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28일(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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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명품마을을 찾아서] (1) 목포 삼학도마을
‘세마리 학’의 구슬프고 애틋한 전설 간직
간척·연륙 공사 → 섬 형태 상실 2004년 복원화사업 본격 추진
물길 내고 옛 모습 되찾으며 ‘추억 가득’ 시민공원 재탄생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엔 평화와 화합의 정신 ‘오롯이’
8월 8일 제1회 ‘섬의 날’ 기념 ‘썸페스티벌’ 개최 관광 활성화

  • 입력날짜 : 2019. 08.26. 18:05
하늘에서 본 삼학도 전경. 1960년대 간척·연륙 공사가 진행되면서 섬의 형태를 잃었지만 2004년 시작된 복원화사업 이후 물길이 만들어지는 등 본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마을에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깃들여 있다. 이 때문에 마을의 이야기는 문화·관광·역사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다. 전남도가 올해 처음으로 ‘2019 전라남도 마을이야기 박람회’(8월30일-9월1일, 무안스포츠파크)를 개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마을이 간직한 이야기와 설화, 공동체 정신 등을 찾아 새로운 문화관광마을로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광주매일신문은 22개 시·군의 추천과 공모를 거쳐 선정된 22개 대표 마을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연재한다./편집자주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시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가수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 가사 일부다. 명곡에 언급될 정도로 삼학도는 유달산과 더불어 목포 시민들과 애환을 함께 해온 곳이다. 애절한 가사만큼 섬 이름, 삼학도(三鶴島)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 또한 애달프다.

역사를 살펴보면 군사 요충지였던 목포진은 임진왜란은 물론 이후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에는 목포진 같은 군항을 운영하려면 땔나무를 제공할 장소가 필요했는데 주변에서 쉽게 나무를 구할 수 있는 삼학도가 제격이었다.

이런 연유로 삼학도는 목포진의 시지(柴地·땔나무 공급처)로 지정돼 국가가 관리하면서 일반인들은 접근이 금지됐다. 조선 말(1895년)에는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 일본인이 섬 전체를 불법 매입한 사건(삼학도토지암매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일제강점기 내내 일본인 소유였다가 광복이 되면서 다시 환수됐다. 그러나 얼마 안 돼 목포항 확장을 위한 매립 논의가 시작되고 1960년대 간척·연륙 공사가 실행되면서 섬의 형태를 잃었다. 다행히 2004년부터 복원이 진행돼 주변에 물길이 만들어지는 등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옛 삼학도 모습

◇그리움에 사무친 세 여인의 슬픈 이야기

옛날 무예에 출중한 젊은이가 유달산에서 수련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빼어난 용모에 늠름한 기개까지…. 이 청년에게 반한 마을의 세 처녀가 수시로 드나들어서 청년은 공부를 소홀히 하게 됐다. 그래서 이 젊은 무사는 세 처녀를 불러 “나 역시 그대들을 사랑하나, 공부에 방해가 되니 공부가 끝날 때까지 이 곳을 떠나 다른 섬에서 기다려 주오”하고 청했다. 그 말대로 가서 기다리던 세 처녀는 무사를 기다리다 그리움에 사무쳐 식음을 전폐하다가 죽게 됐다. 하지만 죽어서도 그리움에 사무쳤는지 여인들은 세 마리 학으로 환생해서 유달산 주위를 돌며 구슬피 울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사실을 모르는 무사는 무예 수련 중 세 마리 학을 향해 활을 쏘아 명중시켰고 세 마리의 학은 모두 유달산 앞바다에 떨어져 죽었다. 얼마 뒤 그 자리에 작은 섬 3개가 솟아오르자 사람들이 이를 삼학도라 불렀다. 슬프고도 찬란한 역사를 지닌 삼학도.

유달산 중턱에 대학루(待鶴樓)라는 정자가 있어 학으로 변한 세 처녀의 혼백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육지로 변해 형편없이 일그러진 삼학도의 형편으로는 학의 귀환은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 설사 돌아온다고 해도 그 학이 깃들 만한 안식처도 없고, 또 그들이 사모하던 청년도 사라진지 오래다. 노랫말처럼 그저 슬픈 전설로만 기억할 수밖에 없다.

