나라 시대에 막고굴은 굴실이 1천여개에 이를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고관대작에서부터 서민들까지 신앙의 힘으로 불국을 건설하는데 헌신했다. 왕성한 불국조성 사업이 1천년 동안 이어졌다. 실크로드의 거점이었던 둔황은 ‘타오르는 횃불’이라는 옛 이름 마냥 당시 국제적인 도시 역할을 했다. 그러다 14세기 이후 실크로드는 쇠퇴의 길을 걷는다. 막고굴도 같은 운명을 걸으면서 500년 동안 적막감에 휩싸인다.

20세기 들어 막고굴은 다시한번 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에 유럽의 문화재 수집가들이 발굴과 도굴작업으로 벽화와 수만점의 문서를 발견하게 되면서 둔황이 세계 속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현재 남아있는 석굴은 600여개인데 그 가운데 벽화가 그려진 정비된 석굴만 492개에 달한다. 그리고 이들 불상과 벽화는 사료적 가치는 물론 명실상부한 중세 동서 문명교류에 대한 유물적 보고(寶庫)로 꼽히고 있다.
급증하는 관광객들에 의해 훼손 위기에 처하자 둔황연구원에서는 불상과 벽화의 복원 및 보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중국 신화통신사

밀려드는 관광객…관광도시 발돋음

2000년대 들어 둔황은 다시 한번 옛 영화를 되찾으며 관광도시로 도약하고 있다.

둔황시는 1979년부터 대외로 개방했는데, 당시에는 1년 관광객이 2만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40년 만인 지난해에는 200만명에 육박했다. 2014년을 기점으로 급증세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는 일본인들의 영향력이 매우 컸다. 일본인들은 막고굴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소설 등이 만들어지면서 둔황으로 몰려왔다. 현재 둔황의 인구는 19만명. 2002년 16만명에 비해 그리 늘지 않았다. 둔황을 방문하는 관광객은 크게 늘어났지만 인구가 별로 증가하지 않은 이유는 사막지대이기에 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관광객이 늘어나자 대신 그동안 농사를 짓던 주민들이 관광 서비스업으로 전환했다. 이들이 관광객을 맞이할 수 있어서 인구증가 속도는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막고굴 불상 및 벽화 보존 노력

둔황의 상징인 막고굴의 불상들은 대부분 진흙으로 만들어졌지만 이곳은 습기가 매우 적어 훼손이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하지만 막고굴은 자연법칙에 따라 언젠가는 사라지게 돼 있다. 실제로 비교해 보면 100년 전과 현재의 벽화에서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막고굴 보호와 보전 작업은 현재 둔황연구원이 주관하고 있다. 둔황연구원은 막고굴의 불상과 벽화에 대한 복원작업을 두가지 관점에서 진행하고 있다. 하나는 더 이상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예방성 차원에서 복원작업을 하고, 하나는 이미 파괴된 것을 복구하는 작업이다.

대표적인 복원작업으로 디지털화 작업을 꼽을 수 있다. 이는 벽화나 불상을 사진으로 촬영해서 디지털화하는 것이다. 일정기간 정기적으로 사진을 촬영하면 벽화의 변질 과정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디지털 복원작업은 1980년대 말부터 1990년 초에 본격화 됐다. 당시 디지털 기술은 미국이 갖고 있었기에 미국 전문연구원의 협조를 받아 중국 연구원들이 공동으로 진행해 왔다.

방법은 먼저 사진으로 벽화나 불상 등을 촬영한다. 보통 각 방향에서 4장씩 촬영한 뒤 이를 겹쳐서 붙이면 완벽하게 사진으로 복원할 수 있다. 입체적인 복원이 가능한 방법이다. 이 작업을 통해 360도 전체로 벽화를 완전하게 볼 수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 디지털화 작업이 이뤄지고 이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서 공개하고 있다. (사이트 주소 : www.e-dunhuang.com).

근본적인 대안 강구…관람 인원 제한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파생되는 문제는 문화유산 훼손이었다. 과거에는 모래바람이 문제였지만, 이제는 관광객들이 문제가 될 정도로 단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면서 수천년 된 문화유산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했다.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굴 안으로 밀려들면 수증기가 생기고 이산화탄소도 증가하며 온도까지 높아져 동굴에 대한 파괴가 뒤따를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둔황연구원은 수년 전부터 관광객의 수용량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연구는 중국의 주도로 미국, 호주 등 3개의 나라가 협력해서 진행했다. 이러한 연구 과정을 거쳐서 막고굴은 하루 6천명의 관광객을 수용하는게 적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둔황연구원은 2014년부터 실행에 옮겼다. 막고굴을 방문하기에 앞서 영상관을 먼저 들르도록 한 것이다. 2개의 영상관에서 막고굴의 역사와 대표적인 굴의 불상과 벽화를 사전에 감상하게 한 다음 셔틀버스로 현장에 도착하게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관람객이 한꺼번에 몰리지 않도록 한다.

석굴 방문 방식 역시 열쇠를 가지고 있는 각 가이드가 관람객들을 인솔하는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각 방에는 습기와 이산화탄소를 체크하는 장치가 놓여 있다. 한 번 관람으로 구경할 수 있는 석굴의 숫자는 8-10개로 한정해 놓았다.

중국의 신실크로드 정책으로 다시금 부상하고 있는 둔황, 고대 대상들이 왕래했던 오아시스 도시는 지금 당국의 철저한 관리아래 사막지대의 대표적인 관광도시로 자리잡고 있다.

/중국 둔황=이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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