삼학도는 지금 목포 시민들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장소가 됐고 목포를 상징하는 섬이 됐다. 지금은 섬도 아닌, 이 삼학도에 대한 목포인들의 애정이 식지 않은 것도 그 전설이 유달리 애틋하기 때문이리라.
위부터 삼학도공원 풍경, 삼학도 물길, 김대중 기념관 내부

◇목포의 역사와 함께 변모

망망대해로 낭군을 떠나보낸 아낙들의 외로움이 남아 있고, 고깃배를 기다리는 상인들의 희망이 살아있는 아름다운 전설이 깃든 삼학도. 1965년 대·중·소 삼학도를 연결해 육지가 됐는데, 목포시는 2004년부터 삼학도 복원화 사업을 벌여 삼학도의 옛 모습을 복원하고 있으며 낭만과 추억이 가득한 시민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삼학도는 유달산과 함께 목포의 상징적 존재다. 지금은 육지의 일부분이 됐지만 옛날엔 배를 타고 건너가 유희를 하고 사랑을 다짐하던 공원과도 같은 항구의 섬이었다. 당시 섬의 넓이는 동쪽의 가장 큰 섬이 약 4만3천평이고, 가운데 섬이 1만3천평, 서쪽 섬이 7천평으로 제일 작았다. 이 섬은 목포 만호청의 땔나무를 했던 곳이다. 이 때문에 일반의 출입이 통제되면서 갖가지 고목이 울창해 사시사철 푸른숲이 하늘을 뒤덮고, 무심한 물새들만 넘나들어 지저귈 따름이었다.

1897년 목포항이 일본인에 의해 개항되자 많은 상인들이 몰려들고 외국 문물과 잡화 등이 성업을 이뤘다. 삼학도도 사람이 들어가 살았다.

1928년 유달산이 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이 섬에도 많은 관광객이 몰려와 낚시와 놀이를 즐겼었다. 지금은 제방을 쌓아 육지가 돼 섬 북단에 있는 갓바위 일대는 과수원이 많은 녹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낚시터로도 애용되고 있다. 이 섬들이 모습을 바꾸기 시작한 것은 6·25 직후인 1954년의 일이다. 목포항이 비좁고 대형선박의 정박이 어려웠기 때문에 1만t급 이상의 선박을 정박시키고자 신항공사를 착수했다. 3년 만에 삼학도는 육지가 됐다. 1962년에는 이로면 입암리와의 사이가 매립되면서 완전히 섬으로써의 모습을 잃어 버렸다.

◇민주주의 향한 ‘DJ 정신’ 깃든 곳

민주주의와 인권·평화를 위해 평생을 바친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목포 삼학도에는 한국인 최초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 대통령의 정신을 공유할 수 있는 기념관이 있다. 바로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기념관 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는 김대중 대통령의 명언이 있다.

“지도자라는 사람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업적을 남겼느냐, 얼마나 높은 지위를 차지하느냐가 아닌, 어떤 자세로 국민을 대했는가로 결정된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이 얼마나 자기 나라 국민을 존경하고 사랑했는가로 판단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다.
김대중 노펠평화상 기념관 전경

◇‘썸’ 타고 싶은 사람 삼학도로!

3천352개. 우리나라 섬 개수다. 이렇게 섬이 많아서일까. 국내 섬 관광객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5년 345만명에서 2017년 659만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그림 같은 섬이 아직도 너무나 많다. 이에 정부가 섬 관광 활성화에 나섰다. 그 첫 결실이 ‘섬의 날’ 제정. 매년 8월 8일을 섬의 날로 기념해 섬에 대한 가치를 알리고 섬 관광 활성화를 도모한다.

왜 섬의 날이 8월 8일일까. 이 날짜는 섬에서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가 풍성한 시기가 8월이고, 숫자 8이 섬의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하는 무한대(∞)와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해 정해졌다.

1회 섬의 날인 지난 8월 8일, 삼학도 일원에서 ‘대한민국 썸 페스티벌’이 열렸다. 특히 풍어제, 출어제 등 섬 전통 민속 문화를 엿볼 수 있는 행사와 섬 토속음식 등이 인기를 끌었다.

/최지영 자유기고가·목포=정해선 기자/사진=김영근 기자


사진=김영근 기자         김영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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